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여학생회 폐지에 관한 소고 (2): 백래시는 ‘완성’되지 않았다

🌙상상 / ☁️미현

1. “가치판단은 그만해주셨으면 좋겠고, 2,600명의 요구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총여학생회회원의 1/10의 요구가 있었다 해서 이를 이관하는 것은 서명 해주신 남학생분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따라서 전체 총투표가 실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세대학교 제15차 중앙운영위원회 속기록, 2018. 5. 28)

위의 문장은 총여학생회 재개편 총투표 안을 결정했던 연세대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서 단과대 대표가 했던 발언이다. ‘총여학생회 회원의 요구를 안건 상정 과정에 반영하면 남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라는 한 단과대 대표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총여학생회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과 학내 성차별을 다루는 공적 기구로서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같은 층위에 두고, 총여학생회 회원 대 남학생이 대립하는 구도를 설정한다. 이러한 발화는 총여학생회 폐지를 둘러싼 공적 논의를 성별 갈등으로 환원한다.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라고 지칭하며 정의와 평등에 관한 요구를 이해관계의 싸움으로 사적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반격의 전략이다.

“학적 확인이 확인된 2,600명의 논의를 이어 해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총투표안에 찬성한) 여학생이 1/10이 넘지 않더라도 총투표는 진행 되어야합니다. 총투표의 요구가 옳다 틀리다 라고 (가치판단하는 의견들이) 들리는데, (저는 총투표안이) 상식적인 요구이기 때문에 (서명한 사람이 1/10을) 넘었다고 생각하고, 가치판단은 그만 해주셨으면 좋겠고, 2,600명의 요구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제15차 중앙운영위원회 속기록, 2018. 5. 28)

‘다수 학생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총투표 요구는 상식적이며, 이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은 안건에 동의한 사람의 수만이 논의의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다수만을 고려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총여 폐지에 반대하는 정치적 행위들을 일축시켰다. 총여 재개편 총투표 요구안에 맞서 총여학생회의 존립을 이야기했던 ‘우리에게 총여학생회가 필요합니다(우총필)’는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과 근거를 모아 중운위에 가져갔지만, 이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수용되지 않았다. 동국대에서는 전례 없이 여학생 총회가 열렸지만, 여학생 총회에서 의결된 안은 폐지 과정에 반영되지 않았다.

총여학생회가 폐지되는 전 과정의 시작점에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이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시간표 어플이자 학내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에타는 철저하게 익명으로 운영되며, 모든 게시글은 추천을 많이 받을수록 상위로 노출되고, 신고를 많이 받으면 삭제된다. 총여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논의 구조는 ‘익명성’과 ‘가치 판단 부재’라는 에타의 공론장 구조와 닮아있다. 에타에서는 게시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다수에 의해 지지를 받는가 아닌가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설정되면서, 차별적인 발언이나 혐오 발언 그리고 정치적 사안과 관련된 발언들이 같은 무게로 다뤄진다. 더 많은 추천과 좋아요가 해당 논의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총여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가치판단은 그만”하고 “다수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정치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학생이 제기한 총여의 의의나 필요성은 논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2. 그들이 폐지하고자 했던 총여학생회는 무엇이었는가?

총여학생회는 여성주의 운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존재 의미와 역할이 변하기도 했다. 총여학생회가 ‘여학생’을 사회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여학생 운동’의 맥락에서 처음 등장했다면, 90년대 ‘영페미니스트’라는 페미니스트 주체들은 총여학생회의 성격을 여학생 대표기구를 넘어, 학내에 여성주의 및 성정치 이슈를 제기하는 것으로 재규정했다. (총여학생회의 역사 보기)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은 총여학생회가 ‘여학생’들의 배타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며, ‘여학생’으로 구성원을 한정하는 등 총여학생회가 ‘여학생’을 대표하는 기구임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그들이 폐지하고자 했던 총여학생회는 무엇이었으며, 왜 존재해야 했는지 말이다.

동국대학교 31대 총여학생회의 첫 활동은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 활동이었다. 31대 총여학생회장 원정은 청소노동자 파업에 대한 중앙운영위원회의 전반적 입장을 ‘무관심’과 ‘중립’으로 기억한다. 학생회 임원으로서 청소노동자 파업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고자 했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동국대 총여학생회는 학내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들’이라는 모임을 조직하여 청소노동자 파업에 연대했다. 이들은 페미니스트로서 청소노동의 젠더화와 고령 여성의 노동 문제를, 그리고 학내 구성원으로서 대학 내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학내 비리를 문제 삼았다. 또한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와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는 대학 내에서 신체와 섹슈얼리티 의제를 여성주의적으로 제기하고, 정치적으로 다룰 공적 기구로서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자보를 써 붙여 총여학생회 폐지에 맞서기도 했다.

