[페미니즘 SF 함께 읽기] 6회_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체체파리의 비법」 &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이수현 옮김, 『체체파리의 비법』 (아작 2016) 표지 이미지

페미니즘 SF 함께 읽기 6회차에서는 ‘전염병’을 키워드로 삼아 제임스 팁트리의 단편 소설 「체체파리의 비법(이하 체체파리)」과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이하 아인 박사)」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체체파리」는 미지의 존재가 지구에 전파한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서서히 멸망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바이러스는 여성을 향한 성욕을 ‘여성 살해 충동’으로 전환시키는 바이러스로, 지구의 ‘해충’인 인간 종의 생식을 차단하기 위한 방편으로 묘사됩니다. 제목의 체체파리는 동물에게 기생하며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벌레로, 지구에 기생하는 인간을 은유하는 셈이지요. 다른 한편, 「아인 박사」는 인간을 가이아, 즉 지구를 오염시키는 질병으로 간주하여 전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인간을 멸종시킬 바이러스를 직접 전파하는 미친 과학자의 이야기입니다. 두 소설은 모두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지구를 정화한다’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 대담 내용은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1. 생태 위기와 인간-자연의 관계

오온: 오늘 이야기 나눌 두 소설은 모두 전염병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인간 종의 전멸을 그리는 이야기지요.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 종은 보존될 가치가 없다, 멸종되어야 마땅하다’는 아이디어가 엿보여요. 저는 이러한 ‘인간이 잘못’, ‘인간이 미안해’ 류의 인식이나 주제의식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팁트리 주니어의 필력 때문인지 꽤나 이입하면서 읽었어요. 

상상: 아무래도 팬데믹 국면에서, 이러한 ‘위기’를 일으킨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식의 논의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라, 저도 두 소설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육식과 공장식 축산을 지속하고, 쓰레기를 너무 많이 생산하고, 야생 동물을 상품화하고… 이런 일상들이 더 이상은 지속불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이 팬데믹 이후에 비로소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주영: 두 소설에서 모두 ‘인간 종’이라는 범주가 전면에 등장하는데요. 저는 특히 코로나를 겪으면서 종에 대한 감각과 생각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 사람이 고양이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긴 사례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주변에서 많이들 ‘인간들 잘못이다’라고 하더라고요. 소설에서도 이런 아이디어가 등장했죠.

오온: 두 소설이 모두 인간에 의한 지구의 환경 위기를 경고하긴 하지만, 생태주의적인 소설인가, 라고 물으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아인 박사」의 경우에요. ‘인간이 죽는 게 친환경’이라는 식의 절멸주의적 사고는 사실 굉장히 나르시시즘적이에요. 인간의 자의식 과잉이랄까요. 이러한 식의 반성은 너무 쉽게 인간중심주의로 굴러떨어지죠.

만두: ‘인간이 문제’라는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더라도, ‘그러니 우리 인간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하는 것과 ‘인간 다 죽어’라고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죠.

낑깡: 완전 동의합니다.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가 소설 전반에 깔려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딱 잘라서 인간의 탓으로 환원시킬 수 있을까요?

만두: 절멸주의적 사고라고 하니 떠오르는 게 있어요. 저는 금붕어를 데리고 살거든요. 인간은 다 죽고 금붕어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적이 있는데, 인간이 다 죽은 세상에서는 인간 문명이 남긴 잔해가 금붕어를 죽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인간이 존재하는 자연에 적응한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봐도, ‘인간이 죽어야 동물이 산다’는 식의 사고는 위험할 뿐더러 실재에도 부합하지 않아요.

오온: 해러웨이가 「반려종 선언」에서 이야기하듯, 개와 고양이도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진화한 종이지요. 

민주: 맞아요. 사실 이러한 나르시시즘적인 절멸주의 스토리는 로맨스 장르로 읽기에도 기분 나쁜 이야기예요. 아인 박사가 가이아 여신을 숭배하고 사랑하면서 이런 일을 꾸미는 건데, 연애 관계에서 ‘너를 위해 너를 괴롭히는 사람들 내가 다 죽이고 왔어’라고 하면 너무 끔찍하지 않나요? 사랑 때문에 인간을 자멸시키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자의식 과잉이에요.

