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IWFF] 쟁점들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 GV 대담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윤가현, 류현아, 이가현, 2021) 영화 이미지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은 ‘여성의 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입니다. <찌찌친구들>의 가슴해방시위를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My Body My Choice My Tattoo>는 타투와 여성의 몸을 통해 개인의 몸의 정치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윽고 마지막의 <300>은 청년 여성 정치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이숙경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결성된 불꽃페미액션이 실행해 온 싸움과 연대의 기록”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지속하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속하고 쌓아 온 시간들을 카메라가 성실하고 굳건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글쓴이 또한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한 사람으로서 이 기록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였습니다(페이지 보기). 이에 감독 3분과 영화제작프로젝트의 기획자 1분을 모시고 GV를 진행하였습니다.

참여자: 류현아(<찌찌친구들> 감독님), 윤가현(<My body My choice My tattoo>감독님), 이가현(<300>감독님), 한솔(영화제작프로젝트기획자), 한태경(GV 진행 및 정리자)

1. <찌찌친구들>

태경: 다큐멘터리에서 활동가들은 맨 가슴으로 공적인 공간을 활보합니다. 이전에는 이러한 모습이 사진으로 남겨졌다면 다큐멘터리에서는 영상이라는 매체로 남겨지는데요, 사진에서 영상으로 매체가 바뀌었을 때 이것을 촬영한 사람으로서 느껴진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류현아: 우리의 액션은 여태까지 파격적이고 너무너무 급진적이어서, 뜨거운 감자나 이슈로만 소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하고싶은 이야기가 오히려 무맥락으로 소비되었다고 봐요. 그리고 이번 연도는 코로나 때문에 다른 시위나 집회를 하지 못했어요. 그렇기에 시기상 영상이라는 매체로 우리 운동의 맥락을 담아서, 우리가 왜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윤가현: 재작년에는 찌찌해방이라고 바다에 무박으로 가서 가슴을 깐 적이 있었는데, 코로나가 퍼지고 외부에 나가지 못하면서 가슴 까는 행사도 없어졌어요. 그런 와중에 한솔님이 ‘코로나가 터졌으니까 스스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프로듀싱과 교육과정에 들어갔고, 거기에서 찌찌에 관한 것은 현아 감독님이, 여성 정치인은 이가현 감독님이 맡아주셨어요. 타투라는 주제는 원래 다른 감독님이었는데, 제가 중간에 맡게 되었어요.

태경: 가슴해방시위는 겨털해방시위에서 계보를 찾는 것 같아요. 그런 계보에서 이러한 시위가 나오고 이번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또 미래의 어떤 활동과 운동의 계보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류현아: 굉장히 어렵고, 미래에 대한 선지적 능력이 필요한 질문이네요. 그런데 저에게 미래는 어둡고 흐려서 대답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가현: 8월 22일이 고토플리스데이(GoTopless Day)였습니다. 그날과 관련해서 여성의 가슴을 불법으로 취급하는 일에 대해 논의하는 줌 미팅에 참여했었어요. 거기에서 불꽃페미액션이 전 세계 참여자들에게 “우리가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페이스북을 이겼고, 경찰을 이겼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가슴해방시위는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운동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브라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점점 어린 세대들이 브라를 하지 않게 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해변에서 찌찌를 까는 운동이 이어지리라 생각해요. 

