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여학생회 폐지에 관한 소고 (2) 부록: 총여학생회를 중심으로 쓴 대학 페미니즘의 역사

🌙상상 / ☁️미현

“여성운동의 역사를 아는 것은 불안을 견뎌야 할 이유와 힘을 준다.”
“여성주의자는 맥락의 산물이자,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려고 싸우는 사람이다.”

전희경, 『오빠는 필요없다』 17쪽

1. 총여학생회 등장 이전 대학 페미니즘: 대학에도 여학생이 있다!

여성이 처음 대학교에 등장한 건 언제였을까? 1914년에 이화여자대학교 제1회 졸업식이 열렸고, 세 명의 학생이 졸업했다. 최초의 남녀공학 대학교는 연세대학교(당시 연희대학교)이며, 1946년 7명의 여성이 입학함으로써 남녀공학이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연세대학교 최초의 남성 졸업생은 1908년에 배출됐다.

대학에 입학하는 여학생이 점차 증가하면서, 대학 내 여학생들은 ‘여학생부’, ‘여학생회’와 같은 모임을 조직했다. 동국대학교에서는 1957년 ‘여학생부’가 조직되었으며, 1960년에 ‘여학생부’는 ‘여학생회’로 발전했다. 최초의 여학생 모임들은 꽃꽂이나 서예, 수예 강좌를 주최하며, 여성주의적인 의제를 가지기보다는 가부장적 여성성에 복무하는 모임으로 보인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도 여학생은 전체 대학생의 20퍼센트를 넘지 못했던 현실이 있었다. 따라서 여학생들이 대학 내에 입학하고 여학생들끼리의 모임을 조직했다는 것 자체를 ‘여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2. 총여학생회의 첫 등장: 학생운동 주체로서 여학생 가시화 및 조직화

총여학생회는 1980년 서울대에서 처음 생겼다. 당시 서울대에서 총여학생회를 만든 심상정 현 정의당 국회의원은 한 대담에서 총여학생회가 등장한 배경을 이렇게 언급했다.

“여학생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학생운동 주류가 아니라 운동권 학생의 애인으로만, 학생운동과 학회의 악세사리 정도로만 취급됐죠.” (기사 보기)

1960년 4.19 혁명을 전후로 대학 내에 학생자치기구인 ‘총학생회’가 설립되었다. 4.19 혁명 이후로 총학생회는 대학생들이 사회 변혁 운동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거점이 되었다. 독재 정권 타도 및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 중에는 당연히 여학생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학생 운동의 주력 부대는 남성 중심적 조직이었다. ‘여성은 투쟁력이 약하다’거나 ‘남녀가 함께 있으면 분위기가 흐려진다’는 이유로, 여학생들은 ‘언더 서클’에서 배제되었다. 여학생이 남학생과 함께 학생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남성화되거나 남성의 보조로 머물러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겨난 총여학생회는 학생 운동 진영의 여학생들에 의해 조직되었고, 여학생 또한 학생 운동의 주체로 세우고자 했다.

3. 성정치 중심의 총여학생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1990년대 초중반, 국내 성정치 담론의 확산으로 ‘섹슈얼리티’ 문제는 다른 ‘정치적’ 문제들의 부차적 문제가 아닌 독자적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성정치를 핵심 의제로 삼은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은 이전 세대의 대학 여성 운동을 ‘여학생이 주체가 된 운동’이라는 의미에서 ‘여학생 운동’으로, 그리고 섹슈얼리티를 중심에 둔 자신들의 학내 운동을 ‘대학 내 여성 운동’으로 명명했다.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은 1990년대 초반의 새로운 성폭력 담론의 흐름을 상징한다. 이 사건은 사회에 ‘성희롱’이라는 성폭력 개념에 대한 논의를 일으켰고, 대학 내 만연한 성폭력을 환기했다. 이후 여러 학교에서 여성주의 관련 모임이 만들어졌으며, 몇몇 학교에서는 대학 내 여성운동가들의 자발적인 문제 제기로 총여학생회가 해소되거나 위원회 체계로 전환되기도 했다. 문제 제기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구조에서 탈피하여 여성주의적인 조직 질서에 대한 고민들과 여성 문제를 남/여 이분법을 떠나 섹슈얼리티 문제로 보자는 인식 전환에서 비롯되었다.

