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최애의 몸은 전장

이리예

1. 퀴어의 몸 만들어내기: 라이레이의 경우

2020년 7월, 모바일 롤플레잉 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에 신규 캐릭터 라플라스가 추가되었을 때, 일각의 플레이어들은 환호했고 다른 한편의 플레이어들은 학을 뗐다. 캐릭터의 음성 대사 때문이었다. “저는 제 인생 전반에 걸친 경험을 통해, 남성 쪽에 가까운 정체성을 형성했지요. 사실, 아직도 완전히 어떻다고는 말하기가 어렵군요. 오랜 시간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이 ‘젠더퀴어’ 캐릭터의 등장과 함께 《로드 오브 히어로즈》 향유자들 사이에는 퀴어 캐릭터가 더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여러 가지 퀴어 읽기가 진행된 가운데 가장 독특한 독해는 ‘빛 속성 라이레이’라는 캐릭터를 트랜스젠더로 읽고자 한 시도였다. 빛 속성 라이레이는 분홍색 머리카락과 분홍색 옷, 그리고 하늘색 눈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트랜스젠더 프라이드 플래그의 배색과 같다는 연관성을 들어 한 트랜스젠더 유저가 ‘빛 속성 라이레이는 트랜스젠더’라는 읽기를 제시한 것이다.

빛속성 라이레이 소개 이미지 (출처 : 로드오브히어로즈 공식 블로그) / 트랜스 프라이드 플래그

배색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착안한 독해는 라이레이라는 캐릭터의 몸과 삶을 트랜스젠더의 맥락으로 해석하려는 기획, 이른바 ‘트젠캐해[트랜스젠더 캐릭터 해석]’ 시도로 이어졌다. 이 기획은 퀴어(친화) 게이머의 호응만큼이나 안티-퀴어 게이머의 거센 반발을 받게 된다. 여자 오타쿠들이 주로 활동하는 <투디갤>에서는 “애캐[애정하는 캐릭터]에 트젠묻은거 ×같네 진짜”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되었고, 해당 글에는 “공식 성별이 여자인데 비비지 마 ×××”, “라플라스 라이레이 최앤데 트젠××들 ××버리고 싶음 쌍으로 ×××이야”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편 남자 오타쿠들이 주로 활동하는 에서는 “게임에 페미는 독”인 사례로서 해당 건을 소개했다. 이들은 ‘트랜스젠더의 몸만들기’ 기획을, 캐릭터에게 트랜스젠더라는 설정을 ‘묻히는’ 것, ‘비비는’ 것, ‘망상’하는 것으로 파악하며, 나아가 이 기획을 ‘페미니즘적 의도’와 연결 짓는다. 이들에게 트랜스젠더의 몸이란 한편으론 구역질 나고 괴상망측한 괴물의 몸이며, 다른 한편으론 퀴어/페미니스트들의 불순한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기획된 몸이다.

한편, 또 다른 퀴어 읽기가 다른 한 켠에서 시도된 바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프라우’ 캐릭터의 배색이 에이섹슈얼 프라이드 플래그와 같기 때문에 에이섹슈얼 정체성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라이레이의 경우와 달리 이 트윗에 대해서는 어떠한 반발도 생기지 않았다. 사실 해당 트위터 유저 외의 그 누구도 프라우의 에이섹슈얼-신체 기획을 보강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 상반된 현상은 어째서 ‘트랜스젠더 몸만들기’라는 기획에서만 격렬한 공방전이 발생하는지를 드러낸다. ‘에이섹슈얼 몸만들기’가 섹슈얼리티만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과 달리, ‘트랜스젠더 몸만들기’는 젠더의 불확정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섹슈얼리티가 물질적 몸과 완전히 다른 범주처럼 구획되어 이야기되는 것과 달리 젠더는 항상 몸과 결부되어 이야기된다. 다시 말해, 트랜스젠더 몸 기획은 ‘여성’ 범주의 구획과 확정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문제적인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레이의 몸을 시스-여성의 것으로 고정하고, 라이레이의 몸에 ‘묻은’ 퀴어성을 닦아내고,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부터 캐릭터를 수호하려는 페미니스트-오타쿠들의 반발이 발생한다.

