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경

1. 들어가며
우리는 고전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할까? 몇천년 전에 쓰여진 글은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오늘날과 관계 맺는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고전에서 같은 것을 읽어내지는 않는다. 고전을 읽는 사람은 자신이 기존에 가졌던 경험과 지식 속으로 고전을 편입시킨다. 고전의 독자는 자신이 가진 앎과 지식, 기술과 사물, 사회와 환경에 따라서 자신만의 상황적이고(situational) 위치지어진(positioned) 삶을 살기 때문에, 그들이 읽는 고전도 결국 부분적이다.
그러므로 같은 고전을 읽더라도 독자 각자의 독해의 차이는 서로를 당혹시킨다. 차이는 서로의 상황적이고 위치지어진 삶이 얼마나 다른지, 나아가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이 책을 처음에 읽기 시작했을 때 든 당혹감도 그 때문이었다. 옮긴이의 서문에도 등장하듯이 “억압에 맞서 싸우겠다”는 수사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백인 남성의 입에서 나온다면, 대체 어떤 상황과 위치가 그들을 그런 식의 생각으로 몰았는지 황당함마저 든다. 문제는 이런 식의 내러티브가 황당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성, 인종, 퀴어 등 타자의 목소리가 가시화되는 데에 대한 증오를 감추지 않고 이들을 입막으려하거나 살해까지하는 남성들은 어디에나 있다. 이들이 자신의 뒤틀린 신념을 고전을 통해 정당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도나 저커버그는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의 동생으로 소셜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레딧의 하위 집단인 서브레딧의 레드필(Redpill)에서 일어나는 내러티브를 분석한다. 저커버그는 레드필 커뮤니티가 스토아 철학과 관계 맺는 내러티브를 분석하여 고전의 미래에 대해서 전망한다(326). 이 책이 흥미롭게 읽히는 이유는 이민경 옮긴이가 지적한 것처럼, 저커버그의 연구를 한국과 이어서 독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성들은 여성을 착취하고 비하하면서도 스스로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 사람들의 상황과 위치, 그리고 내러티브를 저커버그는 끈기있게 서술한다.
2. 레드필의 남성들과 스토이즘
레드필은 해외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Reddit)이 가진 수 많은 서브레딧, 하위 카테고리 중 하나이다. 서브레딧에는 특정한 주제가 할당된다. 레드필이라는 서브레딧의 이름은 짐작하듯이 영화 매트릭스(Matrix, 1999)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 역)는 모피어스(로런스 피시번 역)라는 의문의 인물이 건네는 붉은 색 약을 먹고 자신이 살던 세상은 기계가 인간을 착취하며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이며, 진짜 세계는 인간이 기계에 의해 착취당하는 세계였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네오가 빨간 약을 먹고 진짜 세계를 깨달았다면 레드필의 남성은 어떤 진짜 세계를 깨달은걸까? 그것은 이 세계를 사는 남성의 현실, 남성이 얼마나 불공정한 삶을 사는지에 대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 서브레딧 속 남성들은 각박한 현실을 살아간다. 이들에게 백인 남성은 다른 어떤 인종보다 우월하고 어떤 젠더보다 뛰어나지만, 사회정의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현실은 백인 남성을 배제하고 괴롭게 만든다. 이들은 그러므로 스토이즘의 고전을 편안하게 느낀다. 이들에게 스토이즘의 고전은 백인 남성이 차별받는 동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뛰어난 고전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레드필의 남성은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제를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고 여성혐오와 인종주의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고전조차 페미니스트 같은 사회정의의 전사(SJW, Social Justice Warrior)들은 쓰레기 취급을 한다.
저커버그가 집중한 지점은 이러한 레드필과 스토이즘의 관계이다. 저커버그는 “레드필 남성들이 고대의 문학과 역사를 이용해 어떻게 가부장제와 백인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진하는지 탐구한다(18)”. 저서에서 이러한 증진은 2000년 전의 오비디우스와 현대의 픽업 아티스트 사이에서, 나타난다. 오비디우스의 저서를 두고 “<사랑의 기술>은 빨간 약이다(169).”라고 말을 하는 것처럼, 픽업 커뮤니티에게 있어서 오비디우스는 ‘사랑의 선생’이며 오비디우스의 고전은 ‘사랑의 기술’이다. 저자에게 이러한 증진이 끔찍한 이유는 레드필이 여성혐오와 성폭력에 대한 유해한 근거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레드필은 스토아철학을 통해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여성을 침범하는 픽업아티스트의 계획을 옹호한다. 페드라의 신화와 히폴리투스의 죽음을 다루는 스토아 철학의 고전을 통해 레드필은 여성의 거짓고발이 만연하였으며 남성이 여성의 거짓말로 인해 파멸한다는 신념을 갖는다. “테세우스, 페드라, 히폴리투스가 사는 사회는 레드필 남성들에게 그저 신화로만 여겨지지 않는다(306)” 나아가 레드필의 남성들은 스토이즘의 시대에는 존재하였으나 현대에는 부재하는 남성의 권력을 회복하여 여성을 통제하고, 이러한 통제가 결국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역설한다(312). 레드필의 남성들은 감정적인 냉정함과 이성적인 우월성에 대한 신념의 타당성을 스토아철학을 통해 인증받았기 때문이다(308).
