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2) : 환불은 안 됩니다

✂️한태경

1. 유아론적 판타지

리얼돌의 신체는 남성의 성적 유아론을 위한 판타지를 위해 구현되었지만, 리얼돌의 신체가 자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남성의 판타지를 좌절시킨다. 구매자를 위한 몸이지만 자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 신체는 구매자를 배신한다. 이번 글에서는 섹스해주지 않는 몸으로서 리얼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윤지영(2019)은 리얼돌을 남성만을 성적인 주체로 인정하는 성적인 유아론(唯我論, solipsism)[1]의 측면에서 비판했다. SNS에서의 #리얼돌out 운동(기사 보기)과 리얼돌 규탄 집회(기사 보기)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리얼돌에 대한 주된 비판 담론은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위한 신체로 국한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얼돌 비판 담론의 견지에서 리얼돌은 개인의 사생활로 치환될 수 없는, 젠더 위계와 이어져 구성된 남성의 성적 유아론을 위한 상품이다. 이는 ‘강간 인형’으로서 리얼돌을 호명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기사 보기).

[1] “성적인 유아론이란 타자의 존재나 욕망, 관점 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타자를 자신의 욕망의 현상이나 관념으로 축소하여 오로지 자신의 욕망만을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을 뜻한다.” (Rae Langton, Sexual Solipsism: Philosophical Essays on Pornography and Objectific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9, p. 228~229; 윤김지영(2019)에서 재인용) 

“그러니까 리얼돌의 표면적인 목표는 그게 맞아요, 성욕 해소. 표면적인. 근데, 실질적인 케어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감성적인 물건이라는 거죠. 그런데 사실은 남성분들이 성욕을 느끼고 그걸 해소하고 할 때에 생각보다 되게 감성적인 부분에서 그걸 느끼시는 게 더 많다는 건 아셔야 해요.”

리얼돌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서 리얼돌을 남성의 돌봄을 위한 상품으로 바라보는 담론 또한 존재한다. a는 이 지점에서 리얼돌의 효용을 성욕 해소에 대한 기대가 깨진 이후 등장하는 감성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 리얼돌은 이 맥락에서 성욕 해소 이상으로 남성의 우울증을 치료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기사 보기).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다음과 같은 아이러니를 내포한다.

“근데 그건 있을 것 같아요. 남자 입장에서 남자 인형을 놓고 싶진 않겠죠. 기왕이면.”

TPE와 실리콘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남성의 판타지에 따라서 조형되었을 때에만 남성의 우울을 돌볼 수 있는 놀라운 특성을 갖고 있는가. 윤지영(2019)이 파악하듯 리얼돌이 남성을 돌본다는 담론은 어째서 리얼돌의 신체가 얼굴, 가슴 크기, 성기 모양 등을 세분화하여 남성의 욕망에 맞게 주조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다분히 고의적으로) 누락한다. 이 지점에서 비판받는 건 남성이 리얼돌과 섹스를 가능하다고 여기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리얼돌의 신체가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국한시키는 욕망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남성에게는 수용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남성은 리얼돌과의 섹스 혹은 관계가 여성과의 그것과 같거나 혹은 좋을 것이라는 판타지를 갖는다. 문제는 이 판타지가 필연적으로 리얼돌과 마주침을 통해 깨진다는 것이다.

2. 리얼돌의 배신

“엄청, 크고 비싼, 성인용품계의 끝판왕. 다 그렇게 말해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와요.”

a가 관찰했을 때 리얼돌에 대한 구매자 다수의 인식은 “성인용품계의 끝판왕”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열이면 열” 모두가 리얼돌에게 가장 만족도 높은 성인용품으로서의 기대를 품고 방문한다는 것이다. 리얼돌을 구매하여 소유하기 전까지 기대감은 지배적인 감정이며 이때의 기대감은 앞서 언급한 판타지, 여성의 신체와 닮은 ‘리얼돌’의 신체와 섹스를 함으로써 여성과의 관계와 같은 관계를 얻을 수 있다는 판타지를 내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은 리얼돌을 전달받은 순간부터 좌절되기 시작한다.

