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

이 글은 나의 석사논문 “변화하는 제주도 개발 담론과 마을, 땅을 둘러싼 성원권의 젠더정치학”을 바탕으로 한, 자문화 연구 방법론에 관한 에세이이다.
1. 문제에 접근하기: “내 고향”이라는 특권적 시선으로부터
제주에 시간차를 두고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최근 제주가 많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하고 낯선 빌딩숲, 한적한 들판에서 난데없이 진행되는 토목 공사, 넓고 높게 쳐진 공사장 펜스는 이제 제주의 일상적 풍경이다. ‘제주 제2공항’이라는 국책사업을 둘러싼 주민 간의 갈등과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힌 비자림로의 나무들이 베인 모습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개발’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을 구성하고, 미래를 지시하는 담론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누군가는 ‘제주’하면 아름다운 자연과 고즈넉한 풍경을 떠올리지만, 나는 개발, 즉 제주의 (부정적인) 변화를 떠올렸다. 제주를 방문할 때마다 떠올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어릴 때에는…’과 같은 생각에 깃든 향수 어린 감정은 연구를 구상하는 시작 단계에서 제주와 나의 관계를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 나의 연구는 이렇게 급격하게 변해가는 제주에 대한 위기의식과 불편함,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감에서 시작되었다. 연구주제를 설정하는 데에 작용한 내가 가졌던 감정들—위기의식, 불편함, 책임감—은 단지 사라져가는 제주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컸던 건,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나의 지역 정체성과 생애사적 맥락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제주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제주를 떠났으며, 제주를 안타까워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나를 이루는 정체성 가운데 지역적인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 몸과 일상은 제주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고향 제주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감정이 만들어진 장소 자체가 고향과는 한 발자국 떨어진 곳이었다. 누군가는 제주에서 서울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다고 그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거리는 내게 ‘디아스포라적 유혹’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디아스포라적 유혹’은 탈식민 페미니스트 이론가 레이 초우(2005)가 디아스포라적 지식인이 손쉽게 빠질 수 있는 태도를 꼬집기 위해 사용한 표현으로, 디아스포라적 공간에서 연구하는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대상’인 토착사회와 본질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자기 자신의 특권화된 발화 위치를 확립하는 태도를 의미한다.[1] 이를 나의 상황에 대입해보면, 서울에서 공부하는 ‘제주 사람’이 제주에 대해 더욱 본질적인 내용을 구사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고 상상하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을 대하는 1세계 지식인들의 태도에서도 발견되지만, 종종 디아스포라 지식인 스스로에게서도 발현되기도 한다. 초우는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은 자신의 출신 성분을 궁극적인 기의로 채택하려는 유혹에 저항하는 한편, 출신지를 비롯하여 지역의 문제를 둘러싼 투쟁을 지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Chow, 2005: 46). 유사한 맥락에서 찬드라 모한티(2004)는 ‘고향’을 하나의 개념이자 욕망으로 재구성할 필요를 제기하면서, 정치적으로 ‘고향’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향’, ‘정체성’, ‘공동체’에 관한 관습적인 개념을 모두 문제 삼아야 한다고 했다.
[1] ‘이산(離散)’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민족 집단을 일컫는 용어이다.
제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진 시선과 제주와 나의 특권화된 관계를 확립하고자 하는 욕망 모두를 염두하면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 역시 연구 맥락에 포함하는 동시에 객관화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이를 위해 나는 나와 일상을 공유해 온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연구자로서의 위치성을 재조정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나의 생애사적 배경은 연구를 위한 자원이 되어주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연구가 진행되지는 않았고, ‘나’를 둘러싼 배경은 연구의 자원이 되어준 만큼 재현의 짐으로 되돌아왔다. 마을 주민들은 나를 ‘마을 주민’으로 여겼기 때문에 접근이 어렵지 않았지만, 이들의 삶을 이루는 모든 맥락을 연구에 재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기는 해석 과정에서 그들의 일상을 방해하거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더욱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따라서 연구 과정에서 나의 ‘마을 주민’이라는 정체성은 연구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거리두기가 필요한 것이었고, 수집된 자료를 그들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재현하기 위해서는 다시 주민이 될 필요가 있는 복잡한 맥락 속에서 해체되고 구성되기를 반복했다.
2. 말해진 것을 듣기: 마을의 딸이자 손녀로서 만난 마을 사람들
‘벵듸’ 마을(가칭)에는 나와 비슷한 연령의 젊은 여성이 거의 살지 않았기에,[2] 나는 굉장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 마을에서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인사를 건넬 때면 주민들은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해했고, “누구네 딸”이라고 나를 소개하면 ‘왜 네가 여기에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이미 몇 년 전에 마을에서 결혼 잔치를 열고 결혼하여 서울에 사는 ‘시집간 딸’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마을 안에서 나의 존재는 “남편은 어디가고 여기에 있는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처럼 마을에 뿌리를 두지만 마을 바깥에 속해있다는 마을 내 ‘딸’의 불안정한 위치는 연구 과정에서 나의 위치성이기도 했지만, 연구를 위해 구술해 준 여성 주민들의 일상적인 위치이기도 했다.
