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태경

이 글은 제 석사학위 논문「성산업의 연장으로서의 리얼돌 산업과 남성 동성사회의 쾌락 경제」(2022, 연세대 일반대학원 문화인류학과)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1. 들어가며
2022년 12월 26일, 세관은 그동안 막아왔던 리얼돌 통관을 허용하는 개정안을 시행했습니다.(기사 보기) 이제 아동청소년의 형상을 제외한 전신의 리얼돌[1]의 수입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으로 보여요.
[1] 리얼돌을 뜻하는 말은 다양하다. 반려인형(companion doll), 유사인형(allo doll), 러브돌(love doll), 섹스돌(sex doll), 리얼돌(real doll) 등등. 이중에서 리얼돌이라는 명칭은 북미의 어비스크리에이션즈(abysscreations)가 만든 제품명으로 처음 등장하였다. 이 명칭은 국내에서 2000년대 초반 언론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2019년에 논의될때도 이 명칭이 통용되었다고 보인다. 이를 따라서 논문과 본 기고문에서도 해당 논의와의 연관성을 위해 리얼돌이라는 명칭을 유지했다. 리얼돌은 대부분 실리콘이나 TPE 기반의 전신 사이즈 성인용품으로, 주로 ‘여성’ 형태로 제작된다. 이는 섹스로봇(sex robot)이나 풍선인형(inflatable doll) 과는 차이를 갖는다.
지금에서야 수입이 원활해진 만큼, 국내 리얼돌 시장이 많이 성장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아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는 해외 시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해외의 리얼돌 시장은 약 30년간 꾸준히 성장해왔는데요, 특히 저가의 TPE를 활용한 인형을 주로 만드는 중국에서 그렇습니다. (기사 보기) 보통 국내로 수입도고 유통되던 것도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었는데요, 수입금지로 잠깐 이득을 보았던 국내제작업체는 이제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제품과 가격, 품질 면에서 경쟁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사업을 종료한 곳도 많이 보입니다. 논문을 작성하면서 만난 국내 리얼돌 제작자 중 대다수가 현재는 사업을 그만둔 것으로 파악되거든요.
제 생각이지만, 앞으로 국내에서 이 시장의 규모가 눈에 띄게 커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리얼돌을 매개로 벌어졌던 논의의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뜻은 아니죠. 여전히 리얼돌은 누군가 돈만 있으면 손쉽게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신체 이미지를 살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니까요. 연구를 하며 제가 목격한 것은, 이 거래의 현장에 동료 시민에 대한 어떤 도덕적, 윤리적 고려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현장에 ‘여성’이 있긴 한가요?[2] 2019년부터 지금까지 리얼돌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해도해도 부족한데,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재생산되었죠. (기사 보기)
[2] 연구 현장에서 만난 제작자 중에는 여성도 존재했지만, 그들이 인형을 대하는 태도는 남성 제작자가 취하는 태도와 같아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완성된 인형이 보이지 않게 천으로 덮어두거나, 또한 인형제작은 가능해도 인형체험방은 운영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하는 등 몇가지 갈등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갈등을 전혀 겪지않는 남성 제작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듯 리얼돌이 강화하는 여성혐오와 성적대상화의 문제를 빼놓고 오로지 성인용품과 남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측면으로만 논의하고자 하는 모습은 법원과 세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관이 허용 되기 전까지 리얼돌이 주로 논의되던 지점은 이 인형의 유통으로 인해 실제 여성이 겪을 피해보다는 아동, 청소년에 대한 문제에 국한된 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논문의 작성을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리얼돌을 둘러싼 국내의 논의는 그 규모가 미약했을지언정 문제점은 뚜렷했습니다. 앞으로도 남성의 욕망을 대상으로만 ‘여성’을 주조하고 거래하는 시장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테니까요. 그러니 리얼돌과 사용자, 그리고 커뮤니티를 조사하는 일은 저에게 앞으로의 논의에 참여할 시작점과 같았습니다.
