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문화는 정말 자유와 청춘의 상징인가

💎고은

본 글은 필자의 필드워크를 통해 축적된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0.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게 되는 지역 논리가 있다. 바로 한강을 경계로 이분화된 강남과 강북의 격차이다. 마찬가지로 클럽을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진리가 있다. 바로 ‘입뺀[1]’문화를 통해 구축되는 강남 클럽의 ‘레벨’이다.

[1] ‘입장 뺀지’를 뜻하는 은어로 경호원들에 의해 입장이 저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클럽에 입장하는 여성의 복장과 외모를 검열할 때 사용된다. 이는 유튜브에 올라오는 ‘입뺀’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령 한 여성이 각기 다른 세 가지 착장으로 클럽에 입장하려고 했을 때, 그 여성이 입은 복장의 노출 정도에 따라 입장 여부가 판단된다. (페이지 보기)참고.

몇 년 전, 누구나 흥얼거리던 ‘강남 스타일’이 보여주듯 강남 특유의 상징성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리고 그 위에 있는 뭘 좀 아는 놈”의 차별화를 통해 기획된다. 이 ‘뭘 좀 아는 놈’은 고층빌딩과 경제적으로 부유한 중산층이 밀집한 지역이자 고급 성매매 업소와 술집, 호텔 등 화려한 유흥 문화를 보유한 강남의 지역성에서 탄생한다. 마치 강남과 강북이라는 경계 안에서 강남의 상징성이 드러나듯 강남 클럽 문화는 ‘들어올 수 있는 자와 들어올 수 없는 자’의 분별로 자신들의 위치를 격상해왔다.

그러나 ‘뭘 좀 아는’ 셀럽들의 문화 공간이었던 강남은 최근 승리의 버닝썬 사건과 정준영의 강간모의, 마약스캔들, 성접대 등 잇따른 성범죄의 핵심적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VVIP들이 여성들을 제공받고 약물강간을 일삼았다는 폭로는 강남의 차별화 전략이 젠더를 중심으로 ‘공급되는 자’와 ‘공급받는 자’를 분리해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동시에 클럽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들은 청춘들의 자유이자 권리로 이해되던 유흥(遊興)이 불평등한 이성애 섹슈얼리티라는 토대 위에서 구성된다는 점을 폭로한다. 유흥 문화가 ‘술-섹스-마약’을 중심으로 젠더의 권력차를 생산하는 현실에서 클럽 문화는 정말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유와 선택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가?

1.

1990년 이후 한국의 성 해방 담론은 개방적인 섹슈얼리티 문화와 유흥문화를 조직하고, 성적 욕망의 실천을 당연한 권리로 전환했다. 기존의 성 문화가 성적 욕망을 위험하고 금욕적인 것으로 다뤄왔다면, 성 해방 이후에는 쾌락적이고 소비적인 성이 생활 양식의 중심이 되었다. 이때 나이트 클럽은 억압적인 성적 규범에서 벗어나 성적 욕망과 실천을 상징하는 해방적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 이후 SNS 채널을 통해 일반인 ‘셀럽’들이 등장하고, 개인의 포스팅 위주의 마케팅 전략이 확대되면서 소셜미디어는 적은 자본으로 창대한 효과를 창출하는 새로운 마케팅 창구가 되었다. 클럽 또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화려한 이미지를 유통하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정보들을 전달하며 ‘스무살이라면 한번쯤 가봐야 하는 공간’이라는 상징을 부여받는다. 즉 음지로 이해되던 클럽 문화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청춘들의 환상과 동경의 대상으로 전환되었고, 접근성이 높아진 정보들을 통해 현실에 등장하게 되었다. “#강남 #아레나 #옥타곤 #파티 #셀럽 #핫플”과 같은 해쉬태그는 지속적으로 술과 담배, 농도 짙은 스킨십과 같은 퇴폐적이고 화려한 파티 이미지를 전달한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모든 욕망을 금지당했던 청춘들에게 클럽은 금기에 억눌려있던 욕망을 표출하는 합법적인 공간으로 인식된다. 즉 클럽은 마치 ‘이 곳’에서만 억눌려있던 욕망들을 표출할 수 있다는 듯 자유와 해방이라는 감각들을 판매하며 사람들을 유인한다.

2.