한편, 라이레이의 신체에는 다른 혐의가 있는데, 가슴이 커다랗고,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라이레이는 “캐릭터 디자인에서 선정성을 배제하겠다”는 《로드 오브 히어로즈》 제작진의 출사표를 위배하며, 따라서 《로드 오브 히어로즈》가 여성 캐릭터를 성적 대상화하는 여성혐오 게임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이러한 ‘성적 대상화 되는 여성의 몸으로서 라이레이’ 기획에 대한 반박 중에 흥미로운 것은 라이레이의 몸을 현실적인 여성의 몸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획이다. 여기서는 실제 유저들의 증언이 동원된다. 라이레이가 재현하는 여성의 몸과 동작은 가슴이 큰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증언이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라이레이의 몸은 ‘대상화’되지 않았으며,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라이레이에게 ‘현존하는 여성의 몸’을 쥐여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라이레이의 몸에 대한 지적은 실재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지적과 등치 된다. 여성을 선정적인 몸으로 환원하는 것이야말로 반-페미니즘적이며 ‘여성혐오’적 태도이기에, 라이레이라는 캐릭터가 현실적인 몸매와 더불어 ‘노련하고 침착한 참모’라는 성질을 지닌 것은 이들에게 있어 오히려 ‘충분히 페미니즘적’인 일이 된다.

여성의 몸을 혐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성의 몸은 존재 자체가 섹스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정적으로 보이는 여성의 몸’을 가진 라이레이가 훌륭한 참모로 설명되고 부각되는 것은 충분히 페미니즘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정적인 몸’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 몸인지 선정적, 이라는 붙임말인지 고민해보시길 권장합니다. 말씀하신대로 라이레이의 캐릭터 디자인 자체가 문제라고 보신다면, 난 그러려고 한 게 아닌데 ‘저 여자가 너무 선정적으로 입고 다니니까’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하는 성범죄자의 말도 합리화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익명의 관련 트윗 재구성 (접속일 2021.12.11.)

라이레이는 어떤 몸을 가지고 있는가? 라이레이의 몸은 트랜스젠더일 수 있는가? 라이레이의 큰 가슴은 선정적이고 여성 혐오적인가, 아니면 현실적이고 페미니즘적인가? 몸에 대한 대부분의 담론과 마찬가지로, 이 가상의 몸도 이항대립 속에서 그 의미가 구성된다. 특정한 몸이 트랜스젠더의 몸이라고 주장된다면 가슴과 잘록한 허리 등이 ‘여성적 신체’의 재현을 보인다는 비판이 제시된다. 또, ‘여성적 신체’가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타자의 몸을 재현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여성적 신체’는 실존하는 여성 주체의 몸을 반영한 것이라는 반론이 제시된다. 페미니스트-오타쿠의 가치관에 따라 이 몸은 트랜스-젠더의 것이 되거나 시스-젠더의 것이 되고, 여성-대상의 재현으로 의미화되거나 여성-주체의 반영으로 의미화된다. 가상의 몸을 둘러싼 페미니스트-오타쿠 공방전의 핵심은 어떤 몸을 (좋은) 여성으로 인정하며, 어떤 몸에 페미니즘적 의의와 성원권을 부여할 것인지이다.

몸의 ‘올바른’ 정체를 둘러싸고 펼쳐진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고지는 ‘공식 성별’이다. 라플라스보다도 라이레이가 더 격렬한 반발을 겪은 까닭은 라이레이 ‘트젠캐해’ 기획은 팬들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 즉 ‘비공식’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트위터 유저는 라이레이의 성별이 무엇인지 제작사 <클로버게임즈>에 확답을 요구하는 문의를 남기기에 이른다. 제작사는 “OO님께서 우려하시는 부분과 전혀 관계되어있는 부분은 없으며 일반적인 컬러 배색 사용과 게임 설정의 종족이 용의 부족임을 안내드립니다.”라고 답변한다. 제작진 누구도 이 몸을 트랜스젠더의 몸으로 천명하지 않았으므로 이 기획은 오독이자 해프닝으로 무효가 된다. 그리고 제작사 클로버게임즈는 “고객센터 등으로 SNS에서 증폭된 게임과 관련 없는 문의나 특정 사상과 관련된 문의가 다량 유입되면서 정작 도움이 시급한 고객 문의 처리 업무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들어 공식 홈페이지 포럼을 잠정 폐쇄한다. 가능성은 여러 문과 함께 닫히고, ‘비공식 설정을 두고 공식을 귀찮게 하지 말자’는 반성과 함께 라이레이 트랜스젠더의 몸으로 만들기 기획은 종결된다.