2. ‘여성 신체 통제’와 ‘포스트휴먼’을 넘어서
리얼돌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대체 누가 이것을 사용하고 그 욕망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리얼돌에 대한 몇가지 기존 연구들은 사용자가 가진 욕망의 실체를 이론화하고 폭로하는데에 중점을 두었고, 여기서 사용자의 욕망은 여성에 대한 통제로 번역되었죠(Ferguson, 2010; Richardson, 2015; 윤김지영, 2019).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욕망은 쉽게 ‘퀴어’적인 것 혹은 전복적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몇 가지 연구가 연구참여자들이 리얼돌을 통해 얻는 심리적 안정 등을 토대로 이 둘 사이를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이보그적 융합’과 같이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Kang, 2005; Langcaster-James & Bentley, 2018). 이렇듯 여성 신체에 대한 통제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포스트휴먼적 결합이라는 양자의 입장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논문을 쓰면서 빗겨가고자 했던 것은 앞에서 언급한 논의인데요, 사용자가 리얼돌에 대해 갖는 욕망의 형태가 아니라 이 욕망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을 본다면 왜 국내의 리얼돌 산업의 규모가 늘어나지도 않지만 또 줄어들지도 않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사용자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리얼돌에 대한 욕망을 구성하고, 이 욕망은 새로운 참여자를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사용자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지속적으로 이 제품에 대한 욕망을 만들어낸 거죠.
이나영(2019)은 성매매후기게시판이 성매매산업내에서 어떻게 ‘후기’라는 방식을 통해 ‘소비자’로서 성구매자의 권력을 높일 수 있었는지 분석했습니다. 성구매자의 후기는 성판매자가 부당한 폭력에 대해 제시할 수 있는 협상력을 약화시켰으며, 동시에 플랫폼의 운영자는 사이트 내 보상제도를 통해 이러한 후기를 양산하는데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얼핏보면 리얼돌 제작자 연구참여자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가 리얼돌 산업에서 갖는 영향력이 분명해 보였거든요. 예를 들어 제작자로 연구에 참여한 1명은 아동청소년 리얼돌 반대에 목소리를 냈다가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제품을 언급할 수 없는 제재를 당하기도 했구요. 이외에도 제작자들이 잠재적 구매자들의 ‘취향’을 커뮤니티를 통해 알아냈다는 점에서도 커뮤니티는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성매매후기게시판과 리얼돌 커뮤니티는 두 가지 명확한 차이점을 갖습니다. 첫째는 국내 리얼돌 산업 내의 제작자, 판매자, 플랫폼 운영자, 보상제도, 사용자, 후기작성자 등의 분업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는 고도로 분업화된 성매매 산업과는 다른 모습이죠. 둘째는 성매매후기게시판과는 달리, 리얼돌 커뮤니티 내에서 욕망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좀 더 이미지에 집중되어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습니다. 커뮤니티 내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만큼 이미지를 잘 연출하고 구성하여 결국 그 자신의 리얼돌이 인정을 받을지 여부이지, 인형을 통한 성관계의 만족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3]
[3] 오히려 리얼돌을 사용한 성관계 혹은 자위행위는 기대만큼 좋지않고, 힘이 들며, 또한 이후 세척 과정 등이 번잡하다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다. 이는 제작자와 사용자 등의 공통된 의견으로 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다지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이 리얼돌 산업 속 참여자들이 거치는 공통된 지점이었습니다. 여기서 그것이 ‘전복’적이든 폭력적이든, 한 개인의 욕망이 여러 다른 사용자들에 의해 부추겨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3. 인형을 ‘여성’으로 만드는 실천/들
