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발전, 그리고 마을의 안과 밖: 개발/발전은 마을을 어떤 장소로 만드는가?

🌙 상상

이 글은 나의 석사논문 “변화하는 제주도 개발 담론과 마을, 땅을 둘러싼 성원권의 젠더정치학”의 연구 내용 일부와 연구 이후 현장의 변화를 담고 있다.

1. 마을의 발전 프로젝트: ‘미발전된’ 마을에서 ‘소비가능한’ 마을로

‘무분별한 개발’은 안 되지만, 우리 마을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마을 주민들의 가치 판단(지난 편 참고)은 마을이 ‘낙후되었다’거나 ‘침체되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마을의 낙후성과 침체성은 관광객이나 외부인이 ‘벵듸’마을에 그다지 많이 드나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에 따라 마을 주민들은 마을 발전을 위해 대규모 개발사업(이른바 ‘무분별한 개발’)이 유치되어야 한다고 언급하는 대신, 마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마을의 기존 생계기반과 산업구조를 바꿔, 젊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장소로 마을을 변모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는 마을 출신 청년들이 마을 외부에서 생계 기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뿌리를 내려 외부를 대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구성하는 ‘발전’의 의미, 그리고 마을의 ‘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바람은 소득과 성장 그 자체에 기반한다기보다는 마을이 기존의 방식으로는 자체의 ‘사회적 재생산[1]’이 어려운 현실에 근거했다.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마을 운영을 위한 자금 운용과 생산, 노동, 봉사, 돌봄 등의 사회적 재생산이 마을 공동체 내에서 통합적으로 이뤄졌다(물론 이는 부녀회로 통칭되는 마을 여성들의 노동과 봉사에 어느 정도 의존되었다). 하지만 마을에서의 삶의 조건이 상당 부분 달라진 현재 상황에서는 마을의 재생산을 담보할 마을 자체의 자원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했고, 이는 마을의 ‘발전’ 담론과 통합되었다.[2] 즉 ‘무분별한 개발’이 마을 내부의 재생산과는 상관없이 마을 바깥에서 펼쳐지는 과정으로 이해되었다면, 마을의 ‘발전’은 마을의 유지, 존속과 결부된 문제로 간주되어 마을에 반드시 필요한 변화로 여겨졌다. 

[1]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이란 기본적으로는 의식주, 보건, 교육을 포함한 생존 수단의 획득과 분배를 통한 노동력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의미한다(윤자영, 2012: 193). 이 글에서는 사회적 단위로서 마을의 생활 기반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통칭한다.
[2] ‘벵듸’마을의 리더들은 마을 자체의 자원을 확보하는 것을 마을의 ‘자립’이라 여겼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자립’ 노력은 내부의 자생적 기반이 아니라, 상당 부분 행정적 지원, 외부의 전문가적 개입에 기대고 있었다.

2. ‘잘 아는’ 전문가 vs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

마을이 ‘미발전’되었다고 말하는 주민들은 인근 해안 마을의 사례와 ‘벵듸’마을의 사례를 비교하곤 했다. ‘벵듸’마을과 가까이에 있는 해안 마을에서는 해수욕장 개발 이후, 마을 사업으로 여름철 파라솔과 튜브 등을 대여/판매하거나, 샤워장 운영을 통해 여름 한철만 해도 마을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무리없이 마련해왔다. 이와 달리 ‘관광지’로 개발된 바 없는 ‘벵듸’마을에서는 마을 자체의 자원으로 수익을 내 본 경험이 없었다. 

마을의 ‘발전’이 마을 외부에 마을이 소비되고, 이를 통해 마을 내부에 외부인을 유입시키는 것과 동일시됨에 따라, ‘외부를 어떻게 동원할 것인지’에 발전 전략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 과정에서 유명 외식 사업가가 마을과 외부를 매개하는 전문가로서 마을에 초대되어, 마을의 공동체 공간으로 운영되었던 다목적회관을 마을 식당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은 마을 주민들에게 환영받았다. 그의 영향력을 마을에서 활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컨설팅하고 투자한 ‘벵듸’마을의 발전 프로젝트를 개인 유튜브 채널에 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방문 차원에서 왔었는데 현실은 암담한 상황이었죠. 마을 분들이 어깨가 많이 쳐져 있는 느낌이랄까? ‘우린 안 돼’라는 패배의식이 있는 지역” 