2. 디폴트의 몸 만들어내기: 세일러문의 경우

이로부터 두 달을 거슬러 올라간 2020년 5월, 트위터를 중심으로 ‘#sailormoonredraw 챌린지’가 유행을 탔다. 이는 애니메이션 영화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S》(1994)의 한 장면을 자신의 화풍으로 재창작하는 놀이였는데, 그중 한 트위터 유저(이하 A)는 “전사에게 필요 없을 것 같은 건 빼고 그려봤”다는 코멘트와 함께, 귀걸이와 초커를 하지 않고 짧은 머리를 한 세일러문을 그려 게시했다. 이 트윗은 이내 격렬한 반발과 비아냥을 받았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같은 날 비슷한 방식으로 세일러문을 짧은 머리에 귀걸이와 초커 없이 재창작한 다른 트위터 유저(이하 B)의 그림은 별다른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A의 트윗 갈무리 / B의 트윗 갈무리

무엇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는가? 차이점이라면 B는 “요즘 한국 하이틴 여학생 스타일로 해드림”이라는 코멘트를 달았다는 것이다. 즉, 공분을 일으킨 발화점은 ‘장신구와 긴 머리, 노출이 있는 의상은 전사 세일러문에게 필요 없다’는 A의 메시지, 일련의 특징을 ‘거추장스러운 여성스러움’으로 판단한 것, 그리고 그 ‘여성스러움’을 ‘전사다움’과 대치시킨 아이디어였다. 일례로, A의 재창작에 사람들이 격렬히 반발한 이유는 “사람들이 인간 체형의 한 가지[남성 신체]를 ‘디폴트값’으로 정하는 것에 화가 났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친 트윗이 1천 회 이상의 리트윗을 받으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때 ‘디폴트값’이란 컴퓨터 용어에서 차용한 것으로, 남성을 상징하는 도식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디폴트값처럼 원형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여성 도식은 ‘여성적’으로 여겨지는 기호(화장, 리본, 치마, 마른 몸 등)가 덧붙는 식으로 재현되는 관행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고안된 용어이다. 이 용어를 사용하는 페미니스트-오타쿠는 여성 본연의 모습은 ‘무말장키(무해함, 말랑함, 장발, 키 작음의 약어)’나 꾸밈(화장, 펌 머리, 여성스러운 복장 등) 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여성의 디폴트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또는,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을 성애화된 이미지로부터 탈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리고 이런 의식은 ‘캐릭터의 몸 탈코시키기’와 같은 실천으로 나타난다.[1] 여성 캐릭터는 남성 도식에 여성성의 코드를 덧붙이는 식으로 재현되어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그림은 여성성의 코드를 소거하는 방식으로 재창작되는 것이다.

[1] 대표적인 예시로는 <자캐탈코합작>(페이지 보기)이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여캐들>(페이지 보기)합작을 들 수 있다.

A의 ‘디폴트의 몸 만들기’ 기획을 비판하고 무효화하는 데에는 라이레이 기획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식 설정’이 활용된다. 예컨대, 《세일러문》 시리즈에 이미 보이시한 여성 전사 캐릭터를 비롯하여 다양한 외형과 성격의 여성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또 세일러문의 긴 머리는 단순히 여성스럽게 꾸며진 외형이 아니라 토끼의 긴 귀를 상징하여 이 캐릭터의 진짜 정체–달의 공주–를 연상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섣불리 삭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세일러문을 짧은 머리로 변형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원작 시리즈의 의의나 가치를 탈각시키는 것과 같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의의와 가치인즉,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세일러문은 긴 머리에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그 성격과 행보는 페미니즘적 의의가 충분하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세일러문》에 나타나는 몸의 모습들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장발에 장신구 단 여성은 전사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 게 더욱 여성혐오적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A의 재창작물에 대한 비판은 이렇게 완성된다. A는 세일러문을 긴 머리나 장신구를 소거한 ‘디폴트의 몸’으로 읽고자 했는데, 이는 원작이 가진 의도, 작의, 의의와 메시지를 무시한 채 특정한 여성상을 지향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 캐릭터를 전유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A는 강한 반발 속에서 원본 트윗을 삭제하고 아이디를 변경하기에 이른다. 세일러문의 긴 머리와 장신구, 복장은 ‘공식 설정’ 그대로 지켜진다. 그렇게 세일러문을 디폴트 몸으로 읽고자 한 시도는 종결된다.

3. 나가며: 몸 읽기의 전장

오혜진(2019)은 “최근 페미니즘과 퀴어 정치를 비롯한 소수자 정치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는 그간 공식 역사에서 삭제되거나 비가시화된 소수자의 존재를 ‘복원’하고, 오늘날 우리가 지닌 영광된 유산이 있다면 소수자 역시 그것의 지분을 인정받고 획득하도록 도모하는 일”이라고 시류를 진단한다(261쪽). 주로 시각적 경관spectacle을 경유하여 소수자를 ‘아카이빙’하려는 이 기획은 아이러니하게도, 양가적이고 혼종적인 이들 존재의 복잡성(재현 불가능성)을 ‘역사의 피해자’, ‘사라지는 매개’로 단순화하고 규범화시켜 공적 역사에 편입시키게 되는 문제가 있다. 오혜진은 “역사적 아카이브를 젠더링·퀴어링한다는 것은 기존 역사가 상정해둔 결정적인 순간에 여성과 성소수자‘도’ ‘여기 있(었)음’을 증명함으로써 시도되는 ‘부록’이나 대안‘의 정치가 아님”을 강조하며, “소수자-퀴어의 특이성singularity을 포착할 수 있는 양식을 새롭게 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280쪽).

