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은지는 27살 취준생이다. 대학가 근처의 원룸촌에서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 방에서 거주하고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의 30%가 월세와 공과금으로 지출되고 있다. 5평 남짓의 반지하 원룸은 지난 여름 긴 장마로 물난리를 겪으며 건물 내벽에 금이 갔다. 금이 간 틈 사이로 물이 새어 들어오면서 물길을 따라 곰팡이가 피었다.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했지만, 집 전체가 난리라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집주인은 오히려 은지에게 하소연했다. 옵션으로 있는 에어컨은 오래되어 틀어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계속 틀어두자니 전기세가 걱정되어 에어컨을 끈다. 창문을 열려다가 누군가가 이 집 안을 보거나, 범죄에 노출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조금 열어둔 창문 틈으로는 계속해서 모기가 들어온다. 날이 추워지지 않으니 10월이 되어도 모기가 나온다. 원룸가에 가득한 플라스틱 쓰레기의 퀘퀘한 냄새가 집 안으로 들어올 때면 머리가 아파서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다중시설을 사용하기도 쉽지 않다.
일상 속 기후위기와 은지들
은지는 필자일 수도, 필자의 지인일 수도, 혹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일 수도 있다. ‘은지’라는 흔한 이름처럼, 은지의 이야기도 아마 어떤 누군가의 일상일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의 상황은 단지 자연재해의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다. 올해의 여름이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면, 올해 먹은 커피를 내년에 먹을 수 없다면, 겨우 벗게 된 마스크를 몇 년 내에 다시 쓰게 된다면, 너무나도 끔찍하다 생각하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아주 높은 확률로 겪게 될 미래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의 6차 보고서는 2040년이 되면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040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나, 이미 지구의 평균온도는 1도가 올랐다. 지구의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했을 시 우리가 마주할 현실은 다음과 같다.
기온이 2도 상승하면 빙상이 붕괴하기 시작하고 4억 명 이상의 사람이 물부족을 겪으며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북위도 지역조차 여름마다 폭염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인도에서는 극심한 폭염이 32배 더 자주 발생하고 매 폭염이 지금보다 5배더 오래 지속돼 93배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된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시나리오다. 기온이 3도 증가하면 남부 유럽은 영구적인 가뭄에 시달리고 중앙아시아는 평균적으로 지금보다 19개월 더 오래 지속되는 건기를 겪는다. … 4도 상승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만 뎅기열 발발 사례가 800만 건 이상 증가하고 식량 위기가 거의 매년 전 세계에 닥친다.
David Wallace-Wells(2019). The Uninhabitable Earth: Life After Warming, Tim Duggan Books, 김재경 옮김(2020), 『2050거주불능 지구: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서울: 추수밭, 28-29쪽.
기온이 5도 이상 오른다면 전 지구에서 인간이 살 곳은 없을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근시일 내 기후재난은 일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후재난이 발생했을 시 우리가 겪을 경험은 동일하거나 균일하지 않을 것이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사회적인 불평등과 맞물리며, 더 구체적으로는 각 개인들이 처한 경제적/사회적 상황, 나이, 장애유무, 지역, 그리고 젠더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
은지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취준생 은지는 ’구조적 평등(Fwd 6호 시드글 참고)’이라는 허울 아래서 성차별적인 노동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폭염과 폭우로 인한 피해는 거주시설을 침투하고, 외부 활동을 제약시킨다. 혹시라도 만약 은지가 돌봐야 할 가족이 있다면, 외부활동이 제약될수록 돌봄노동의 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성차별적인 노동 시장, 불안정한 거주 형태, 낮은 에너지 접근성,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기후변화로 인해서 새롭게 생기는 문제들은 아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맞물리면서 취약한 것은 더욱더 취약한 것으로, 기존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젠더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기후 위기 상황에 더욱 심각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수많은 은지들의 이야기는 너무 일상적이라 비가시화되어 있다. 언론으로 보도될 정도의 아주 심각한 ‘사건’이 되어야만 사회 밖으로 드러난다.
2020년 캄보디아 출신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 씨가 한파의 날씨에 비닐하우스로 지어진 숙소에서 사망한 일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인 공분을 샀다(기사 보기). 속헹 씨가 거주했던 숙소는 기초적인 난방시스템조차 구비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드러났다. 폭염과 한파를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비닐하우스에는 아직도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을 것이다. 농업은 건설이나 제조업에 비해서 여성이주노동자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특히 밭일에 많은 여성이주노동자가 종사하고 있는데, 야외날씨에 그대로 노출되어 기후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은아, 하바라(2021)는 여성이주노동자는 남성에 비해서 임금이 낮을 뿐만 아니라, 추가 근무, 심지어 무임금 가사노동까지 맡게 되는 경우도 있음을 지적한다. 일상이 이미 재난인 사람들에게 ‘기후 재난’은 적응해야 하는 또 다른 일상이 된다.
은지와 속헹 씨는 본인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가? 폭우로 인해 외벽에 금이 가는 것을 막을 수도, 한파로 인한 외부 날씨에서 버틸 수도 없었다 (당연히 속헹씨의 경우, 농장주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들은 기후변화를 야기한 정치적/경제적 사회구조의 의사결정으로부터 배제되어 온 역사는 길지만, 그로 인한 피해에서까지 배제되지 않았다. 실제로 재난 발생 시 여성은 더욱 높은 사망률을 보이며, 돌봄/가사노동의 증가, 성폭력에 노출 확률이 증가하는 등 기후위기와 젠더가 교차하면서 피해는 성별화되고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이정필, 박정희, 2010). 책임과 피해의 심각한 불균형, 즉 기후 위기로 인해 발생할 심각한 부정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기후정의’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다.