[2] ‘마을에 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마을 주민들에게 마을 발전의 척도를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나는 ‘연구자’로 여겨지기보다는 주로 마을 사람 중 하나로 이미 누군가의 딸이자 손녀로 여겨졌지만, 내가 마을 내 몇 없는 젊은 사람이라는 점은 나와 마을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얼마 정도는 마을 주민이었지만, 마을 사람들과 공동의 역사를 함께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많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마을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젊은 아이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을 주민들은 지금으로부터 시간적 거리가 먼 과거의 이야기일수록 자세하게 말해주는 한편, 과거의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이 요구될 때에는 “그땐 다 그럴 때”라는 식으로 대답을 대신하기도 했다.[3]
[3] 일례로, 할머니들에게 성별화된 상속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면, 이들은 공통으로 “그땐 다 그럴 때”라고 답했다. 이 대답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하겠지만, 이는 이야기를 듣는 내가 성별화된 상속 문화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딸이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경험한 ‘자신’에 대해 말하는, 혹은 말하지 않는 구술자의 ‘말하기’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고민한 여성학자 김은실(2016)은 구술자들이 ‘무엇을, 언제, 어떻게 말할 것인지’는 이미 정치적으로 구성된 것이며, 청자와 구술자 사이의 정치적 관계에 달려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녹음기를 사이에 두고 나와 대화를 나눈 주민들은 이 이야기가 외부, 특히 제주 바깥에 유통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4] 이들은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도 녹음기를 끄거나 구술의 일부를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연구에 인용 가능한 말을 제한했다. ‘여기 사람’이 들어도 되는 말과 독자로서 ‘서울 사람들’이 읽어도 괜찮은 말은 정치적으로 구별되고, 또 선별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들에게 당시 제주 사람들이 모두 경험했을 법한 일반적인 고생은 공개되어도 무방한 말이었던 반면, 가족과 결부된 구체적인 갈등과 수난은 ‘육지로 가져가선 안 될 말’로서 선별의 대상이 되었다. 이 같은 ‘말’의 정치는 특히 여성들에게 더 강하게 작동했지만, 한 할머니는 이야기가 모두 공개되더라도 자신에게 찾아올 사람이 없으리라 말하며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포함한 모든 말의 인용을 허락했다. 이 할머니는 여전히 나에게 ‘옛날 말’ 하기를 좋아하고, 나와 나눌 말을 준비하며 나를 기다린다.
[4] 이 사실은 당연히 연구 참여자들에게 고지된 것이다. 여기에 재차 언급하는 까닭은 연구 과정에서 내가 전적으로 마을 주민(마을 내 ‘딸’로서 반쪽짜리 성원이긴 하지만…)이거나 전적으로 연구자이지 않고, 둘 사이를 오가거나 둘 다였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3. 마을 사람들의 모순적인 입장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을 읽기
주민들의 말 속에서 “무분별한 개발은 안 된다”는 관점과 “우리 마을이 어느 정도는 발전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공존했다. 제주도 지역의 개발을 문제화하는 담론이 확산되고 그것을 둘러싼 갈등이 전국적으로 가시화됨에 따라, 개발을 둘러싼 말하기는 그 자체로 긴장과 조심스러움을 동반했다. 주민들은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즉각적으로 거리를 두며 마을과 무관한 일처럼 이야기하는 한편, ‘마을의 발전’ 혹은 더 소박하게 말하자면 ‘마을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주지하다시피 ‘개발’과 ‘발전’의 영문 번역어는 모두 ‘development’로 같다. 그렇기에 이들의 입장은 일견 비일관적이고 양립 불가능한 모순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에게 ‘개발’과 ‘발전’은 분명히 다르게 인식되고 그에 따라 다르게 가치평가 되었고, 그렇기에 두 관점과 입장은 일관적으로 공존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의 장소에 기반한 삶의 맥락, 즉 주민들에게 마을은 어떤 장소이며, 이는 그들의 삶의 맥락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고려해야만 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참고문헌
- Chow, R. (1993). Writing diaspora: Tactics of intervention in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장수현·김우영 옮김(2005), 『디아스포라의 지식인』, 서울: 이산.
- Mohanty, C. T. (2003). Feminism without borders: Decolonizing theory, practicing solidarity.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문현아 옮김(2004), 『경계없는 페미니즘』, 서울: 여이연.
- 김은실(2016). “4·3 홀어멍의 “말하기”와 몸의 정치”, 『한국문화인류학』, 49(3), 313-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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