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냉동과 경계(boundary) 위의 여자들

🌊강물(최송희)

*이 글은 필자의 석사학위 논문 “한국의 난자냉동기술산업과 싱글여성의 변화하는 생애 기획”(2021)의 일부 내용과 그에 대한 단상을 담았다.

 1. 들어가며

지난해 1월, 우연히 한 여성을 만났다. 몇 년 전 그는 난소기형종 제거술을 받았는데, 의사로부터 난임 가능성이 높다며 난자 냉동도 권유받았다. 당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난자를 얼린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었으나, 고민 끝에 그는 두 차례 난자를 얼렸다[1]. 필자에게도 ‘난자 냉동’은 생경한 주제였다.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인터넷 상에서 난자 냉동 후기는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난자 냉동을 연구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난자 냉동에 대해 잘 모른다거나 한 번쯤 들어본 적은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만하니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난자를 얼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더욱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당연히 애 낳으려고 난자 얼리는 거 아니야? 무슨 질문이 필요해?”

[1] 보통 난자동결시술은 약 2주정도 걸린다. 병원에서 혈액 검사와 초음파 검사로 난소예비력(Ovarian Reserve, 난소기능을 측정하는 지표)을 가늠한 뒤, 의사와 상담을 거쳐 난자 채취일을 잡는다. 더 많은 난자를 확보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약제를 투여해 과배란을  유도하고,  채취일로부터 36시간 이전에 난포성숙주사(HCG)를 맞는다.  이후 시술일에 의사가 10~20분 이내로 난자를 채취하고, 배양실에서 연구원이 성숙 난자를 선별하여 동결보존액으로 급속 냉동하면 난자동결시술의 한 사이클이 끝난다.

 2. “저 아이 낳을 생각 없는데요.”

영화 <마이에그즈>의 메이킹 필름 중 한 장면 (출처: 반지하살롱 유튜브)

비혼여성의 난자 냉동기를 그린 단편영화 <마이에그즈(My Eggs)>(2020・김소이 감독)가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아이 낳기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하는 수진은 엄마의 재촉으로 병원에 찾아가는데,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으면 건강한 난자를 하루 빨리 얼리라는 의사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저 아이 낳을 생각 없는데요.” 

순간 정적이 흐르고 의사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의사는 이내 수진의 난소나이 마흔 여섯을 강조하며 시간이 지나면 난자 채취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난소나이에 고민하던 수진은 결국 난자동결시술에 참여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결과에 심란한 수진은 자신의 생활 습관, 연애 관계 등을 탓하는 엄마에게 다시 한 번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며, 자신과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소리친다.

영화는 비혼주의자 수진이 어떠한 감정과 생각으로 난자를 얼렸는지를 조명한다. 그리고 난자 냉동을 하더라도 반드시 임신・출산의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다양한 환경과 선택의 조건을 드러낸다. 즉 애를 낳는 것과 낳지 않는 것으로 획정될 수 없는, 경계에 오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과연 아이 낳을 생각이 없던 수진의 생각은 바뀌었을까? 만일 수진이 아이를 낳고 싶어 난자를 해동하기로 결심한다면, 어떠한 풍경이 펼쳐질까? 여기 아이를 낳고 싶었던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3. 한국에서 냉동 난자로 아이 낳기와 그 현실

한창 논문에 열중하고 있던 2020년 11월,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의 출산 소식으로 한국 사회가 들썩였다. 사유리는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였는데, 한국에서 얼려둔 난자로 도무지 임신을 시도할 수 없었다며 ‘아이 낳을 권리’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아이를 낳고 싶어 애당초부터 난자를 얼렸던 그가 왜 일본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을까? 누구든 냉동 난자로 임신을 시도하려면 난자를 해동한 뒤 체외수정시술을 거쳐야 한다. 체외수정시술은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키고, 시험관에서 배양한 배아를 자궁에 이식시키는 과정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자 수증부터 체외수정시술 전반은 부부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유리는 냉동 난자를 한국에 남겨 두고 일본으로 떠났다.

물론 사유리 이전에 기증받은 정자로 출산에 성공한 사례가 알려졌던 적도 있다. 2007년, 방송인 허수경은 이혼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체외수정시술에 참여하여 이듬해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는 당시 난자 채취에 대한 규정이 전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후 2005년 11월 황우석의 배아줄기세포 복제연구 사건으로 난자 채취 및 이용에 대한 규제들이 한층 강화되었으며, 보조생식술의 대상도 제한되었다. 생명윤리법・모자보건법 등 여러 법제도와 그에 근거하는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시술 윤리지침은 체외수정시술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을 부부 대상으로 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수진이 이 사실을 모른 채 병원을 다시 찾았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자. 유리 너머 영하 196도의 질소탱크[2]에 잠들어있는 난자를 바라보며 수진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2] 난자냉동기술은 정자・배아의 냉동기술보다 비교적 늦게 개발되었다. 성숙된 난자의 약 8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저온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채취한 난자를 고농축 동결보존제(액체질소)에 5분 이내로 얼리는 유리화 동결법으로 난자를 냉동 보관한다.