기후위기와 젠더정의
기후정의 담론은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사람과 피해를 보는 사람의 불일치를 시정하고, 기후 위기 대응 전반에서 발생할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부는 기후 위기로 발생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책임자이다. 국내의 기후 위기 대응 기본법인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명시하며,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탄소 중립 기본법 제2조에서는 두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2. “기후정의”란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사회 계층별 책임이 다름을 인정하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과정에 동등하고 실질적으로 참여하며 기후변화의 책임에 따라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부담과 녹색성장의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어 사회적ㆍ경제적 및 세대 간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13. “정의로운 전환”이란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ㆍ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을 말한다.
한국은 현재 파리협정[1]의 당사국으로서 지구 표면 온도를 1.5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 노력할 의무를 지고 있다. 하지만 5월 10일부로 들어온 윤석열 정부는 기후 위기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으로 당선 전후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 과제 중 세 번째는 “탈원전 정책 폐기 및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국정과제 중 환경에 관한 내용은 “과학적인 탄소중립 이행방안 마련으로 녹색 경제 전환”, “기후 위기에 강한 물 환경과 자연 생태계 조성”, “미세먼지 걱정 없는 푸른 하늘”, “재활용을 통한 순환 경제 완성”이다. 하지만 쓰레기 발생량 자체를 줄이기 위한 계획도,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기업에 대한 규제도, 무엇보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원전 최강국 건설”을 선언하며 원자력발전소를 건설을 재개하고, 제주 제2공항을 포함한 10개의 신공항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국내의 환경단체와 시민사회에서 애써 막아왔던 일들이 순식간에 무화되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1]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전 지구적 장기목표 하에 모든 국가가 2020년부터 기후행동에 참여하며, 5년 주기 이행점검을 통해 점차 노력을 강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파리 협정은 또한, 모든 국가가 스스로 결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5년 단위로 제출하고 국내적으로 이행토록 하고 있으며, 재원 조성 관련, 선진국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여타국가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협정은 기후행동 및 지원에 대한 투명성 체제를 강화하면서도 각국의 능력을 감안하여 유연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 5년 단위로 파리 협정의 이행 및 장기목표 달성 가능성을 평가하는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ing)을 실시한다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출처)
국내에선 기후변화로 인한 ‘적응 정책’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기후재난이 일상인 미래에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갈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기후 위기와 젠더 불평등에 관한 논의는 꺼내기조차 쉽지 않다. 현재 기후 위기 대응책은 재생에너지,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녹색산업 등, 온실가스 농도를 낮추기 위한 ‘기술’ 중심의 대책이다. 기술적인 해결책은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기술적인 해결책만이 만능은 아니다. 현재의 기후 위기의 원인이 단순히 ‘온실가스’와 ‘기술의 부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다양성과 식량주권을 해치고, 천연자원을 착취하고,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현 사회체제를 유지하면서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은 없다. 기후 위기의 원인이 끊임 없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성장 중심의 경제구조와 남성중심적인 구조임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현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다.
국내의 상황은 암담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는 꾸준히 젠더주류화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져 왔다.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하에서 기후변화는 성 불평등을 포함한 기존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것을 인정하며, 이를 위한 대응으로 젠더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가 진행되고 있다[2]. 또한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기후변화에 대응을 위한 정책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스트그린뉴딜연합(Feminist Green New Deal Coalition)에서는 기후변화와 교차되는 지점들(인종, 경제, 노동, 재생산, 젠더정의 등)에서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성평등한 기후 위기 정책 수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정책 수립에 앞서, 젠더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정책이 제안되었는지, 기후변화 회복과 적응에서 재생산 건강권을 중요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지, 자연의 상품화, 착취, 이윤추구와 같은 기후 위기 원인에 의존하여 해결책을 제시치 않는지, 무임금으로 비가시화된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하고 있는지 등의 질문들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한다 (원문 보기).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의 작업을 발판 삼아, 앞으로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2] 유엔에서 정의하는 젠더주류화는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전 분야의 정책을 수립, 이행,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과정에 남성과 여성의 사회·문화·환경적 조건과 관심요소가 고르게 반영되어 사회 일원 모두가 동등한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성평등 혹은 젠더평등을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이계영, 오채윤, 2020)
은지가 취직에 성공하여 반지하 집을 떠나더라도, 그 반지하 집에는 또 다른 은지가 들어올 것이다. 그렇기에 기후 위기 대응책은 한 명의 은지를 구출하는 것이 아닌, 은지들의 일상을 바꾸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젠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는 앞으로 더욱더 많이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국내 기후위기 대응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어떤 상황에 놓이건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기후정의를 질문하고, 우리의 언어로 문제와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내 상황에서 기후변화와 젠더 관점이 교차하는 상황은 무엇인지, 어떤 문제들이 비가시화되어 있고 이야기되어야 하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은 어떤 것일지,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페미니스트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
참고문헌
- David Wallace-Wells(2019). The Uninhabitable Earth: Life After Warming, Tim Duggan Books, 김재경 옮김(2020), 『2050거주불능 지구: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서울: 추수밭.
- 이계영, 오채운 (2020). “우리나라 기후기술협력 프로세스 상 젠더 주류화 전략 연구: 유엔기후변화협약 하에서 기후기술과 젠더 주류화 현황 분석에 기반하여”, 한국기후변화학회, 11(5-2), 455-479쪽.
- 이정필, 박진희 (2010). “젠더 정의 관점에서 본 기후 변화 대응 정책”, 한국환경사회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3-18쪽.
- 하바라, 정은아. (2021). “가중되는 기후위기, 여성이주농업노동자, 쪽방촌여성”, 여/성이론, (45), 40-59쪽.
- Feminist Green New Deal Coalition, Building Feminist Policies for Climate Justice (FemGND Admin,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