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과 ‘글로벌 모성’ 프로젝트

🌊강물 / 🍊사라

1. 글로벌 열풍과 가족

2000년대 초반의 ‘조기교육’ 열풍 속에서 언어교육 시장은 지금까지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영어 유치원, 유학 컨설팅 등 각종 사교육은 그야말로 강세를 보이는데, 언어교육이 부상하게 된 배경은 ‘글로벌 시대’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글로벌 무대에 진입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필수적인 자격이자 능력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를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언어교육은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결혼[1] 가족’은 외국어 교육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으로 부각되었다.  

[1] “국제결혼이 한국사회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해방 이후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미국인 병사와 한국인 여성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부터이다. 당시에는 미군 기지촌 주변에서 성매매를 계기로 이뤄진 국제결혼이 대다수였는데, 이것이 곧 국제결혼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이후 1970∼1980년대를 거쳐 해외 유학, 해외 근무 등의 경험 속에서 외국 남성이나 외국 여성과 결혼하는 국제결혼이 대두되면서, 기존 미군과의 국제결혼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는 다소 완화되었다. 그 후 1980년대 말부터 농어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 한계 계층 남성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추진되었고 재중 동포인 조선족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주를 이루었다.”(원문 보기)

국내 ‘국제결혼’과 관련된 논의는 대체로 ‘주류사회의 수용 여부’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한국사회에서 ‘국제가족’은 주류사회에서 수용되기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담론과 맞닿으며, 소위 ‘다문화가족'[2]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적합한 가족 환경으로 새로이 지목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잘 드러나는 정책이 바로 ‘이중언어 가족환경조성사업(이하 이중언어교육사업)’이다. 이중언어교육사업은 사업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중언어를 전수할 수 있는 ‘가족환경’을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이 사업에서 전제하는 ‘다문화가족’은 어떻게 구성되고 있을까? 이 질문을 먼저 던져야 정책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가족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지향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2] 오늘날 ‘다문화’라는 용어는 논란 속에 있다. 정용인에 따르면, 2003년에 ‘국제 결혼’ ‘혼혈아’ 등의 차별적 용어 대신 ‘다문화가족’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으며(기사 보기), ‘정부는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하며 ‘다문화가족’이란 법률 용어를 통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문화’라는 용어가 일상 생활 속에서 “다문화 아이들”처럼 이름을 대체하는 관행이 되면서, 이 용어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기사 보기). 본글은 이러한 비판을 인지하여, 다문화가족 이란 용어에 ‘’ 를 처리하여 사용한다.

‘다문화가족’의 의미가 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현재, 이 글에서 다문화가족정책 상 ‘다문화가족’은 어떠한 가족으로 그려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국제결혼’을 통해 국내로 이주한 여성(이하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이중언어교육이 시행되는 현실 속에, 이중언어교육사업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며, ‘다문화가족’이 어떻게 ‘정상가족’ 담론과 만나는지 탐색해보고자 한다. 

2. 동화주의에서 벗어나기?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족’과 관련된 논의는 1990년대 중반, 결혼이주여성의 유입이 급증한 상황과 맞닿는다. 1980년대 도시화와 ‘농어촌총각’의 고령화에 따른 출생 인구수의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가 ‘국제결혼’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하였다[3]. 결혼이주여성들은 일부 한국 남성들에게 소위 ‘정상가족’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렇게 결합된 ‘다문화가족’은 선주민끼리 이루어진 가정에 비해 ‘불안정’하며, 무언가 ‘결핍된’ 가족유형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정착하고 생활하는데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으며, 가정폭력 등의 문제들도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정책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3] 다만, 본글에서는 모든 ‘다문화가족’이 ‘중매’라는 과정을 거쳐 결혼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2006년 이후 초기 다문화가족정책은 결혼이주여성의 빠른 정착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수립되었다. 결혼이주여성은 ‘다문화가족’의 ‘불완전함’의 요인으로 간주되었고,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와 사회문화를 교육하여 ‘한국인’으로 만드는 것이 정책의 목표였다. 김치 담그기, 제사음식 만들기와 같은 체험 프로그램들은 ‘한국인 며느리’, ‘한국인 아내’, ‘한국인 어머니’라는, ‘정상가족’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에 결혼이주여성이 적응할 수 있도록 맞춰져 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 편입하려는 시도와 ‘정상가족 만들기’ 안에서 결혼이주여성은 위치지어졌다. ‘다문화가족’과 관련된 사회이슈에 관해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나 ‘다문화가족’의 사회적 수용 문제를 다루기 보다, 결혼이주여성의 ‘불완전함’으로 문제를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정책 상에서 ‘다문화가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후 글로벌 시대에서 ‘다문화가족’은 새로운 지평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다문화가족의 언어‧문화 사용 및 세대간 전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정부는 ‘다문화가족’의 언어⠂문화적 배경을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주류 사회에서의 수용가능성을 모색했다. ‘이중언어’의 세대 간 전수는 가족관계를 원만히 하고,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육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인’으로 동화되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글로벌 인재’를 키울 수 있는 자원으로 재평가된 것이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2011: 4)으로 평가되는 이러한 관점들은 이중언어교육사업으로 구체화되었다. 

