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수연

1. 들어가며

오랫동안 물질이 정신을 비롯한 만물의 근원이라는 ‘유물론’은 필자를 사로잡았다. 먹고 입고 자는 환경에 제아무리 튼튼한 강철멘탈의 소유자라도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분배와 빈곤 문제는 개인의 생활 수준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몸-신체 문제는 그야말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인간의 조건’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선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장애와 빈곤의 모순을 온몸으로 맞닥뜨린다. 한국에서 장애인운동처럼 단시간 내 두드러지는 성과를 거둔 사회운동이 드물다지만, 여전히 우리는 길가에서 버스에서 영화관에서 휠체어를 마주치기 힘들다[1].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계단을 비롯한 온갖 장해물은 그들의 사회 활동을 가로막는다. 집 또는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이들에게 나고 자란 가족이란, 특히 가부장제는 장애여성에게 어떤 의미와 경험으로 다가갈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비장애여성과 달리 장애여성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1]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국 장애추정 인구는 267만 명, 1만 명 당 539명 수준이다.(원문 보기)

본 글은 선천적・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게 된 장애여성이 자립하여 지역사회 안에서 원하는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가족구성권’을 중심으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비판하고자 한다. ‘장애’와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이 교차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는 (실제로 그러하지만) 사회적 차별과 폭력, 그리고 대책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애여성을 피해자의 위치에 한정 짓지 않고 정상가족이라는 틀을 넘어선, 대안적 친밀성을 상상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장애여성’ 당사자가 아닌 필자가 그녀들의 삶의 경험을 그러모아 분석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비가시화되기 쉬운 장애여성의 삶은, 장애-비장애를 가로질러 우리 모두가 죽음과 취약성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다는 점에서 ‘당사자성’이란 잣대로 구획될 수 없다. 다양한 위치에서 다르게 작동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따로 또 같이 해방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장애여성 정책

미셀 바렛(1994)은 가족 개념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가족의 전형적인 상에 대한 사회문화적 규정은 현실 속 가족과 유리된 채 이데올로기화했다. 이러한 ‘정상가족(전형적, 핵가족) 이데올로기’는 가족 내 여성 억압과 갈등을 외면한 채 비전형적 가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지속시킨다(바렛 외, 1994; 이재경, 2004에서 재인용).  장애여성은 ‘여성’과 ‘장애’라는 다중적 소수자 지위를 갖는 집단(a group of a multiple minority status)으로서, 이중적 차별・억압・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구성원이다. 대개 장애인이라 하면 ‘남성’인 장애인으로 표상되고 상상되면서, 장애여성의 신체적 손상을 사회・문화적 장애로 구성하는 사회구조는 비가시화되어, 더욱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국가 정책 역시 장애여성의 삶-욕구를 반영하지 못한다. 장애여성 정책은 고용 정책과 모성보호 정책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애초에 ‘장애’의 분류와 구성이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노동 가능 여부에서 비롯된 만큼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몸’과 더불어 ‘노동할 수 있는 몸’(「실업실태 및 고용 활성화 방안」)으로의 전환은 장애인 정책의 중심을 이룬다. 더불어 장애여성에게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따라 요구되는 여성의 역할을 떠받치는 정책이 추가된다. 2015년 제정된 「장애인건강권 및 의료접근성보장에 관한 법률」은 기존의 장애여성의 건강을 임신과 출산 과정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모성보호 측면만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기사 보기). 2018년 3월 발표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서도 장애여성 분야는 임신, 출산, 양육지원과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에 집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 정상가족 안팎의 장애여성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국가 정책에 투영되었다면, 장애여성은 정상가족 안에서 또는 밖 현실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 정책이 요구하는 장애여성의 모성 보호는 오랫동안 박탈되어온 장애여성의 재생산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에서 모성 정책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모성’의 강요로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장애여성의 박탈된 자기결정권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생학적 시선이 투영된 결과 임신과 출산에 적합하지 않은 몸으로 여겨지는 장애여성의 신체 통제권 침해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본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갓 생리를 시작한 딸의 임신을 제한할 방법을 문의하는 장애 부모들은 오래전부터 오늘날까지 있었고, 관련 시술들이 아직도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기사 보기).

장애여성이 폭력과 통제로 작동하는 가족을 떠나 자립하기도 쉽지 않다. ‘부양의무제’를 위시하여 국가가 가족에 떠넘겨 온 돌봄 부담은 장애여성의 자립과 생존을 가로막는다. 현재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유지하는 데 기초생활수급자격을 유지는 경제적으로 긴요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지원을 받는 ‘수급자 되기’는 노동과 고용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곧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알려왔지만, 여전히 일정한 재산과 소득이 있는 직계가족이 있으면 수급자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다. 가족의 부양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직계가족의 부담이라는 것. 부양의무제는 장애여성이 가까스로 생존하기 위해서 ‘정상가족’에 머물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기사 보기).