클럽 문화의 시초인 홍대가 주로 20대 초반의 청춘들로 대표되는 지역이라면, 이태원은 다양하고 이국적인 문화 정체성이 중심이 된다. 강남은 1960년대 후반 강남 개발책으로 촉진된 투기 붐에서 일궈진 금싸라기 땅으로, 갑작스러운 부를 지니게 된 사람들이 모여 일군 공간이다. 강남은 ‘돈’을 중심으로 럭셔리한 지역 이미지를 구축하였고, 이 지역성 안에서 강남 클럽 또한 타 지역과 차별화된 ‘격’을 내세우는 공간으로 상징화된다.

강남 클럽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과 입뺀 문화는 강남 클럽의 ‘레벨’을 가시화한다. 타 지역 또한 라운지 바나 클럽 앞에 경호원을 배치하지만 강남 클럽은 입장 자격에 신체자본의 위계를 더한다. 남성 경호원들의 ‘시선’은 여성들의 성적 매력을 판단하고, 클럽 입성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이다. 기존의 ‘성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은 성녀가 되지 못한 여성들을 모두 창녀로 만들며 위계를 조직했다면, 강남 클럽에서는 ‘성녀와 창녀’라는 위계가 재조직된다. 관리된 신체자본을 통해 ‘통과한 여성’과 이러한 자질을 갖추지 못해 ‘거절당한 여성’으로 이분화될 뿐이다. 화려한 옷차림과 노출은 여성들을 창녀로 만드는 기질이 아니라, 보기좋게 관리된 신체자본을 보유한 여성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한 태도가 된다. 따라서 노출을 통해 잘 가꿔진 신체를 보여줄 수 있는 여성들만이 ‘격’을 지닌 강남 클럽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는 통과된 여성들에게 ‘검증된 신체’라는 자부심을 안겨주고, 강남 클럽은 이러한 여성들을 보유함으로써 자신들의 ‘강남성’을 구축한다. 

결과적으로 강남의 상징은 여성들이 노출하는 신체를 통해 가시화되고, 여성들의 신체에 체현된 ‘강남성’은 강남을 상상하는 우리의 이미지, 즉 고급스럽고 힙한 감각들을 구성한다. 이때 강남성을 체현하여 클럽에 통과한 여성의 몸은 강남 클럽의 ‘격’을 상징하고 돈 많은 남성들을 불러모으는 상품이 된다. 성매매는 돈과 서비스가 직접적으로 거래되는 ‘노동’으로, 돈을 지불한 남성과 돈의 일부를 받는 여성이 존재하지만,  클럽 안에서의 거래는 직접적인 돈이 오가지 않는 성적 실천으로 이해된다. 클럽은 자유로운 성적 거래가 가능한 문화적 공간을 개인들에게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여성의 신체자본을 통한 남성들의 소비 추동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임에도,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는 해방공간이라는 상징성은 이를 ‘청춘 문화’로 규정함으로써 성매매와의 차이를 구축한다.  

3.

여성 게스트들이 노출과 신체자본의 검증을 통해 클럽에 입성한다면, 남성들은 대부분 소비를 통해 강남 클럽에 입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MD들 또한 인센티브 확보를 위해 성별화된 영업 전략을 구사한다[2].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여성 게스트 망을 구축하여 인센티브를 제공받는 방식이다. MD들은 클럽에 입성한 여성 고객들을 중심으로 연락망을 확보하고, 여성들이 그를 통해 클럽에 방문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 여성들 또한 MD를 통해 대기없이 클럽에 입장하고 값비싼 술을 무료로 제공받기에 클럽의 영업구조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로 여겨진다.

[2] 게스트 확보, 테이블 판매, 대관 등의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총괄하는 Merchandiser를 의미한다. MD들은 기본급이 없거나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인센티브를 통해 수입을 보장받는다.

또 다른 영업 전략은 테이블 입찰 시스템이다. 테이블은 입찰 과정을 거쳐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개인에게 배정되고, 이 개인을 입찰에 참여시킨 MD에게는 높은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강남의 A클럽은 70개 정도의 테이블을 보유하고 있으나 3-4팀을 제외하고 테이블 예약한 사람들은 모두 남성이다. MD들은 그를 통해 테이블을 잡은 남성들에게 검증된 여성들을 ‘제공’한다. 이는 강남 클럽이 테이블을 예약한 남성들에게 보장하는 서비스이다. MD들은 무료로 값비싼 술을 주겠다는 명분으로 여성들을 테이블로 유인한다. 클럽의 자본논리에서 남성들의 젠더 수행은 소비와 등치된다. 지출하는 비용이 커질수록 여성들에 대한 플러팅(flirting)의 강도가 높아지며, 여성들을 ‘픽업’할 수 있는 권력 또한 커진다. 그들의 권력은 소비, 즉 값비싼 테이블을 잡고, 값비싼 술을 주문하는 것에서 확보된다[3].