이처럼 총여학생회는 의미를 갱신하면서 배제와 차별에 저항하는 자치기구를 맡아왔다. 그리고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총여학생회를 ‘여성’이라는 성별로 환원된 여학생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정치학을 개진하는 기구로 이해하며 총여학생회 폐지에 맞섰다. 대학 내에서 ‘차이’가 어떻게 조직되어 어떤 방식으로 대학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학내 소수자 집단의 대학생활을 정치적인 문제로 제기하고, 다양한 차이를 가진 학내 구성원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이 총여학생회가 해온 역할이다. 이는 사실 총여학생회에 한정된 역할이 아니며, 학생자치기구의 과제이기도 하다. 결국 자신들의 과제를 방기해온 학생자치기구가 다수의 익명적 요구를 보편적 요구로 받으면서, 자신들의 과제를 전담하고 있던 기구를 없애버린 셈이다.   

3. 백래시는 완성되지 않았다.

학내 페미니스트들의 활발한 활동이 있었던 같은 해에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얼핏 모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80년대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찾아볼 수 있다. 수잔 팔루디는 미국 문학가 앤 더글러스의 말을 인용해 다른 진보와는 다르게 여성들의 권리 신장은 계속해서 원상회복 되어왔다고 말한다(팔루디, 2017). 일보 전진한 바로 그 시점에 이보 후퇴가 시작되는 것이 ‘반격’이다. 1980년대 미국의 백래시는 사회경제적 흐름이자 뉴라이트 세력의 정치 기획이기도 하다. 뉴라이트 세력은 여성운동의 수사들을 보수적인 방식으로 전유하고, 여성운동이 조직과 배후를 갖춘 ‘세력’을 형성했다고 공격했다. 뉴라이트는 이렇게 여성주의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미국에서 뉴라이트 정치세력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방 구도는 총여학생회 폐지 프레임과 닮아 있다. 총여학생회는 성폭력 사건 해결 기구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총여학생회가 ‘사법기관화 되었다’고 비난받았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 연사 초청 강연을 진행했다고 ‘권력을 남용’한다고 지적받았다. 폐지를 요구하는 추진 위원회가 ‘민주주의’와 ‘정의’와 같은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닮아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 싸우는 여자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올해 3월 8일에는 ‘마녀 행진’이라는 대학 페미니스트들의 행진이 이루어졌고 성균관대에서 만들어진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성성 어디가)’는 아직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대학에서 싸우는 여자들’이라는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책 출판에 성공했고[1], ‘유니브페미’라는 대학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출범 준비 중이다(페이지 보기). 재개편 총투표 이후 선거에서 이루어진 연세대학교의 총여학생회 ‘프리즘’의 당선은, 아직도 많은 여학생들이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 https://forms.gle/diwEL4oN4dwWQD7K7 <대학에서 싸우는 여자들> 도서 및 토크콘서트 티켓 추가 구매’ 구글 폼. 이 링크를 통해 4월 26일까지 도서를 구입할 수 있다.

팔루디가 설명한 백래시는, 보수주의적 정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페미니즘을 공격할 때’ 시작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이에 동조해서 ‘페미니즘이 여성과 사회를 망쳤다’며 등을 돌릴 때 완성된다. 이 일련의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이 백래시라면 민주적인 논의 없이 진행된 이익집단들의 반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학내의 페미니스트들이 아직 등을 돌리지 않은 한, 백래시가 완성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총여학생회 폐지 과정을 통해 학내 페미니스트들은 스스로 정치적 주체임을 자각하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대학 페미니즘이 다른 국면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열었다.

백래시에 맞서는 것은 ‘성별 대립으로 환원함으로써 이익과 이해의 문제로 정치를 협소화’하는 프레임을 깨는 것이다. 최근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가 김순례 동문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철회하는 과정은 학생 정치와 학내 여성주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김순례 동문의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에 대한 비판에 대해 해당 동문이 ‘여성’이기 때문에 ‘반-페미적’이라고 판단할 때 정치적 행위의 근거는 성별로 수렴되고, 페미니즘을 이해관계에 기반한 성별 갈등의 한 축으로 배치하게 된다.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총여 폐지론자들의 정치에 대한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백래시를 만드는 프레임에 빨려 들어갈 때, 학내 여성주의 운동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2017년부터 등장한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슬로건은 성차별과 여성 혐오에 대한 지적을 넘어선 여성주의 정치학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학 내 여성 혐오와 반-페미니즘 정서 그리고 학내 민주주의가 무너진 자치 구조 속에서 성 평등을 통한 민주주의의 완성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하지만 총여학생회를 폐지시킨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고 백래시의 프레임에 저항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는 한, 대학은 바뀔 것이다. 총여학생회 폐지 이후, ‘새로운 길 위에 있는 모두에게 용기를(프리단, 2018)’!


참고 문헌

  • Faludi, Susan(1991). Backlash: The Undeclared War Against American Women, NY: Crown Publishing Group, 황성원 옮김(2017), 『백래시: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파주: 북이십일 아르테.
  • Friedan, Betty(2010). The feminine mystique, NY: WW Norton & Company, 김현우 옮김, 정희진 해제(2018), 『여성성의 신화』, 서울: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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