3. 이중언어교육의 제도와 현실

다문화가족지원사업의 하위 프로그램인 이중언어교육사업은 2014년 시범 운영을 거치며  확대되었다. 작년부터 정부는 제3차 다문화가족지원계획에 따라 이중언어교육사업의 방향을 ‘다문화가족 자녀의 안정적 성장과 역량 강화’로 설정했다[4]. 이중언어교육사업의 기본 설계는 부모가 함께 자녀의 언어발달을 도모하되, 다양한 언어와 문화들이 자녀에게 전수될 수 있는 가족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중언어코치는 ‘다문화가족’ 자녀에게 직접 이중언어를 가르치지 않는다. 부모에게 이중언어 교육방법을 코칭하고,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서 다른 가족구성원들의 협조를 독려한다. 이는 결혼이주여성의 문화와 언어를 권장한다는 측면에서 동화주의에 대한 비판이 정책에 일부 수용된 것이다. 

[4] 여성가족부 정책자료집 「2018년 다문화가족지원 사업안내」에 따르면,  이중언어교육사업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다문화가족 자녀가 가정 내에서 영유아기부터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 조성으로 자녀의 정체성 확립 및 글로벌 인재로의 성장지원”, 둘째,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부모교육 및 부모-자녀 상호작용 서비스 제공으로 부모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부모와 자녀 간의 의사소통과 정서적 유대감 강화”(317)이다.

하지만 이중언어교육사업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결혼이주여성의 생활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중언어교육사업의 대상은 가족구성원 전체로 상정되지만, 가족 전체가 한국어를 사용하고 엄마만 모국어를 사용하는 상황에서는 결국 이중언어교육의 책임이 결혼이주여성에게 과도하게 치중되기 때문이다. 이중언어교육사업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남편’을 포함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시간을 내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또한 결혼이주여성 모두가 이중언어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낯선 땅에 살아가는 ‘이방인’으로 위치되어 자신의 입지를 다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인’이 되기 위한 ‘기본소양’처럼 여겨지는 한국어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부부갈등, 가족 간 소통을 포함한 모든 문제의 화살은 결혼이주여성에게 향한다. 이는 곧장 자녀의 교육문제와도 연결된다. 자녀의 한국어 능력이 소위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결혼이주여성의 책임으로 전가되며, ‘부족한 어머니’로 간주된다. 이런 이유로 한국 가족 환경 안에서 모국어 사용에 자유롭지 못한 결혼이주여성은 이중언어를 전수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 

결국 결혼이주여성은 스스로 한국어를 잘 구사해야 하고,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한국인’이 되어야 하며, 본국의 문화와 언어를 자녀에게 전수해야만 하는 다중의 역할과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안에서 교육과 양육을 잘하는 ‘어머니의 역할’은 ‘다문화가족’이라는 배경에서 한층 강화된다.

4. ‘정상 가족’ 만들기와 ‘글로벌 모성’