윤가현: 다큐멘터리 영화로 <찌찌친구들>을 만드는 것, 이게 고민이었습니다. 장면을 찍는 순간, 영화로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심의를 받잖아요. 저는 최근 남성이 상의 탈의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여성의 가슴을, 얼굴을 블러하지 않고 보여주는 싸움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 <찌찌친구들>을 보면서 집중하면서 본 것이 사람들의 표정이었어요. 이 다큐멘터리에서 드러나는 불편함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 실제로 불편해하더라고요. 재밌는 장면에서도 웃지를 못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봐도 괜찮은 것인가?’를 마주하는 일, 돈 주고 불편한 가슴을 보는 일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어떤 가슴이 나오던,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가슴을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류현아: 사실 운동적인 성격에서의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찌찌’와 ‘친구들’이라는 단어 두 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는 친구들이랑 만나고 대화하는 과정이 나오죠. 예전에는 우리가 어떤 활동, 어떤 운동을 할 수 있냐는 고민을 했는데, 그냥 좋은 사람들이랑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는 단체가 좋은 단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이게 페미니스트 운동 전략 중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활동을 하며 개개인의 성적 실천에 대해서 듣게 되고요. 대한민국 속에서 살면서 내가 성적실천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얘기하려면,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죠. 그래서 그런 장소, 그런 활동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가현: 우리가 이 운동을 할 때 불법 촬영 이슈랑 같이 맞물려서 나왔어요. 가장 중요했던 건 피해자다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쪽에서는 불법촬영당한 몸을 온라인에서 삭제하는 운동이 있었고 한쪽에서는 우리의 몸은 불법이 아니니 삭제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운동이 있었어요. 우리가 스스로 몸을 내보이고 그것을 삭제하지 말라고 했을 때, 우리는 강고한 피해자다움을 부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어떤 성적실천을 하더라도 성폭력을 정당화하지 않아야 하죠. 저는 이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태경: 세 다큐멘터리 중 불꽃페미액션의 이야기가 가장 긴밀하게 엮여있고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불꽃페미액션의 이야기가 가슴해방시위라는 운동을 통해 조금 드러난듯했어요. 불꽃페미액션 자체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생각은 없는지 알고 싶고, 운동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과 조직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윤가현: 사실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바운더리>(2021)라는 작품을 냈어요. 이가현, 세정, 미현이라는 인물이 출현합니다. 이번에 최초로 공개하는데, 준비 기간이 4년이 걸렸어요. 이건 제가 순전히 찌찌까고 겨드랑이 까는 게 웃겨서 만들었어요. 그게 어느새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 간의 고민이 쌓였어요.

이가현: 윤감독님 영화에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 담겨있어요. 활동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불꽃페미액션이라는 조직의 영화를 만드는 일은 영영 페미니스트 세대의 새로운 활동가들이 어떻게 운동을 시작하고, 어떤 고민과 과제를 남기는지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는 핵심적인 작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우리는 매일매일>(2019)에서 우리 윗세대 언니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지금도 각자 잘 살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지금 현재 우리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은 <바운더리>라고 생각합니다.

2. <My body My choice My tattoo>

태경: 지난 작품인 <가현이들>(2016)에서는 여성과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타투와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몸이라는 주제에 있어 타투라는 대상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윤가현: 이건 사실, 답변하는 것이 조금 애매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얘기해보려고 해요. 이번 영화 제작의 프로듀싱까지는 세 명의 활동가가 참여하고 있었어요. 가현, 현아, 그리고 다른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이 중도에 나가는 일이 벌어졌어요. 영화를 옴니버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영화를 빨리 촬영해서 빨리 만들어야 했고, <찌찌친구들>과 <300>을 연결할 두 다리가 필요했어요. 그러다가 ‘타투와 여성의 삶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타투를 한 사람도 늘어났으니까요.

태경: 다큐멘터리에는 타투의 시술자와 피시술자 등장하여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영상에서는 타투 자체에 대한 의미를 묻기 때문에 시술자와 피시술자 둘의 차이가 부각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둘에게 보였던 서로 다른 모습이 있었다면 여쭙고 싶어요.

윤가현: 부각이 되지 않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피시술자 3분 중 2분이 불펨 활동가 이시고요. 그분들께 페미니스트 타투이스트를 알고 있다면 알려달라고 얘기를 했고, 한 분을 추천받아서 연락이 되었어요. 그 외의 시술자들은 이 사람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그림만 보고 찾아갔어요. 제가 어떤 영화를 했는지 이게 어떤 영화인지를 얘기하다가 인터뷰까지 했는데 이야기를 너무 잘해주셨습니다. 이분들은 페미니스트 타투이스트이고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어요. 여성혐오적인 작업은 하지 않는다든지, 타투를 예술이 아닌 기술로 본다든지. 그러나 영화에서는 시술자와 피시술자의 차이를 크게 다루지 않았어요. 여성의 몸에 타투를 새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새기는 사람과 새겨지는 사람 모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둘 다 새겨지는 일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집중했어요.