4. ‘사유리 보도’ 이후의  제도적 움직임

연일 계속된 사유리 출산 보도와 함께 여성이 ‘자발적 비혼모’가 될 수 없는 한국의 제도적 한계들이 지적되었다. 이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단독 출산을 지원할 제도적 개선책이 모색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개인의 삶을 존중하기 위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비혼모 단독 출산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이번 10월부터 진행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사유리가 ‘비혼 출산’의 참고인 자격으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발언할 계획이다(기사 보기).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많은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한 사이클 당 200~500만 원의 비용이 드는 난자동결시술의 급여화에 대한 법안도 발의되었다. 지난 8월 국민의 힘 한무경 의원은 생식세포의 동결 및 보존행위를 건강보험 급여대상으로 규정하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법 제41조 제4항에 ‘임신을 목적으로 채취한 정자와 난자를 동결하고 보존할 시에 이를 건강보험 비급여 대상으로 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단서 조항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이다. 한 의원 측은 보조생식술 및 그 준비행위를 급여대상으로 지원하여, 저출산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밝혔다(기사 보기). 이처럼 난자냉동기술은 한국의 인구 정책과 긴밀한 보조생식술의 맥락 안에서 저출생의 해법으로 풀이되고 있으며, 얼려둔 난자는 반드시 여성의 임신과 출산으로 끝맺게 될 것이라 전제한다.

한국에서 체외수정시술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은 정부의 인구조절 정책과 함께 해왔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은 과잉인구 조절을 위해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하여 여성들을 대상으로 피임술을 종용했다(조은주, 2018). 서울대병원의 여성불임복원시술센터는 불임시술을 받은 여성들에게 복원수술을 홍보하며,  20대 후반 여성들에게도 복원이 가능하니 안심하고 불임시술을 받도록 안내했다(기사 보기). 그런데 여성의 결함으로 간주되었던 난임(불임)은 발달된 의료기술로 ‘회복해야 할 증상’이 되어, 여성들에게 아이 낳기 위한 노력들을 요하게 되었다(Mamo, 2007). 한국 정부는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등 결혼한 여성들에게 보조생식술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며, 2000년대 불거진 저출생 현상에 대응하려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자신이 난임(불임)이 될 경우를 예측하여 대비하도록 가임력 보존이 권장되면서(Martin, 2010), 난자 냉동도 저출생 정책의 맥락 안에 위치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난임 전문의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냉동 난자의 해동률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 이마저도 5~10%로 병원마다 편차가 크다. 또한, 난자 냉동을 고민하거나 실제로 난자를 얼려둔 여성들을 만났을 때, 정작 냉동 난자로 어떻게 임신 시도를 할 수 있는지 해동 이후의 과정을 모르는 이들도 꽤나 많았다. 다시 말해 수진처럼 아이를 낳겠다는 확고한 생각 없이 난자를 얼리는 여성들이 더 많으며, 냉동 난자를 임신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매우 적다는 의미이다.

5. 난자 냉동을 다시 질문하기

연구를 하며 만나본 스무 명 남짓의 수진이들은 각자의 조건과 상황 속에서 난자를 얼리는 고민을 하거나 병원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캐나다 박사 유학을 꿈꾸는 20대 대학생 수진과 현장직 경력이 더 필요한 30대 경찰 수진은 자신의 꿈을 주체적으로 이뤄나갈 수 있는 기회로 난자 냉동을 고려했다. 기흉,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수진과 기형종 제거술을 받은 수진이 시술을 고민한 이유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그에 쫓겨 섣불리 결혼이나 임신을 계획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편 20대와 30대 때 일에 매달리며 열정을 쏟아부었던 40대의 수진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은 40대 여성에게 향하는 비난들에 난자를 얼렸다. 결혼정보업체에서도 나이 많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았는데, 40대 수진에겐 얼려둔 난자가 완벽한 해결책은 될 수 없어도 구태여 듣지 않아도 될 말들을 차단할 수 있는 도구였다[3].

[3] 난자 냉동에 관한 여성들의 고민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필자의 논문 3~4장 일독을 권유한다.

비혼, 비출산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요즈음, 난자 냉동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제 2, 제 3의 수진이들은 여성의 나이에 부과되는 사회적 시선, 몸 상태(병력), 직업, 직군과 직장 내 문화, 가족관계 내의 경험 및 가족계획, 소득(재산) 등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 부딪치는 상황 속에서 난자 냉동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진의 난자 냉동기는 그 자신도 내리지 않은 결말을 맞이하며, 저출생 정책의 기조 안에서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수진처럼 아이 낳음과 낳지 않음의 경계 위에 있는 여성들의 욕망과 현실은 부유한 채 남아있다. 이렇게 변화하는 여성들의 생애 전망과 기획에 호응하기 위해선, 앞으로 난자를 얼리려는 여성들의 다양한 위치뿐만 아니라 임신・출산에만 한정되지 않는 재생산 실천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좌표를 찍어야할 것이다. 질문을 다시 해보자. 왜 여성들은 난자를 얼리는가? 혹은 얼리려고 하는가? 또한, 어떤 여성들이 난자냉동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난자 냉동을 저출생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권리와 재생산 실천을 보장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더 많은 수진이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 조은주. (2018). 『가족과 통치』. 파주: 창작과 비평.
  • Mamo, L. (2007). Queering reproduction: Achieving pregnancy in the age of technoscience. Duke Universtiy Press.
  • Martin, L. J. (2010). Anticipating infertility: Egg Freezing, genetic preservation, and risk. Gender & Society, 24(4), 526-545.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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