낑깡: 지브리 영화에도 보면 인간 문명을 굉장히 악마화하고, 자연은 그 자체로 온전한 것이자 보존해야 하는 것으로 그려지죠. 사실 자연을 착취하는 기술의 발전, 혹은 남성중심성과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들이 다 가려진 상태에서 문명/자연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늘 불편해요. 

만두: 비슷한 사고방식을 소재로 다루어도 주제의식은 좀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은데요. 지브리 영화 중에 벼랑 위의 포뇨 같은 경우요. 포뇨의 아버지가 바로 아인 박사 같은 인물의 전범을 따르는데요. 인간문명을 증오하고 해일로 싹 쓸겠다는 계획을 세워요. 그런데 주인공 포뇨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고, 인간 아이 소스케를 사랑하거든요. 저는 그걸 책임을 지고 관계를 지속해가고자 하는 이야기로 읽었어요. 인간절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야기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2. 자연의 영성과 섹슈얼리티

만두: 저는 작가가 이런 아이디어를 섹슈얼리티와 연결시켰다는 게 인상깊었습니다. 「아인 박사」를 읽으면서 특히 그 부분에 주목하게 되었어요. 

오온: 「아인 박사」가 ‘가이아’에 대한 사랑으로 인류를 절멸시킨 이야기였죠?

상상: 네. 처음엔 ‘그 여자’라고 일컬으면서 외모나 몸매, 상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묘사하길래 등장인물일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가이아 여왕님’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자연을 여성화하고 대상화하는 관습적인 시각을 반영한 걸까요? 

오온: 그런 것 같아요. 「아인 박사」의 경우,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굉장히 클래식한 이야기죠. 이러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언제나 남성으로 그려져요. 말씀하셨듯 이 소설에서 재미있는 부분 중 하나는, 가이아 여신이 굉장히 섹슈얼하게 묘사된다는 것이에요. 가이아를 마치 인간 여성인 것처럼 ‘육감적인 몸매’와 같은 식으로 묘사하죠. 영적인 것과 섹슈얼한 것의 만남이랄까요. 다른 한편으로 「체체파리」의 경우에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죽이는 이유가 처음에는 여성혐오라는 사회문화적인 언어로 설명되다가, 나중에는 과학적인 언어로 설명되더니, 마지막에는 영적인 것이 현현하죠. 저는 이 마지막 부분에서 정말 섬짓했어요. 이 소설을 읽는 경험을 더욱 끌어올리는 부분이랄까요. 

만두: 종교라는 것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얘기는 많이 하잖아요.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믿음에 근거하여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 예를 들면 시체를 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장하는 것 같은, 그런 행위의 증거를 종교의 시작이자 인간 문명의 출발점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인상깊게 들었던 생각이 나는데요. 물론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관점이지만, 인간성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성차별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영적인 것과 섹슈얼한 것이 교차하는 인간에 대한 ‘구제법’은 단순히 생물학적 생식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소위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죠.

상상: 「체체파리」의 마지막 장에서 천사라는 신비로운 형상이 등장하잖아요. 마치 이 모든 사단을 일으킨 자가 바로 인간 이상의 존재인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천사로 보였던 이 인물은 사실 ‘부동산 중개업자’로 드러납니다. 저는 여기에서 제3세계의 구원자를 자처하지만 땅을 개척하면서 삶의 터전을 황폐화하는 제1세계 가부장적 자본의 권력을 넌지시 암시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3. 책임 있는 주체로서 ‘인간(man)’의 젠더

오온: 비슷한 맥락에서, 「체체파리」에서는 인간 종을 둘로 나누잖아요. 첫 번째는 사냥 당하는 여성이라는 종이고, 두 번째는 천한 영장류죠. 편지에서 ‘멸종 위기’라고 자조하는 것도 그렇고. 반면에 「아인 박사」에서는 가이아라는 여성형 신은 대타자로 등장합니다. 「체체파리」는 인간의 절멸이긴 한데, 사실 여기에서 인간은 남성형이죠. ‘지구를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하게 만든 인간(man)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인간 종의 절멸’이라는 아이디어를 인간의 나르시시즘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기도 하죠.