이렇듯 레드필 커뮤니티의 남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에서 편안함을 찾는다. 저커버그가 책에서 발견한, 이들이 스토아 철학과 관계맺는 지점은 다양하다. 이들은 스토이즘의 고전을 통해 남성됨을 이야기하고, 여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공유하며, 고전만큼이나 오래된 여성에 대한 타자화와 대상화를 먼지 하나 털어내지 않고 그대로 소화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스토아철학을 이해하는 방식이 고전에 대한 완전하고 전적인 이해에 있지도 않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레드필남성들은 어디까지나 스토이즘의 고전을 선택적으로 취하며, “스토아 철학의 내용들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변형한다(121).”
3. 고전을 읽는 법
그러나 저커버그는 레드필과 스토이즘 한 쪽을 옹호하지 않는다. 저자에게 스토이즘이 레드필의 끔찍한 생각만큼이나 잘못되지는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지적하듯이 스토아 철학 자체에도 불평등한 신념과 인종주의, 여성혐오가 있다. 스토아 철학은 나름대로의 시대적인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저자가 주목하는 문제는 스토아 철학이라는 고전이 여성혐오적인 의견을 갖고있다는 것도, 안티페미니스트가 스토아 철학을 이해없이 남용한다는 사실도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불평등한 스토이즘의 고전과 이러한 고전을 취사선택하는 안티페미니스트 남성이라는 둘 사이의 관계와 내러티브에 주목한다. 저자는 어째서 스토아 철학이 “발리자데, 퀸투스 쿠르티우스, 홀리데이와 같은 (레드필의) 남성들을 끌어당기는지(157)” 질문한다. 한편으로 저자가 가진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이러한 고전이 레드필과는 다른 방식으로,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 모두에게 구조적 불평등을 볼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해 묻는다. 고전은 누구에게나 읽힐 수 있고, 그렇다면 고전을 어떻게 우리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도록 독해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도나 저커버그는 고전과의 관계에서 미래를 상상하며 이 책을 썼다. 이는 매우 성실한 작업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의 지적인 성실함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시간에서 나오는 지난함과 지루함, 그리고 그것에서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저커버그의 책에서 등장하는 남성들의 수사를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저열하고 유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들은 한 손에는 스토이즘 고전을 손에 들고서 다른 손으로는 여성에 대한 통제를 부르짖으면서도, 키보드 바깥에서는 여성과 섹스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동시에 그런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서 고뇌하고 서로 싸운다. 이러한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들의 내러티브를 이해해야하는 과정은 필수적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저커버그의 책은 성실하게 이 과정을 수행해나간다.
4. 한국과의 독해
저커버그의 말처럼 “이들(레드필)은 ‘문화적 내러티브와 싸우기’를 택한다(29).” 여성은 사회구조적으로 약자라는 주장, 여성은 성을 무기로 삼기보다는 성으로 위협받는다는 주장, 여성은 남성과 감성과 이성에서 차이를 갖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문화적 내러티브와 말이다. 한국의 온라인에서 스토이즘은 레드필에서 만큼이나 위상을 떨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문화적 내러티브와 싸우고자 하는 남성들의 태도는 어딘지 닮아있다.
이민경 옮긴이는 그러므로 저커버그의 진단을 한국과 연결지어 읽는 독해법을 제시한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의 불씨를 당긴 메갈리아 사태가 온라인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전략이 온라인 상의 남성들의 언어를 받아치는 미러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남성에게 맞추어 주조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디씨인사이드, 루리웹, 에펨코리아 등 인터넷 포럼에 등장하는 내러티브의 발화자는 남성이며, 그들의 공유된 인식과 피해자성만이 드러날 뿐이다. 레드필의 독자들이 이러한 인식와 피해자성을 스토이즘의 권위와 고전에서 찾았다면, 한국에서는 또 다른 나름의 관계가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은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남자들의 수사가 어떻게 정당화되어왔는지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 문헌
- 도나 저커버그, 이민경 옮김 (2021).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서울: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