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가족주의를 넘어서서,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폐지하라: 제사주재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부쳐

🎨윤소이, 🌙상상

2023년 5월 11일 대법원은 최근친 직계비속 중 연장자에게 제사주재자로서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따르면, 고인의 사후처리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고인의 자녀 중 성별이 아닌 연령에 근거하여 제사를 주재할 사람을 결정하게 된다. 만일 고인의 딸이 아들보다 더 나이가 많다면, 아들이 아닌 딸에게 제사주재자로서의 권리가 우선적으로 부여되는 것이다. 지금껏 고인의 장남, 장손에게 제사주재자로서의 권리를 부여해왔던 가부장적 가족법의 관습이 뒤집혔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환영할만하다.

지난 2008년 대법원은 가족 내 협의가 불가능하다면 고인의 장남 혹은 장손이 제사주재자로서 우선권을 갖는다는 성차별적인 판결(유체인도 등에 관한 판결 2007다 27670판결)을 내린 바 있다[1]. 이 판결의 근거는 현행 상속법 상 제사용 재산의 승계자의 권리(민법 1008조 3)와 ‘사회 통념’으로, 가계계승자와 제사주재자, 그리고 유골의 인수자를 언제나 이미 일치하는 단일한 행위자로 규정하는 점에 있었다(이소윤, 2023: 112). 정리하자면, 땅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는 사람은 다른 모든 사후의례에 대한 우선권을 가진다는 뜻으로, 부계혈연주의에 근거하여 장남, 장손에게 호주와 재산을 상속해온 관습을 시신에 대한 권리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1] 지난 200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경우, ‘누가 아버지의 시신(유체)를 인수하여 제사주재자가 되는 것이 마땅한가?’라는 쟁점을 다루었던 사례로, 2006년도에 사망한 고인 A씨의 사실혼 배우자의 자녀들과 법률혼 배우자의 자녀들 사이의 분쟁이었다. 당시 고인의 사실혼 배우자의 자녀들은 고인의 유언을 따라서 고인의 시신을 이미 안장하였으나, 법률혼 배우자의 자녀들은 고인이 선산에 모셔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인의 유체에 대한 소유권과 관련하여 소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해 대법원은 고인의 장자, 장손에게 우선권이 부여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 판례의 경우, 대법원은 2008년의 다수의견의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2017년도에 사망한 고인 B씨의 ‘배 다른’ 자녀들 중에서 (‘성별’이 아닌) ‘연령’에 근거하여 가장 나이가 많은 자녀가 제사주재자의 권리를 지닌다고 결론을 지으면서, 지난 1심과 2심의 판결(장남, 장손에게 우선권이 부여된다는 결정)에 대해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이다. 여기에서 대법원은 지난 2008년도의 결정이 헌법상 ‘성별 등에 의한 차별금지(헌법 제11조 제1항)’ 및 ‘양성평등 이념(헌법 제36조 제1항)’과 불합치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따라서, 대법원은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하는 것은 이를 정당화할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이라는 주장을 다수의견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의 ‘진일보한’ 결정에도 불구하고, 왜 애초에 ‘직계비속’이 우선권을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물론 이번 판결은 고인의 사후처리에 대한 권리를 아들에서 딸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다른 모든 관계에 대해 수직적이고 직접적인 혈연 관계를 우선시하는 직계혈연주의는 질문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직계’로 구분되는 ‘최근친’의 가족 범주만큼은 강력하게 보호되는 것이다. 직계를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조직하는 직계중심주의는 조선시대와 식민지 근대를 거쳐 확립된 부계혈연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산물이며, 이는 호주제가 폐지된 2008년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가족법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토대이다. 따라서, ‘혈연관계[2]’를 특권화하는 부계중심의 직계주의를 폐기하지 않은채, ’연령‘에 근거하여 직계비속중 연장자에게 제사주재자로서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한국의 가부장제를 넘어서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2] 페미니스트 법학자 양현아는 ‘혈족’이라는 범주가 실체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이며, 이러한 상상을 실체적으로 확립하는 표지가 바로 ‘성본체계’라고 비평한 바 있다. 아버지 성(姓)과 본(本)을 자식이 공유하는 ‘성본체계’는 부계를 통해 이어지는 아버지 ‘피’의 절대성, 영속성, 사실성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전제하는 한편, 여성의 ‘피’와 ‘계통’에 대해 철저하게 무시한다(양현아, 2011: 368).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부분적인 개선이 아니라, 직계가족주의의 ‘폐지’이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성평등한 한국사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가족의 폐지란, 혈연 중심의 사고와 관행과 언어를 헐겁게 만듦으로써, “물보다 진한 피”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다(Lewis, 2023).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이름과 재산 뿐 아니라 ‘몸’에 대한 권리까지 오직 직계가족에게 귀속시키는 가족법의 관습, 그 ‘악습’의 폐지만이 한국사회의 오래된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다.


참고 문헌

  • 양현아, 2011. 『한국 가족법 읽기』, 파주: 창비.
  • 이소윤, 2023. 「무연고사망자의 상주되기를 통해 본 사후의 가족정치」, 『한국여성학 제39권』 1호. 101-136쪽. 
  • 소피 루이스, 2023. 『가족을 폐지하라』, 성원 옮김, 파주: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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