태경: 다큐멘터리에서 언급되듯이 타투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자기 몸에 대한 긍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타투를 한 여성과 타투를 한 여성의 몸에 대한 성적대상화나 그러한 시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여성과 타투라는 주제를 다큐멘터리에 담으면서 이러한 이중적인 시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윤가현: 이건 실제로 겪은 이야긴데, 제가 팔에 있는 타투를 할 때의 일이에요. 타투를 다 하고 나서 타투이스트가 저에게 “혹시 업로드할 사진에 포토샵을 해주길 원하냐.”고 물었어요. 제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간혹 팔을 조금 얇게 포토샵을 해달라고하는 분도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살색을 좀 더 하얗게 하고, 좀 더 살이 날씬해 보이게. 저는 그 경험이 좀 황당했어요. 그래서 저는 괜찮다고, 그냥 사진을 올려주셔도 된다고 했어요. 영화를 찍은 건 제가 타투를 한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어요. 그런데 우디라는 타투이스트가 이것에 대해 얘기를 하더라고요. 예쁜 사람, 날씬한 사람, 예쁘다고 생각되는 그런 사람만 타투를 할 때 좀 더 예쁘다고 여겨지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타투는 예쁜 몸에다가 새겨야만 그 타투가 예쁘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영화에서 나온 그 장면이 위와 같은 질문 때문에 나온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좀 황당해요. 예를 들어 타투를 한 여성들은 싸보인다거나 걸레같다는 이미지가 아직도 있어요. 그게 뭘까, 그런 고민이 들기도 했어요.

3. <300>

태경: 앞선 질문과 마찬가지로 <300>이라는 작품은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동시에 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가현님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삶과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가현 감독님은 페미니즘당창당모임에서 활동하시는 정치인이시기도 하시구요. 정치인으로서 동시대의 다른 젊은 여성 정치인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담는다는 것이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어떤 목표였을지 두 가지가 궁금합니다.

이가현: 저는 불꽃페미액션 활동도 하지만 페미당 창당 활동도 꽤 오랫동안 해왔어요. 페미니즘 정치라는 것이 정책 의사 결정이나 성평등한 정책들을 내는 것도 중요한데, 정말 중요한 건 페미니스트 플레이어들,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난해에 출마했어요. 그때 저는 무소속에다가 탄탄한 조직기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돈도 없었어요. 그래서 선거가 힘들었고 그 선거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의 우선순위가 아니어서 접었었어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다가 불꽃페미액션이 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기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논의 과정 중에 꼭 찌찌해방과 겨털해방이 아니어도 된다면, 여성정치인과 몸의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얘기가 되었어요. 그 당시에 류호정 의원 등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 이슈로 여성 정치인의 외모만 이야기하는 모순적인 부분들이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들이 하고 싶은 말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은 페미니스트 정권 창출에 대해 얘기합니다. 우리의 페미니즘 운동이 페미니즘 정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든지 이 정치의 영역에 도전해야 합니다. 이런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태경: 미국 연방 대법관 모두가 9명이 되어야 성평등의 실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 긴즈버그의 말을 인용하며 다큐멘터리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300>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다큐멘터리의 감독이자 현재의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진단하는 한국 정치에서의 성차별과 성평등, 여성정치세력화를 짚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가현: 항상 얘기하기를, 질적 성장보다 양적 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성 정치인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게 조력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치 출마는 시험을 봐서 하는 게 아니라, 관계망, 정당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채택되어야지 공천을 받는 거잖아요. 이 남성중심적인 카르텔 안에서 낄 수 없는 여성들은 몇 배의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정치에 진입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당들에서 마음껏 차별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우리는 박근혜 탄핵 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여성 정치인이면 되냐, 여성주의 정치인이어야 하냐. 이런 질문에 맞설 때 저는 양적 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여성주의 정치인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 긴장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든 페미니스트 정치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정치세력화를 여성의 양적 성장, 질적 성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인 것 같아요.

