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경

2026년 9월 16일, 정부가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1].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지 7년, 2021년 1월 1일 관련 처벌 조항이 그 효력을 잃은 지 5년, 2023년 9월 26일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이루어진 지 3년 만의 일이다.
[1] 의약품은 일명 ‘미프진’으로 알려진 경구용 임신중지 약물로, ‘미페프리스톤 200mg’ 1정과 ‘미소프로스톨 200㎍’ 4정으로 구성된 콤비팩(복합제) 형태다. 미페프리스톤은 그간 국내 미승인 상태였기에 두 약물을 합법적으로 복용할 수 있는 경로가 막혀 있었다. 그러던 중 2024년 12월 국내 제약사가 콤비팩 ‘미프지미소’의 품목허가를 세 번째로 신청하였고, 정부는 2027년 1분기를 목표로 도입을 발표하였다.
2019년 헌법재판소 판결 당시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명문상 인정되었을 뿐, 그를 보장할 책임 소재는 명시되지 않았다(FWD, 2019.04.12). 그러다 최근 한성숙 국무총리는 대정부질의를 통해 ‘정부가 7년간 방치한 부분에 대하여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정부가 책임을 갖고 문제를 풀어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평등가족부 역시 이번 결정을 ‘임신중지가 국가 의료 체계하에서 보다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했다.
이처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문제를 담은 안전한 임신중지의 과제가 불분명함과 법적 공백 속에서 방치되어 온 가운데,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 문제를 국가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결정을 알린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낙태죄’의 폐지와 임신중지 권리 보장의 핵심은 임신의 유지 및 중지에 관한 그간의 논의에서 임신이 이루어지는 ‘여성의 몸’이 배제되어 온 문제를 환기하고, 사회문화적·제도적 폭력의 역사를 여성의 입장에서 재조명한 데 있다. 나아가, 임신·출산에만 국한되지 않는 개인의 성적 권리, 성적 건강, 재생산 권리, 재생산 건강이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문화와 제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는 데 있다[2].
[2] 자세한 개념 정의는 김동식·송효진·동제연·이인선(2019)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2020.10.21.)를 참고할 수 있다.
우리는 임신중지를 한 여성을 처벌해 온 ‘낙태죄’가 여성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중심적 인식(‘문란한 성생활’ 등)에 기대어 있는 법이라는 것을 이제 안다. 동시에, 이 법이 과거 인구 조절을 위해 여성 몸에 불법 임신중지 시술을 시행하였으나(일명 ‘낙태 버스’) 오늘날은 인구 감소를 문제 삼으며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불법 시술로 여성을 내모는 국가의 인구 정책과 다른 말이 아님을 안다. 또한, 어떤 인구 집단은 태어날 수 없도록 하는 법 조항(‘모자보건법 14조’ 등), 특정한 부모 됨과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트랜스젠더/젠더퀴어/논바이너리/동성커플 등)가 함께 존재한다는 점도 안다.
개인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리를 우선해야 할 사회 환경과 제도가 성별 이분법과 젠더 위계에 기반하여 남성중심·국가중심적으로 설계되어 왔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그리고 우리는 임신중지 권리의 보장이 곧 성과 재생산 건강·권리의 보장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같은 이해 위에서,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며 발표된 이번 의약품 도입이 ‘임신·출산·피임 등 여성 건강 전반의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모두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리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의약품 도입은 변화의 시작일 뿐 종착지가 될 수 없다. 정부는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의 목적이 성과 재생산 건강·권리의 실질적 보장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처방 권한, 대상 임신 주수, 건강보험 적용 여부 등 구체적 사항을 목적에 맞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관련 법률 개정을 통해 임신중지 의약품이 안정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첫째, ‘의사 처방을 원칙으로 한 약물 조제’ 조건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도입 초기 2년간 병원에서의 처방과 조제를 원칙으로 하고, 이후 의사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약품을 조제하는 방식을 취하는 단계적 조치 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현재 보건의료 체계가 지닌 지역별 접근성의 한계와 개인의 취약한 개별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피지 못한 결과이며, 시일 지연에 따른 임신중지 성공률 하락 및 부작용 위험을 고려하지 못한 설계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 복합제를 필수의약품 목록상 ‘핵심목록’으로 이동시키며 ‘긴밀한 의료 관찰’ 요건을 삭제한 바 있으며(World Health Organization, 2019: 47;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5: 55),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당사자에게 불필요한 접근성의 제약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신 기간을 사전에 초음파로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지 않을 것을 권고한 바 있다(World Health Organization, 2024: 10).
둘째, 의약품 처방 가능 주수를 최소 12주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재 기준은 제약사의 품목 허가 신청 조건인 ‘임신 9주 이내’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 임신 사실을 인지하는 시점과 현재의 의사 진료·처방, 원내 조제 절차를 감안할 때, 9주(63일)는 실제 당사자가 대응하기에 매우 불충분하다. 더불어 해당 의약품의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었음을 고려해 가교시험을 생략하면서도, 해당 의약품의 적용 기간을 국제 기준인 12주보다 3주 짧은 9주로 유지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2019년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의약품의 안전성을 검토하기에 충분했던 7년이 공백으로 지나간 점도 유감스럽다. 당사자의 실질적인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기간을 확보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임신중지 의약품 처방 가능 주수를 12주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이번 도입을 계기로 그동안 미뤄져 온 기술적·의학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즉시 시작해야 한다.
셋째, 임신중지 의약품이 건강보험 급여로 제공될 수 있도록 보건의료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약값은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산정되며, 의약품의 건강보험 급여 여부는 제약사의 급여 신청을 거쳐 검토된다. 그러나 제약사는 급여 신청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현 단계에서는 허가가 이루어지더라도 비급여로 공급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대로 임신중지 의약품이 비급여로 도입될 경우, 약제비 전액이 개인 부담이 되어 청소년과 무직자처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들은 의약품을 이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임신중지 관련 의료 조치가 모든 수준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건의료 체계를 재설계하고, 그 연장에서 임신중지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지정해야 한다.
나가며,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성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리 보장을 위한 약물 도입을 목전에 두고 이를 태아의 생명권과 대립시키는 이분법적 구도가 되풀이되고 있다. 임신중지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학습시키고 자극하는 언어, 그리고 여성의 정치 행위와 정책 결정에 대한 폄훼를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정치적 행위를 통제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하여 정부는 ‘미프진 약물을 보수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답하기보다, 정보 접근권의 보장, 학습·노동 환경에서의 불이익 방지, 유급 휴가 제도의 마련 등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실현하기 위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고, 관련 법률의 제·개정을 통해 모두의 성과 재생산 건강·권리를 담보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참고 문헌
- 김동식•송효진•동제연•이인선(2019). 여성의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방향과 과제. 서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2020.10.21.) 「검은시위에서 국회까지: 성·재생산권리 보장 기본법(안)」https://srhr.kr/policy/?q=YToy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zOjQ6InBhZ2UiO2k6Mzt9&bmode=view&idx=6142615&t=board
-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FWD(2019.4.12.)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에 부쳐: 판결문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https://fwdfeminist.com/2019/04/12/critic-1/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19). WHO model list of essential medicines: 21st list, 2019. https://www.who.int/publications/i/item/WHOMVPEMPIAU2019.06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4). Abortion care guideline (2nd ed.). https://iris.who.int/handle/10665/382157
-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5). The selection and use of essential medicines, 2025: WHO model list of essential medicines, 24th list. https://www.who.int/publications/i/item/B09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