[3] 샴걸(Champagne Girl)은 소비를 통해 구성되는 남성들의 권력을 확인시키고, 더 많은 소비로 남성들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한 병에 50만원을 호가하는 돔페리농과 같은 값비싼 주류가 주문되면 샴걸들은 술과 주류명이 새겨진 전광판 패널을 들고 이를 운반한다. 샴걸들에게 모든 시선이 주목되도록 시끄러웠던 음악소리는 잠시 낮아진다. 샴걸로 향했던 모든 시선의 종착지는 그 여성들과 술을 주문한 남성 테이블이다.

4.

검증과정을 통과한 여성들은 강남의 ‘격’을 드높이는 하나의 상징으로 등장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을 ‘공급’받는 남성들은 이러한 격을 누리는 실질적인 주체이다. 강남이라는 상징은 결국 검증된 남성들의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여성들의 존재에서 구축된다. 강남 클럽 또한 여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다. 애초에 그들이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 즉 유흥문화가 구성되는 방식 자체가 여성의 신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여성의 신체를 검증하고,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를 활용함으로써 ‘돈을 쓰는 남성’과 ‘돈을 쓰게끔 만들어야 하는 여성’이라는 구조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돈이 되는 여성’을 조달받으려는 노력은 여성 게스트 무료입장과 입장 프리패스를 넘어 차량지원까지 이어진다.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만연한 현실에서 이러한 전략은 여성들을 위한 극진한 ‘대접’으로 왜곡된다.

5.

클럽은 다양한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쾌락적인 성을 추구하는 청춘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그 결과 돈을 매개로 돈과 서비스를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성매매가 아닌, 여성과 남성 모두의 자유로운 성적 실천과 거래를 위한 장으로 의미화된다.

강남 클럽은 자유로운 성적 실천을 내세우며 자유와 쾌락, 해방이라는 감각을 제공하지만 여성들의 자유는 남성의 시선으로 ‘검증’받은 한에서만 획득된다. 남성들에게 자유는 돈과 등치되어 확보되는 ‘선택 권력’이며, 여성들의 자유는 남성의 시선에서 평가되는 신체 자본의 검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유흥의 의미 자체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성애 섹슈얼리티가 전제하는 젠더 수행에 따라 구축되고, ‘조달되는 여성’과 이를 ‘선택하는 남성’이라는 두 축이 고정된 이상 클럽 문화를 개인들의 자유로운 성적 실천이자 거래로 함축하기는 어렵다.

모든 욕망이 허용된 화려한 파티의 공간에서 클러버들은 ‘내일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즐기며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공유한다. 그러나 무규범 상태로 이해되는 클럽 내 ‘자유’는 역설적으로 철저한 젠더수행을 통해서만 획득된다. 이렇게 명백한 성별규범은 유흥문화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자유’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가려지는 젠더수행과 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모든 욕망이 허용된 공간에서 발생한 피해는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진다. 이러한 문화가 청춘들의 자유로운 권리로만 이해된다면 그 누구도 유흥 문화에 담긴 불평등과 젠더폭력을 포착할 수 없다. 신체자본을 통해 여성들을 위계화하고 남성들에게 소비권력을 제공하는 유흥문화의 영업 전략은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자유와 권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사이 다시 성업 중인 제2의 버닝썬에서 수많은 승리와 정준영은 여전히 그 ‘자유’를 누리고 있다.


참고 문헌

  • 김미영 (2016). “호텔과 ‘강남의 탄생’”. 『서울학연구』 , (62), 1-26.
  • 정수열 (2018). “강남의 경계 긋기”. 『대한지리학회지』 , 53(2), 173-191.
  • 조은, 조주현, 김은실 [공]저 (2002). 『성 해방과 성 정치』, 서울 : 서울대학교출판부.
  • 최정한 (2011). “욕망의 플랫폼 홍대앞 클럽”. 『로컬리티 인문학』 , (5), 265-290.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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