만두: 남성성이 인간종을 죽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종의 약한 고리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걸까요? 왠지 남성들이 남성다움 수행을 위해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또 성착취를 지속하며 코로나19를 확산시키는 현 상황이 떠오르네요. 남성성 자체가 인류에 해롭다는 거죠. 

오온: 하나는 여성 살해라는 모티브가 드러나서 경중이 조금 다를 수는 있겠는데, 두 단편 모두 생태 밸런스가 깨지는 것이 곧 종의 멸종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져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종의 멸종이라는 극단적인 문제가 쉽게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죠. 「체체파리」를 읽을 때 가장 섬뜩한 것은, 동물에게 가하는 조작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재생산의 통제 말이에요. 「아인 박사」가 「체체파리」보다 먼저 쓰인 소설인데, 단지 생태계의 밸런스가 무너진다고 해서 인간 종이 끝장난다기보다는, 종에 관한 문제에서는 재생산, 생식이 핵심이라는 통찰을 「체체파리」에서 보여준 것 같아요. 좀 더 정교해졌다고 할까요.

만두: 근래에 코로나19와 같은 주기적인 팬데믹이 ‘인구 조절’이라고 하는 담론들이 농담처럼 떠돌기도 했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 담론이 팬데믹 상황에 책임이 덜한, 더 취약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 같거든요. 「아인 박사」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데려가는 여성의 모습이 굉장히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려진다거나. 그런데 「체체파리」는 바로 그런 점을 짚고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더 윤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낑깡: 소설에 다양한 버전의 남성들이 등장하는데요. 다들 바니라는 인물은 어떻게 보았나요? 여성들에게 비교적 협조적이었잖아요.

만두: 객관적으로 관찰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지식인 계층을 그려내는 것 아니었을까요? 관찰자로서 남성이요. 존재하는 차별, 인간의 추악한 부분들을 배제하고 합리적 지식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은 집단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인물이 학살의 바깥에서 계속 이성적이고 선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너무 얄밉더라고요. 틀렸지만 비난받고 싶지 않는 위치에 놓이고 싶은 사람들. 

오온: 합리적인 설명자의 위치에 있는 거죠. 작가가 판단은 보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분명히 합리적이고 옳은 사람이지만, 어쨌거나 피해자를 도와주지만, 결국에는 당사자일래야 당사자일 수가 없는 거죠. 설명을 해서 소설의 세계관을 빠르게 입력시키고자 하는 서술자라고 보기에는, 이 사람의 위치 자체가 너무나 안전해요. 남편이 죽고 여성이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 여성이라는 종이 절멸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장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기능을 하는 인물이 아닐까요?

현재 우리는 2020년부터 지속된 코로나19와 함께 팬데믹 상황을 살고 있습니다. 팬데믹 뿐만 아니라, 수 년전부터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미세 먼지, 기후 변화 등의 징후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그대로는 지속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생태 위기’와 ‘인간의 책임’이라는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대두되는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종류의 책임감이란 어떤 것일까요? 팁트리 주니어의 소설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은 맞닥뜨린 위기 상황에서 쉽게 가질 수 있는 절멸주의적 태도를 그려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지금껏 자연과 인간을 구분하고 자연을 무력화하고 착취해 온 인간중심적 세계관과 맞닿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끝났다’거나 지구에 해를 끼치기만 하는 인간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는 미래주의적 태도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곤경과 함께 살아갈(staying with trouble)’ 구체적인 책임성을 고안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편, 「체체파리의 비법」은 여성을 향한 성욕과 결부된 살해 충동을 소재로 하여, 생태계 문제를 종의 재생산 및 성차별이라는 렌즈를 통해 제시합니다. 이대로는 지속불가능한, 그리하여 책임을 가지고 바꿔나가야 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는 성차별과 같은 사회문화적인 문제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리: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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