커뮤니티에 업로드되고 노출되는 사진 이미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광고입니다. 업로드된 사진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판타지(fantasy)로 봅니다. 여기서 판타지는 인형의 사용자가 자신이 욕망하는 기호를 지닌 ‘여성’과 함께 하고 있다는, 리얼돌이 재현하는 성적대상화된 기호가 단순히 망상에 머물지 않고 사용자에게 충분히 현실적(real)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커뮤니티에 업로드된 인형의 사진은 수동적인 사물을 찍은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인물을 포착한 스냅사진처럼 여겨지죠. 그렇기에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당신의 00(인형의 이름)가 너무 예쁘다’와 같이 인형의 이름을 부르거나, ‘당신의 00(인형의 이름)이 행복했을 것 같다’와 같이 인형의 감정을 대신 묘사해주는 등, 인형을 실재하는 인간처럼 다룹니다. 사용자가 업로드하는 이미지에 이런저런 묘사가 얹혀지면서 이들은 단순한 인형을 실제 사람처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그것이 단순히 인형일 뿐이라는 점에서, 절대 실제의 인간이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판타지입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리얼돌의 사진을 얼마나 잘 가공하느냐’와 더불어 ‘커뮤니티의 사람들이 인형을 얼마나 인간처럼 대우하느냐’입니다. 이 과정에서 인형의 이미지는 더 ‘사실적으로’ 그리고 더 ‘성적으로’ 재생산됩니다. 왜냐하면 리얼돌은 이들에게 중립적인 장난감이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실리콘(혹은 TPE 및 다른 재료)에 새겨진 사물이기 때문입니다.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리얼돌의 지위란 실제 인간이면서 동시에 섹스토이입니다.[4]
[4] 이 점에서 커뮤니티에서 통용되는 ‘리얼돌은 단순히 성인용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이 제품이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방법의 중점은 단순한 상품 묘사 뿐만 아니라 아니라, 이 인형이 얼마나 실제 인물과 닮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실제 인물처럼 여겨지는지에도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잠재 구매자가 가지는 판타지는 다른 사용자를 통해 성장합니다. 결국 판타지가 말하는 것은, 잠재 구매자가 충분한 비용을 치를 수 있고, 원하기만 한다면, 굳이 이성애적 연애와 돌봄에서 요구되는 의무를 다 하지 않고도 원하는 ‘여성’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5] 많은 연구자가 지적했듯이, 이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여성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상상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인형을 소유하고 싶은 잠재/구매자들만이 존재하죠.
[5] 연구참여자와의 대화에서 들은 언급: “성구매에 대해 너무 많은 비용이 나간다며, 리얼돌을 쓰는게 낫지 않을까 물어본 고객이 있었다.”(제작자) 이러한 인식이 공통적인지 조사하지는 못했으나, 남성 사용자가 리얼돌을 ‘성구매에 비해 비용의 부담이 적은 선택’이라고 여기며, ‘여성’을 가격과의 연장선에서 비교하는 모습은 중요하다고 보인다.
4. 왜 이것이 ‘여성’입니까?
왜 천편일률적인 재현이 거래되는지, 왜 대다수의 제품은 ‘여성’으로 여겨지고 대다수의 구매자는 남성인지를 묻는 질문에 있어서 커뮤니티의 잠재/사용자, 제작자, 인형체험방 운영자는 대개 어물쩍 넘어가려하거나 ‘본능’이라는 답을 내놓습니다. 이들이 말하지 않거나 못하는 것은 이 사업이 ‘여성을 재화와 같이 거래할 수 있다’는 상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이겠죠.
이들에게 대체 어떤 기호가 ‘여성’으로 여겨지는 걸까요? 일단 이 인형이 재현하는 이상적인 ‘여성’은 완벽하게 비인간적입니다. 어떠한 체모도, 주름도, 노폐물도 없는, 정상적인 생리기능이 부재한 채 ‘아무것도 새어나오거나 빠져나오지않는 표면’입니다. 캐서린 매코맥은 서구 회화의 전통을 분석하며 “비너스는 모든 정상적인 생리기능을 감춰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즉, “그녀의 완벽하게 비인간적인 외모는 그녀의 몸이 아무것도 새어나오거나 빠져나오지 않는 오로지 표면일 뿐임을 암시”합니다(매코맥, 2022).[6] 인형의 매끈한 비인간성이 강조될수록 사용자들은 인형에게 갖는 판타지는 강화됩니다. 아이러니: 리얼돌이 리얼하기 위해서는 리얼돌이 충분히 비현실적(unreal)이어야합니다.