일련의 변화는 ‘영페미니스트(young feminist)’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영페미니스트’들은 학내 성차별적 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일상의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움직임을 기획하고, 지하철 성추행 방지를 위한 거리 퍼포먼스, 학교 앞 맥주, 소주 광고 포스터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대학 내외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총학생회에서도 여학생 관련 공약을 내놓고, 서울대 신교수 사건에는 서울대 총학생회 차원에서 수업 보이콧 등을 통해 연대하는 등 여성 관련 의제들이 총여학생회에 수렴되지 않았고, 학내에서 전반적으로 수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총여학생회의 역량 감소와 탈정치화: 포스트페미니즘, 역차별 담론의 확산

2000년대에는 고학력이며, 능력 있는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인 ‘알파걸’이 등장했다. ‘알파걸’ 담론이 대중적으로 순환하면서, 이제는 성별을 이유로 차별받는 여성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2001년에는 군가산점제가 폐지되면서, 페미니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포스트페미니즘’의 정서와 역차별 담론이 함께 순환한다.

1970년대에 국내에 도입된 여성학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여성학 교양강좌가 폐강되고, 2004년 서울여대와 2007년 숙명여대에서 각각 여성학과가 폐과되는 등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기사 보기).

총여학생회 역시 위기를 맞았다. 여성주의적 의제는 사라지고, 네일아트, 성형 등 미용이나 여학생 취업 등에 초점을 맞추며, 여학생의 복지기구처럼 변모하였다(기사 보기). 성정치 담론이 확산되던 시기,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자발적인 고민에 의해 해소되거나 다른 형태의 기구로 재개편되기 시작했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총여학생회는 입후보자가 없어 공석으로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거나, 폐지되기 시작했다(기사 보기). 건국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이러한 흐름에서 폐지되었으며, 홍익대, 시립대, 연세대 등에서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이 공식화되었다. 총여학생회는 남학생들에 의해 ‘여성부’에 비유되면서 여성 편향적인 기구로 인지되기도 했으며[1], 학교 내에 차별이 없기 때문에 총여학생회는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2], 그리고 여학생들 스스로에 의해서도 ‘여성으로서 차별받지 않는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었다.

[1] 동국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D-yeon, 2011.
[2] 동국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 D-yeon, 2011.

5. 포스트-강남역 페미니스트들과 총여학생회: 다시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2000년대 후반, ‘헬조선’이라는 청년 담론이 부상했다. ‘헬조선’이라는 청년 담론에서 청년들은 인생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포기한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세대’로 불렸다. 그러나 이러한 청년담론에서 ‘지옥에서 살아가는’ 청년으로 간주되는 주체들은 다름 아닌 ‘이성애자 남성 청년’이었다.

2015년 중반, ‘여성 청년’으로 표상되는 온라인 페미니스트, ‘메갈리안’이 등장했다. 남성중심적인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적인 낙인을 스스로 뒤집어쓰며 등장한 메갈리안들은 여성 혐오 표현을 그대로 성별 반전시켜 남성에게 되돌려주는 등의 온라인 격투를 벌였고, 오프라인에서 또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혐오 살인사건과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와 애도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총여학생회는 다시 여성주의적 의제를 중심으로 조직되기 시작한다. 온라인과 매개된 페미니즘 대중화 그리고 강남역 사건 이후, 한국 사회에서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 혐오가 환기되었다.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은 학내에 존재하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총여를 세워야 한다”라는 책무를 가지고 페미니스트로서 총여학생회에 다시 모였다. 총여학생회는 여학생뿐만 아니라, 학내에 존재하는 여러 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 발언을 문제 삼았으며, 학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력 사건을 방지할 자치 규약을 학과마다 배포하는 등 포스트페미니즘 담론 확산 이후 단절된 대학 여성 운동의 맥락으로 총여학생회를 다시 위치시켰다.


참고 문헌

  • 손희정(2017). 『페미니즘 리부트』. 서울: 나무연필.
  • 전희경(2003). 『오빠는 필요없다』. 서울: 이매진.
  • 음주중과 금주중(2018). “그 많던 총여학생회는 어디로 갔을까”, 동국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오프너 OPEN HER.
  • 달과 입술(2000).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파주: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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