이 방송을 통해 ‘벵듸’마을은 ‘암담하고’, ‘패배의식이 있는’ 마을로 재현되었다. ‘벵듸’마을의 현 상황을 재현하는 ‘낙후성’ 담론은 이 사업가가 자신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활용해 마을과 마을 외부를 매개하여 마을을 미발전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그는 마을의 발전 프로젝트를 자신이 출연하는 TV프로그램과 연계하기도 했다. 이 과정은 사업가와 방송사, 그리고 마을의 일부 리더들의 논의 하에 빠르게 추진되었다. 골목 상권을 ‘활성화’하는 것이 기본 컨셉인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벵듸’마을 프로젝트를 특별편으로 편성하여 청년 창업자들을 모집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벵듸’마을을 이렇게 소개했다.

“좀 안쪽으로 내륙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제주도라는 그런 프리미엄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지역이구요. (중략) 지역경제 살리기라는 큰 포부를 갖고 시작했습니다만, 우리가 살릴 지역은 그렇게 만만한 지역이 아닙니다.”

일련의 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사회적 영향력과 이미지는 강화되는 한편, ‘벵듸’마을은 계속해서 미발전된 지역으로 재현되었다. 마을이 미발전된 곳으로 재현되면 될수록, 마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 되면서 발전 프로젝트에 개입할 여지는 협소화되는 한편, 이 사업가가 마을에 행사하는 ‘선한’ 영향력의 가치와 힘은 강화되었다. 마을에서는 ‘외부’를 확실하게 동원할 수 있는 그를 통해 마을의 발전을 기대했지만, 이 과정에서 마을의 ‘낙후성’은 계속해서 담론의 중심이 되었고, 마을 주민들이 기존에 유지해온 농축산업 중심의 생계 기반은 ‘미발전’ 요소로 여겨졌다. 

3. 탈장소화(displacement)되는 마을

“우리 마을이 발전되어야 한다” 혹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분명히 마을 사람들의 것이었지만, 발전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과 그 결과는 마을 주민들의 바람과 거리가 있었다. 발전 프로젝트에서 마을은 ‘소비 가능한’ 장소여야만 했지만,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은 단지 소비 자원이 아니었다. 마을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일상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이었고, 생산과 재생산의 단위였으며, 공동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의 소비 자원화 과정은 마을 주민들이 마을과 땅에 기반하여 살아온 역사성 및 일상적 맥락성을 주변화했고, 주민들의 마을은 탈장소화되었다.[3] 마을 내에 차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유입되면서, 농기계들이 마을 안 길로 다니기 어려워졌다. 마을 농업 생산 공동체인 ‘작목반’에서 사용하던 공유 시설은 발전 프로젝트로 마을에 들어온 기업에 임대되었고,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3] ‘탈장소화’는 ‘장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나는 ‘장소’를 “인간이 특정 환경에 묶이도록 만드는 감정적이며 경험적인 흔적(앤더슨, 2013)”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 ‘탈장소화’는 장소와 주체 간의 연결성을 단절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유명 외식 사업가의 영향력과 함께 마을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증가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변화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외부 사람들 때문에 마을이 더 나아졌다거나, 마을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발전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외부인’이라는 사실은 마을 주민들의 불만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서는 ‘낙후된’, ‘열악한’ 등의 수식어로 재현되는 ‘벵듸’마을을 ‘살리러 온’ 구원 투수로 비쳤지만, 주민들에게는 ‘외부에서 돈만 벌어가면서’ 마을에 인파로 인한 피해를 안겨주는 사람들로 여겨졌다. 