[6] 아이러니하게도 리얼돌의 표면에서는 노폐물이 나온다. 실리콘과 달리 TPE를 사용한 인형은 재료의 특성상 표면에 점성을 가진 기름이 새어나오는데, 이 기름을 흡수하기 위해 제작자는 인형의 포장 전 베이비파우더를 바르며,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제품을 쓰면 좋을지 등과 관련해 TPE인형의 관리법이 공유된다. 인형의 비인간성을 만드는 노동은 인형이 아닌 사용자와 제작자가 직접 해야하는 일이다.
비인간성과 더불어 인형을 ‘여성’으로 만드는 주된 표현은 ‘예쁨’, ‘섹시함’, ‘귀여움’입니다. 아쉽게도 저는 이 ‘예쁨’과 ‘섹시함’, ‘귀여움’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분석하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리얼돌에 새겨진 기호들을 하나하나 분류하기에는 이 요소들이 너무 방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인형이 모두 하나같이 ‘여성’으로 여겨진다는 점, 그리고 어떤 요소든 성적인 암시를 포함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존 버거의 남성의 응시(male gaze) 개념은 물화된 ‘여성’을 만들어내는 남성의 시각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개념틀입니다(버거, 2012). 이미지속 ‘여성’은 남성의 시각 속에서 성적으로 대상화됩니다. 사용자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양식 또한 기존의 미디어가 표현하던 여성혐오적 이미지 양식과 같습니다. 간호사, 경찰, 음악가 등 다양한 직업군을 나타내는 요소가 사용되었고,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서브컬처 요소도 다양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주로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 캐릭터의 이미지에 내포된 요소를 따라가는데(H. J., 2017), 애초에 인형 자체를 이런 2D 캐릭터의 모습으로 제작하는 전문업체도 존재합니다.[7]
[7] 포르노에 등장하는 이미지도 활용된다. 국내에서 리얼돌을 제작하는 한 연구참여자는 인터뷰중 ‘일본이나 중국의 포르노를 참고하여 얼굴을 조형’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에 업로드되는 사진에서 드러나는 자세, 연출 등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들에도 포르노 이미지가 들어가있었다.
5. 인형에 ‘몰입’하기 위한 장치들
연구참여자의 말을 빌리면, 인형을 인간으로 만드는 이러한 실천을 ‘몰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몰입은 인형을 사실적인 인간으로 보는 판타지를 사용자가 충분히 믿는 일이라고 보입니다. 커뮤니티 내의 다른 사용자에 의해 두껍게 중첩된 리얼함. 그러나 애초에 이러한 과정 이전에 있는 이미지는 어떤 장치들을 통해 조작되는 것일까요. 이번에는 이를 구성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활용하는 장치를 설명하려 합니다.
우선 리얼돌은 머리부분인 ‘헤드’와 몸통인 ‘바디’를 포함합니다. 헤드와 바디를 연결하는 조인트는 리얼돌을 만드는 제작자 혹은 업체마다 상이한데요, 그럼에도 이 조인트는 몇 가지 수작업을 거치면 인위적으로 호환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헤드를 원하는 바디에,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면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로 하여금 주로 리얼돌을 구분하는 기준은 헤드인데요, 헤드에는 이름이 붙으며, 이 이름은 대개 사용자로 하여금 그 관계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장치입니다. 이들은 헤드를 통해 리얼돌의 성격이 어떤지, 혹은 어떤 감정인지, 어떤 인물인지를 설정합니다. 사용자는 바디에 리얼돌의 나이와 체형을 설정한다면, 헤드에는 리얼돌이 어떤 인물인지를 설정합니다.
그 다음으로 코스튬과 도구들은 이 인형이 가지는 여러 기호를 짜깁기합니다. 인형의 취미는 무엇이고 성격은 무엇인가요? 때로는 이를 부연하기 위해 사용자가 직접 만화나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관찰자도 댓글로 이러한 게시물의 스토리라인에 동조합니다). 때로는 이런 사진을 찍기 위해 단체로 사진을 찍거나 스튜디오를 빌리기도 하는데요, 인형놀이는 이렇듯 수많은 짜깁기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이외에도 조명, 장소, 소품, 코스튬과 같은 하드웨어, 그리고 소설쓰기, 만화 편집하기, 유튜브 영상, 얼굴편집 앱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사용됩니다.