“(카페에)그런 식으로 쓰는 분들이 있어요. 실제 사람하고 촉감, 오히려 사람보다 좋다 이렇게 쓰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솔직히 그분들, 다 업자라고 봐요. 실구매자라면, 저는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라고 봐요.”

a는 리얼돌에게서 성적인 만족감을 얻는 것이 어려움을 누차 강조했다. 성적인 쾌락이나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섹스 토이가 “훨씬  간편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리얼돌과의 섹스는 남성이 기대한 것과는 다르다. a의 말을 빌리자면, 리얼돌과의 성관계 과정은 앞뒤로 “거창하다”. 40kg이 넘는 물건을 들고 자세를 바꿔가며 옷을 제거하고, 뻑뻑한 관절을 움직여가며 섹스를 하고, 그러고 나서 이를 들고 화장실로 가서 씻기고 물기를 닦고, 자세를 잡고 옷을 입힌다. 이 경험은 한 손으로 섹스 토이를 사용하는 경험과는 다르다.

리얼돌은 구매자를 위해 섹스를 해주지 않는다. 리얼돌은 섹스가 가능한 몸으로 남아있지만, 이 몸은 자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리얼돌과의 섹스가 여성과의 섹스만큼 좋을 것이라는 남성의 기대는 여기서 깨지기 시작한다. 이 실망감은 오히려 남성이 상상하는 섹스의 필요조건이 ‘여성의 신체’에만 국한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여성의 신체만 있으면 남성의 섹슈얼리티는 어떻게든 만족될 것이라는 상상력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여성 혐오적 욕망과 일치한다.

리얼돌과의 섹스뿐만 아니라 리얼돌의 신체 자체도 남성의 실망을 만들어낸다. 리얼돌의 손과 발에 관절 대신 들어가는 철사는 사용자에 따라 삐져나오기도 하며, TPE와 실리콘 등 리얼돌의 신체를 이루는 피부에서는 기름이 묻어나오거나 냄새가 난다. 또한 눈을 깜빡이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당연하게도)인공적으로 보이는 리얼돌의 신체는 구매자로 하여금 섬뜩함을 자아낸다. 사용자에 따라 리얼돌의 피부는 옷의 염료가 이염되거나 혹은 쉽게 찢어지고 훼손된다. 또한 리얼돌에게 옷을 쉽게 갈아입히는 팁이 공유될 정도로 리얼돌을 꾸미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고 보인다. 구매자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남성에게 문제는 이 신체가 “엄청, 크고 비”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거래되는 리얼돌 바디의 시장 가격은 TPE 기준으로 약 200만 원에서 300만 원이며 TPE보다 고급진 실리콘의 경우 약 600만 원을 웃돈다. 여기에 리얼돌 헤드가 덧붙여지는데, 조형에 따라, 바디를 살 때 끼워주거나 혹은 더 높은 가격을 받기도 한다. 커뮤니티의 잠재 구매자들이 리얼돌을 구매하기 전에 리얼돌에 대한 수많은 후기 글을 참조하고 질문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리얼돌이 마냥 좋다는 글은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a의 말대로 그런 글은 “업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 현자타임

“실제로 그런 분이 있어요. 저한테 “아, 이거 집에다 못 놔두겠다. (…) 막 냄새나고” 그러면서 계속 핑계를 대요. 근데 저는 대충 알잖아요. ‘아, 이 사람 현타왔구나, 한 번 해보고.’ 바로 다음 날이었으니까 알죠. “아 환불은 안 된다.” 그런데 환불을 자꾸 요구하는 거예요.”

실망한 구매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a는 곤란함을 표했다. 성인용품은 일반적으로 환불이 가능한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매자가 보기에 구매자의 요구는 이제 패턴화까지 되어있다. 현자타임(“현타”)[2]은 이 패턴을 요약하는 단어로 리얼돌 구매자들이 환불을 결심하게 되는 실망의 시간이다.

[2] 성관계 후 느끼는 허무감에 대한 표현으로, 최초의 흥분감이 가신 뒤의 초연한 상태를 ‘현자’라는 감각으로, 그 순간을 ‘타임’이라는 시간성으로 묘사하는 단어다.