마을 주민들의 ‘불편함’은 단지 외부인에 대한 배타성으로 해석될 수 없었다. 마을 주민들이 이 새로운 ‘외부인’들을 공동체에 받아들이지 않고 마을 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성원권의 정치학은 이들에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을에서 일종의 초-성원으로서, 마을 주민으로서의 성원권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마을 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유명 외식 사업가와 그에게서 초대된 창업자들은 사업체 운영과 관련된 사안을 마을 주민들과 의논하여 결정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을에 거주하지 않았고, 마을 주민들과 일상을 공유하지도 않으며, ‘내부인’이 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가게를 여는 데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임대 자영업자로서도 마을에 자유로웠다. 마을에 ‘외부’를 동원해야 하고, 외부를 동원하기 위해서는 ‘잘 모르는’ 마을 사람들보다 ‘잘 아는’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발전 담론의 구조에서 마을 주민들은 애초에 발전의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발전 프로젝트와 함께 변해가는 마을 자체가 주민들의 것이 아니라는 감각, 그리고 삶의 현장으로서 마을과 ‘발전되는’ 마을이 불일치하는 데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4. ‘벵듸’마을이 경험하는 ‘발전 담론’의 진행중인 미래

마을의 ‘발전 프로젝트’로 유명 외식 사업가가 마을을 ‘위해’ 컨설팅, 투자한 ‘마을 식당’은 현재 마을 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지 않다. 그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외식 사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렸고, 이대로는 더 이상 자체적인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마을 식당’은 결국 유명 외식 사업가의 기업에서 운영하는대신, 마을에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이를 통해 ‘마을 식당’은 마을의 관혼상제와 대소사가 열릴 때 사람들이 모이기 위해 사용했던 기존의 ‘다목적 회관’의 성격도, 마을 주민들 스스로 마을 발전의 주체가 되어보는 거점으로서의 성격도 모두 잃고 말았다. 

한편, 마을 발전 프로젝트의 부수적인 효과로 ‘벵듸’마을 내 일부 토지의 지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가 상승은 ‘팔고 떠나야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서, 그곳에 이미 살고 있으며 계속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 의존적인 발전 담론이 약속하는 발전 비전은 마을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실현될 수 없었다. 

제주도 전체에서 외부 의존적인 발전 담론은 ‘제주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논의에서 지속되고 있다. 제2공항 건설 담론은 무엇보다 제주에 유입될 인구가 증가할 미래를 강조하며, 침체된 관광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그로 인해 제주는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라 약속한다. 하지만 이같은 추상적인 발전 담론에서 지역 주민들이 겪게 될 구체적인 삶의 변화는 잘 다뤄지지 않는다. ‘발전’ 담론이 약속하는 비전은 ‘성장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언제나 미래적인 시제로 지역의 변화를 그리지만, 주민들은 비전에 가려진 다른 미래를 이미 살고 있다. ‘벵듸’마을이 경험하는 ‘진행중인 미래’는 외부 의존적인 발전 담론이 어떻게 지역 주민들의 삶의 맥락을 주변화하고 삶의 현장을 탈장소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로서 유의미하다. 

현재 ‘벵듸’마을 주민들은 마을 권역 내 ‘폐기물 처리장’ 증축 계획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제주도 전역에서 만들어진 쓰레기가 처리 한도에 도달하여 보다 큰 ‘처리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대상지로 ‘벵듸’마을이 지정된 것이다. 그러나 몇 년 새 증가한 폐기물은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제주도 전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비단 ‘벵듸’마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며, 현재 제주도 마을 곳곳에서는 각종 처리장의 증설을 앞둔 상황이다. 제주도내 한 산간 마을에서는 이웃 마을에서 반대한 폐기물 처리장 증설에 합의했으며, 동쪽의 한 해안 마을에서는 하수처리장 증축에 마을 여성들이 나서서 저항하고 있다. ‘발전’ 담론은 제주도에 ‘외부’를 동원함으로써 제주도민들이 더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미래를 약속하지만, 이 동원된 ‘외부’는 제주를 단지 소비할 뿐이며, 소비에 따른 비용을 ‘처리하는’ 문제는 주민들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평생동안 감당하게끔 구조화되어있다. 이러한 ‘발전’ 담론의 아이러니를 제주는 ‘이미’ 경험하고 있다.


참고문헌

  • 윤자영(2012), “사회재생산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마르크스주의 연구』, 9(3), 184-211쪽.
  • 앤더슨, 존(2013), 『문화⋅장소⋅흔적』, 이영민⋅이종희(옮김), 파주: 한울 아카데미(Anderson, J. 2009, Understanding Cultural Geography: Places and Traces, London: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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