4. 정상가족 편입으로의 욕망 ?

한편 역설적으로 일부 장애여성은 (비장애여성과 마찬가지로) 정상가족에 편입되고픈 욕망을 가지기도 한다. 김경화(1999)에 따르면 장애여성은 신체적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협받는다. 장애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는 사회적 편견이 작용하기 때문에 ‘결혼적령기’가 되어도 관련된 질문을 받지 않고, 그녀들에 대한 ‘무성적’ 시선은 이들을 ‘어린애’로 바라보게 만든다. 따라서 여성적인 역할이 기대되지 않은 장애여성들이 자신을 스스로 ‘여성적으로’ 보이기 위해 가부장적 가치관을 강하게 내면화하고 실천하기를 열망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가족의 정상성’ 자체가 모든 인간의 생애에 정상적으로 획득되어야 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강요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성애 결혼제도를 경유하여 생애-정상성의 궤도에 오르는 것은 장애여성이 ‘정상성’을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자장 안에서 정상가족의 피해자이면서 그 구성원이 되고픈 장애여성의 경험과 관점은 비장애여성 중심적 여성 운동의 한계를 보여준다.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이 함께 따로 또 같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횡단의 정치를 구가할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의 실마리는 ‘특정한 가족 규범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데에서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 가족구성권에 있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대표는  ‘정상가족’ 담론 안에서 논의될 수 없었던 친밀한 관계들, 성애적 관계인 동거 커플 혹은 형제자매 또는 친구끼리 사는 경우나 주거 공간만 공유하는 등의 비성애적 관계까지 모두 불러 모아 함께 논의를 펼쳐보자고 제안한다(기사 보기). 이성애 결혼과 고정된 성역할로 박제되지 않은, 다양한 가족과 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가가 현재 정상가족에 쏟는 혜택을 모든 가구에 적용하면 어떨까? 원가족과 장애인거주시설로부터 떠나 새로운 공동체와 관계성을 형성하는 장애여성의 자립 경험은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 지역사회 속에서 역동을 만들어 내면서 대안 공동체의 또 다른 상과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5. 나가며

오래전부터 지역사회 곳곳에서 살아가고자 가족과 장애인거주시설을 맨몸으로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영화 <거북이 시스터즈>에는 ‘장애인 자립생활’[2]이라는 말조차 아직은 낯설었던 당시 세 명의 장애여성이 사회와 부딪치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내 장애여성들의 모임인 ‘빗장을 여는 사람들’을 통해 만난 정영란, 박김영희, 박순천 씨 이야기이다. 비장애여성에게도 이성애 결혼을 통한 ‘독립’이 원가족으로부터의 ‘정상적인’ 분리라고 여겨지는 오늘날, 의존하지 않으면 재생산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지는 장애여성의 모험은 귀하다. 아래 박김영희의 말은 ‘정상가족’을 넘어서 우리가 ‘동반자’로서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고민케 만든다.

[2] 자립생활운동이란 시설 밖에서 중증장애인이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지역 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한 운동을 말한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가족에게 짐이 되는 생활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생활하기를 꿈꾸고 있어요. 하지만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도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라는 것뿐이죠. 이제는 장애여성이 누군가와 동거할 경우 이들에게도 부부에 준하는 혜택을 주고, 법적으로도 그 관계를 인정해 줘야 해요.” (기사 보기)

18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거주시설에 살았던 발달장애인 동생과 ‘6개월 생존프로젝트’를 담은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에서도 새로운 가족을 이룬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한국 사회가 저출산 위기론을 운운하면서 아이에 투사하는 미래주의, 생애-중심성 가족주의를 벗어나 오늘을 산다. 언니-동생과 함께 친구들은 스티커 사진을 찍고 노래를 부르고 먹고 마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정과 시혜, 경계와 조바심의 시선을 거두고, 서로를 돌보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에, 영화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 순간에도 생성될 수 있다고 기운을 북돋는다.


참고 문헌

  • 김경화(1999). “장애여성의 육체와 정체성의 형성 ”, 『한국여성학』, 제 15집 2호, 185-217쪽.
  • 이재경(2004). “한국 가족은 ‘위기’인가? ”, 『한국여성학』, 제 20집 1호, 229-244쪽.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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