‘한국인 되기’, ‘글로벌 인재 양성하기’는 ‘글로벌 모성’이라는 키워드로 만난다. 결혼이주여성들이 동원되는 배경에는 앞서 언급한 ‘글로벌 인재’라는 담론이 자리하고 있다. ‘글로벌 인재’ 담론은 국민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전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되며 주목받았다(홍성현∙류웅재, 2013). 신자유주의 질서 안에서 개인의 능력이 중요시되면서, 개인의 유능함을 키우는 책임은 국가보다 가정, 개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이 흐름에서 이중언어교육사업은 ‘다문화’라는 배경을 자원화하는 데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정작 결혼이주여성들과 가족들이 어떤 부분에서 곤경을 겪으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은 남성생계부양자와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는 여성이라는 ‘정상가족’ 모델을 전제한다. 전제와 달리 다양한 이유에서 맞벌이 혹은 여성이 홑벌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결혼이주여성은 이중언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가계사정이 좋지 않아 혼자 벌어도 생계 유지가 어렵거나, 본국 원가족의 생계를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송금할 돈이 필요하거나, ‘남편’의 몸이 불편해서 혹은 의지가 없어 결국 여성이 생계를 오롯이 떠맡는 사례들도 있다. 또한 가정폭력, 학대 등 여타 이유로 한국 내 가족으로부터 독립한(하려는) 결혼이주여성들도 존재한다. 또한 결혼이주여성이 직접 임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포함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다보니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제약이 있다. 위 사례들에서 알 수 있는 점은, 정책 상의 ‘다문화가족’ 모델이 결혼이주여성에게 자녀의 교육을 담당할 것을 가정하고 독려하며,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결혼이주여성들이 실제로 자녀의 교육에만 신경쓸 수 없는 상황이며 정책에서 그리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다문화가족’에게 들어맞지도  않는다. 그러나 국가는 오히려 ‘다문화가족’을 ‘정상가족’으로 주조하고,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꿈을 ‘다문화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엄마인 결혼이주여성에게 기대한다. 이러한 연장선 상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글로벌 모성’을 지닌 엄마로 기획되는 것이다. 

5. 나가며

이중언어교육사업은 기존의 동화주의적 정책과 다른 지평을 열었다. 초기 다문화가족정책들은  ‘다문화가족’에 부착된 부정적인 꼬리표를 남겨둔 채, 결혼이주여성들을 ‘한국인’으로 만드려는 경향이 짙었다.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와 세계화의 조류 속에 ‘다문화가족’과 결혼이주여성들은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양성소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중언어가 자유롭게 오고가는 가족 환경 속에서 자녀들은 다양한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국경에 매이지 않는 유능한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졌다. 이중언어교육사업은 ‘다문화가족’의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자원화하여, 가족 갈등‧정체성 혼란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더욱이 ‘다문화가족’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자원’으로 명시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것이 주된 방점이다. 

하지만 ‘글로벌 인재’를 서포트하는 주체와 가족에 대한 질문은 함구되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자녀를 유능한 인재로 키워내는 ‘글로벌 모성’을 가진 엄마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조력자의 위치로 전락했다. 이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삶을 사는지와는 별개로, 국가는 결혼이주여성을 통과하여 마침내 ‘글로벌 정상가족’을 상상 속에 완성하였다. 애초에 ‘다문화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책임이 국가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각 가정과 개인(주로 결혼이주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엄마’, ‘어머니 역할’, ‘모성’, ‘가족’ 등의 다종다양하고 복잡한 맥락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여성’의 무거운 책무가 남았다.  

마지막으로 필진들이 왜 결혼이주여성과 관련된 글을 ‘이중언어교육사업’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려 했는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결혼이주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회자되는 건, 대게 가정폭력‧성폭력 등의 피해 경험이나 ‘국제결혼’ 과정 중에 입은 극심한 타격이 사건으로 될 때다. 따라서 결혼이주여성들에 대한 이미지는 ‘억압받고’, ‘수동적’인 한편, ‘욕심 많고’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수식어들이 뒤따른다. 물론 이슈화된 사건들이 덜 중요하거나 거짓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채로운 논의를 통해 한국 사회가 결혼이주여성들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와 역할들은 무엇이며, 어떤 경험을 사건으로 구성하고, 이로써 ‘주류 사회’라는 틀을 유지하려 하는지 되짚어보자는 취지였다. 앞으로도 결혼이주여성들과 관련된 논의가 보다 풍부하게 펼쳐지길 바란다. 그리고 결혼이주여성들의 한 단락들이 결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님을, 책임감을 갖고 면밀히 마주해야 할 이야기들임을 되새겨본다. 


참고문헌

  • 홍성현∙류웅재(2013), “무한경쟁 시대의 글로벌 인재 되기”. 한국언론학회, 커뮤니케이션 이론 9(4), 2013.12, 4-57
  • 여성가족부(2018), 「2018년 다문화가족지원 사업안내」
  • 한국여성정책연구원(2011), 「다문화가족의 언어⠂문화 사용 및 세대간 전수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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