4. 공통 질문

태경: 코로나 시대에 다큐멘터리를 만드셨잖아요. 코로나라는 사회문화적 상황으로 인한 촬영에서의 어려움이나 인상 깊었던 일을 서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솔: 프로젝트 차원에서는 기획이 서너 번 바뀌었고, 완전히 다른 기획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도 아니었고, 몸의 해방도 아니었고, 겨털해방과 가슴해방이 주가 되는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조금 더 현아 감독님이 말하는 것에 관련된 것이었어요. 참여자들 인터뷰도 하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가지 않아서 기획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물리적인 촬영공간을 구하는 거나 아예 인터뷰를 찍는 걸 못해서 기획이 멈추는 일도 있었어요. 이 크루 자체가 정서적으로는 유대를 맺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물리적으로 말하기도 어려웠고, 밥 한번 먹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어려웠고요. 이게 단순히 회사일이 아니라 활동인데도, 활동가들 사이의 유대를 만드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윤가현: 교육을 하기에도 힘들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계속 단계가 변화하면서 모일 수 있는 인원이나 상황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촬영을 나가게 되었을 때, 예를 들어 이가현 감독님은 국회로 가는 사람을 찍어야 했었는데 국회로 못 갔던 일도 생겼고요. 저도 타투이스트분들을 인터뷰하면서 마스크와 위생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사실 그런 것들이 많이 기억에 남아요.

태경: 개별 작품이 아니라 옴니버스라는 형식으로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하셨어요. 옴니버스라는 형식을 취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내게 된 이유와 고민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한솔: 사실 기획 세미나 첫 시간에 윤가현 감독님이 기획안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참여한 셋 다 너무 다른 걸 가져왔어요. 그게 옴니버스로 간 제일 큰 이유예요. 절대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 되기도 했어요. 연결고리나 이음새에 대해서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총감독으로서 윤가현 감독님이 어떤 이음새를 가져갈 것인지 고민했다고 알고 있는데, 저도 그것을 좀 듣고 싶어요.

윤가현: 사실 하나의 구성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자 했어요.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하나의 구성으로요. 3개가 붙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있었어요. 목표는 하나의 옴니버스라고 얘기했지만, 마지막까지도 이것을 각자 따로 출품할 것인가, 옴니버스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자신도 없었기도 했지만, 얘기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옴니버스는 잘된 선택이었어요. 저는 이점이 있으면 각각 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이 3편은 같이 가야지만 의미가 있었습니다. <찌찌친구들>만 봤으면, <My body My choice My tattoo>만 봤으면, <300>만 봤으면 부족했을 거예요.

한솔: 저희는 이 3편이 과연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는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냥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작품을 보고 그 흐름이 너무 좋았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3편의 구성이 가슴에서, 타투에서, 일상과 정치로 점층적으로 퍼지는 느낌이 좋았다고요.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알 것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도 옴니버스의 선택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찌저찌 우당탕탕했지만 최선을 다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경: 네 분 모두 불꽃페미액션과 긴밀하게 엮여있지만, 서로 다른 다큐멘터리를 만드셨고 서로 다른 길을 걷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꽃페미액션이 현재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짤막하게 여쭙고 싶습니다.