짜깁기된 ‘여성’의 이미지로서의 리얼돌은 사용자가 보고싶고 만들고 싶어했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다른 잠재 사용자에게는 구매욕구를 만들며, 이들이 가진 판타지를 강화하고 몰입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한 인형놀이가 아닙니다. 여성혐오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이를 서로 공유/강화하면서 유희하는 것, 그럼으로써 이들의 공동체가 유지되고 다른 리얼돌의 구매와 생산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비판지점이 되어야 합니다.
6. 나가며
가상인간, 리얼돌, AI를 활용한 성적인 이미지, 즉 ‘여성’ 없는 ‘여성’의 성적인 이미지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믿음은 잘못됐습니다. 다른 연구자들의 지적처럼, 리얼돌은 기존의 여성혐오적 이미지와 깊은 연결성을 가지며 이를 재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와 제작자는 이것이 단순히 성인용품이라고 (적극적으로)말하지만, 리얼돌 산업은 현실에서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외모와 신체로 환원하며, 또한 이를 어떤 식으로든 거래하고 소비하는 배경 없이는 가능하지 않으니까요. 이것의 통관이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한국이라는 지형과 한국의 남성들이 여성 시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황유나(2022)는 룸살롱, 유흥업소와 같은 남자들의 방에서 이루어지는 성매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어떻게 ‘남자들의 방’에서 통용되던 문법이 사회 전체로 뻗어나갔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에 참여하는 것은 언제나 복수의 남성/들이었죠. 커뮤니티 또한 이러한 ‘남자들의 방’과 비슷했는데요,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이 느낄지 모르는 일말의 비윤리성을 서로서로 정당화해주고 적극적으로 감춘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들이나 제작자가 겪는 감정적 갈등, 예컨대 수치심이나 회의감 등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더 보지 못한 것은 논문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는 사용자와 제작자 모두에게 중요하고, 여기에서는 이미지와 그를 통한 판타지를 만들기 위해 구성원들이 다 함께 협력합니다. 덧붙여지고 기워지는 방식으로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욕망을 구성하고 강화합니다.
참고문헌
- 윤김지영. (2019).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 여성신체 유사 인공물에 기반한 포스트 휴먼적 욕망 생태학 비판”, 『문화와 사회』 28(1), 7-70쪽.
- 이나영, 정지혜. (2019). “성매매 알선·후기 사이트: 변화하는 성착취 유비쿼터스”, 『젠더와 문화』,12(2),193-230쪽.
- 황유나(2022). 『남자들의 방』. 파주: 오월의 봄.
- Catherine McCormack(2021). Women in the picture: What Culture Does with Female Bodies. W. W. Norton, 하지은 옮김(2022), 『시선의 불평등: 프레임에 갇힌 여자들』, 파주: 아트북스.
- Ferguson, A. (2010). The Sex Doll: A History. McFarland Publishing.
- John Berger(2008). Ways of Seeing, Penguin UK, 최민 옮김(2012), 『다른 방식으로 보기』, 파주: 열화당.
- Kang, M. (2005). Building the Sex Machine: The Subversive Potential of the Female Robot. Intertexts 9(1).
- Langcaster-James&Bentley. (2018). Beyond the Sex Doll: Post-Human Companionship and the Rise of the ‘Allodoll’. Robotics.
- Nast, H. J. (2017). “Into the arms of dolls: Japan’s declining fertility rates, the 1990s financial crisis and the (maternal) comforts of the posthuman”, Social & Cultural Geography, 18(6), pp.758-785.
- Richardson, K. (2015). “The Asymmetrical ‘Relationship’: Parallels Between Prostitution and the Development of Sex Robots”, SIGCAS Computers & Society 45(3), pp.290-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