“이분은 그날 사가시고 해본 거에요. 해보고 너무 만족스럽지가 못한거죠. 그리고 막 싫어지는 거예요. 그게 현자타임. 그래서 폐기해달라고 다음 날 보내주시는 분도 있어요.”

실망의 감각은 큰 모양이다. 환불이 안 된다면 구매자는 판매자에게 폐기라도 요구한다. 몇십kg이 나가는 리얼돌 자체를 폐기하는 일은 구매자가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a는 그런 경우에 직접 폐기를 진행해주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구매자는 리얼돌이 “싫어”진다. 환불이 불가능하면 몇백만 원을 웃도는 리얼돌의 폐기를 요청할 정도로 말이다. 리얼돌에 대한 판타지와 지불한 금액이 컸던 만큼 리얼돌에 대한 실망감은 비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형방의 후기에서 등장하는 스스로에 대한 남성의 자조(“나 자신이 한심”) (기사 보기)와 같이 말이다.

구매자가 실망하는 상황을 “대충”은 알 정도로 익숙한 a는 내게 리얼돌을 성인용품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점을 꾸준히 언급하였다. 실망을 느끼는 사람은 “이거를 성인용품으로만 생각한” 사람들이며 리얼돌은 이와는 다른 차원의 효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식하고 A 업체를 찾아오는 구매자는 많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저는 오히려 반려 인형이 맞다고 봐요. 성인용품으로서 기능을 가진. 저는 말씀드렸듯이 이름을 이 인형을 사간 사람들은 이름을 다 붙여요. 안 붙일 수가 없어요.”

리얼돌과의 성관계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에서 나타나는 실망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와 같은 인식으로 바뀌어가는 듯하다. a가 인식하는 이 반려인형으로서의 리얼돌의 효용은 리얼돌의 핵심이자, 성기능과 리얼돌을 등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자타임’이 리얼돌과 여성의 동일성에 대한 판타지가 무너진 시간이라면, ‘반려인형’은 ‘현자타임’ 이후에 등장하는 다른 시간이다.

그러나 리얼돌은 여전히 남성에게 여성의 신체라는 물질성이 갖는 중요성을 드러낸다. 리얼돌에 대한 남성의 욕망은 여성을 물건으로써 원하는 욕망과 동일 선상에 놓여있으며 이 욕망이 드러내는 폭력성은 중요하다. 성관계를 하기에 불편하거나 할 수 없어도, 여성을 손에 쥐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속성이 남성에게 여성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에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4. 낡은 기획

리얼돌의 신체는 남성의 판타지에 완벽하게 일치되어 행위하지 않는다. 리얼돌의 배신과 남성의 실망의 시간인 ‘현자타임’ 이후에 남성은 리얼돌과 감성을 맺어나가는(그렇다고 믿어지는) ‘반려인형’의 관계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리얼돌에 대한 남성의 욕망이 여성을 수동적이고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위한 물건으로만 한계짓는다는 점에서 현자타임과 반려인형의 관계는 동일 선상에 놓여있다.

남성은 끊임없이 여성의 신체를 분할하고 해체하고 조립하며 남성을 위한 여성의 신체를 만들어내왔다. 이 신체와 함께 관계를 맺겠다는 실천은 피그말리온의 조각상부터 지금의 리얼돌까지 이어진 낡고 곰삭은 기획이다. 이 결과물로서 남성은 리얼돌을 통해 여성의 신체와의 대체를 꿈꾸지만, 리얼돌은 남성이 대체하고자 했던 여성 신체와 차이를 가짐으로써 남성을 실망시킨다. 이렇듯 여성의 신체를 욕망하는 남성이 만들어내는 안타까운 시도와 슬픈 각축전은 현재진행형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 윤지영.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  여성신체 유사 인공물에 기반한 포스트 휴먼적 욕망 생태학 비판, 포스트휴먼 시대의 생태 몸과 매체, 건국대·이화여대 공동학술대회. 2019, 5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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