이가현: 일단 불꽃페미액션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이 커뮤니티는 여성혐오로 가득한 세상에서 숨 쉴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봐요. 여기는 하나의 커뮤니티죠. 이 시기에 유대를 쌓았던 여성들과 함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안정감, 이런 것들을 불꽃페미액션에서 느낀 것 같습니다. 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한솔: 저는 개인적으로 불꽃페미액션을 안 했으면 활동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한발만 걸치는 삶을 살았는데, 처음으로 두 발 다 뛰어든 활동이 불꽃페미액션이었어요.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항상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채감이 있었어요. 특히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제가 투표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유예할 수 없는 어른의 책임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 이후에 사회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 책임감으로 했어요. 근데 불꽃페미액션에서 처음으로 즐거워서 할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어떤 책임이 아니라, 어떤 숨통이 트이는 행위로서 사회운동을 처음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게 저한테는 제일 큰 의미예요. 그런 의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뭘 하든지, 여기에서 얻은 감정들은, 인연들은 평생 가지 않을까요.

윤가현: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선택하지 않은 선택을 받은 느낌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제가 불꽃페미액션을 시작한 이유는 “내가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이 있어. 내가 페미니즘 모임에 가입할 거야.” 가 아니었어요. 친구들이 노동운동에서 여성운동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그 모습을 촬영해왔어요. 그래서 제 안의 불꽃페미액션은 제가 뭔가 반항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계기였어요. 제가 방황해도 괜찮다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그런 공간이요. 지금의 불펨은 이게 지나가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조직입니다. 이전에 <가현이들>을 하면서는 이거 끝나면 새로운 걸 만들어야 지속되겠구나 했다면, 여기 <불꽃페미액션>에서 만난 사람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예전엔 운동이라고 하면 정말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운동은 조금 다른 의미예요.

류현아: 사람이 다양한 각도로 세상을 보는 원기둥으로 산다고 치면, 예전엔 그 시야 중 하나로 불꽃페미액션이 있었는데, 지금은 저라는 원기둥을 아예 통으로 감싸고 있는 것 같아요. 시야의 모든 프레임에 이게 걸쳐있죠. 예전에 한솔이 감동받았다는 말을 다시 꺼내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브로콜리 너마저의 ‘서른’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의 가사 중에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면”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제가 불꽃페미액션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영화를 찍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일이 더 힘들었어요.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막 살다가 그 노래의 가사를 딱 들었는데, 제게는 가장 빛나는 순간이 불꽃페미액션 사람들이랑 같이 시위를 하던 시간이었더라고요. 저는 화가 많은 사람이라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야 하는데, 사람에게는 화를 내는 인성이 아니라서 소리지를 공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 커뮤니티가 적합했어요. 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건 저의 삶에서 면면이 마주치는 사람들이에요. 그전에 만나왔던 친구들은 우연 속에서 만나왔던 사람들인데, 이 활동에서 만나온 사람들은 우연 속에서 만나온 사람들이랑은 다르잖아요. 이런 경험이 매일매일 너무 저를 알차게 해주니까 저도 중독되는 것 같아요. 못 빠져나와.

윤가현: 제 <바운더리> 영화에 그런 말이 있어요. 작품 속 미현이 그런 말을 해요. “불꽃농구단할 때 만난 사람들,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엇인진 모르겠는데 다 믿을 수 있다.”라고요. 저에게 불꽃페미액션은 그렇습니다. 제 인생에 아무런 조건 없이 불만만 가지고 만났을 때도 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가족이나 친구만큼 믿을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 몇몇은 얼굴도 못 봤지만 그랬을 때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 저는 그것만으로도 엄청 의미가 큰 커뮤니티라고 생각해요. 우리 친구들이 짱이다.

지난 제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윤가현 감독님의 <바운더리>(2021)가 개봉했습니다. 이번 GV에도 등장한 것처럼 이 영화는 “페미니스트 선언 이후 4년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로 살며 여름과 같이 뜨겁고, 지독하고, 눅눅했던 4년 동안의 일기(윤가현)”를 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불꽃페미액션의 활동가이자 여성학 연구자인 여여가 가슴해방운동을 성실히 기록한 『우리 좀 있다 깔 거예요』(여여, 2021, 이매진)가 출판되었습니다.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과 같이 이 두 개의 매체 또한 사적인 경험이 공적인 경험이 되는 페미니스트의 삶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불꽃페미액션: 몸의 해방>은 이러한 삶과 경험의 성실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짱이죠.

정리 : 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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