이 글에서 다룬 가상의 캐릭터들 역시 불확실하고 양가적이고 혼종적인 존재이다. 그들의 신체는 다시 그리는 자에 따라 다른 경관으로 재현되고 번역된다. 이 글에서 살펴본 페미니스트-오타쿠들은 가상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이념과 정체성을 찾는 것을 넘어 가상 캐릭터의 몸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읽어내고자 했다. 앞서 다룬 두 기획은 모두 페미니스트-오타쿠들이 오타쿠질의 대상이 되는 가상의 캐릭터를 경유해 여성 범주의 저변을 확장시키려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전자는 시스젠더로 상정되는 여성의 몸을 퀴어링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후자는 (남성의 몸에 대하여) 타자로 여겨지는 여성의 몸을 디폴팅defaulting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한 켠에서는 인외 캐릭터들로부터 퀴어한 신체의 흔적과 가능성을, 다른 한 켠에서는 소녀만화의 주연 캐릭터들이 다른 방식으로 표상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전자는 시스젠더로 상정되어온 몸을, 후자는 (남성의 몸에 대하여) 부가적으로 상정되어온 몸이 만들어지고 연출된 것에 불과함을 발각시키고, 그로부터 새로운 몸의 가능성 역시 만들어지고 연출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이러한 (재)창조의 힘은 창작물에 대한 페미니스트-오타쿠들의 적극적인 수용 방식, 즉 캐릭터가 지니는 속성으로부터 전복성을 읽어내는 데서 발생한다. 예컨대 라이레이는 인간이 아닌 ‘용인’이다. 그렇다면 그 몸도 이분법적으로 도식화되는 인간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세일러문은 ‘전사’이다. 그렇다면 장신구와 긴 머리, 섹시한 옷이 아닌 다른 차림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텍스트에서 불확정적으로 남겨진 것들을 반규범적으로 독해하고 재상상하고 재창조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퀴어하고도 급진적인 카운터리딩counter-reading, 새로운 텍스트, 언어와 문법, 비판적 개념 틀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가능성이든 ‘공식 설정’이라는 벽 앞에서는 힘을 잃고 흩어진다. 라이레이를 트랜스젠더로 읽으려던 시도나 세일러문을 ‘디폴트 여성’으로 읽으려던 시도를 무화시키는 데에는 ‘공식 설정을 무시했다’는 점이 근거로 작용했다. 오타쿠에게 있어 공식 설정, 작가의 의도, 작품의 메시지 등은 공신력과 권위를 지니는 단 하나의 진실이다. ‘공식’과 충돌하는 해석은 적폐, 날조 등으로 불리는 거짓이 되며, 이는 공식이 확언하지 않는 영역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공식 설정’ 앞에서 퀴어하고 급진적으로 시도된 다른 독해들은 무효화된다. 그 몸이 ‘진짜’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작가에게 달린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오타쿠의 카운터리딩은 이렇게 ‘작가의 진의’라는 문제를 두고 교착 상태에 놓인다. 오타쿠들은 작품에 사회적·정치적 논제를 끌어들이는 것을 작가의 의도를 벗어난다는 이유에서 차단하고, 텍스트를 순수하고 탈정치적인 놀이공간으로 위치 지으려 한다. 이런 곳에 퀴어/페미니스트 독해를 첨가하고 몸을 새롭게 상상하고 기획하는 일은 순수한 캐릭터를 프로파간다화하고, 놀이공간을 위협하는 도발이 된다. 몸은 ‘불순한’ 오독으로부터 탈환해야 할 무엇이 된다. 다른 온갖 것이 될 수도 있는 몸은 기어코 전장이 된다. 몸을 두고 해야 할 일은 전장이라는 터에 맞추어 번역된다. 결의, 투쟁, 쟁취, 사수, 승리. 몸은 이데올로기의 트로피가 된다. 이 틀을 벗어나야 몸을 새롭게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오타쿠는 가능한 해석과 의미를 작가에게 의탁하지만, 작가는 대개 침묵한다. 작가가 천명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말해선 안 된다는 자세는 새로운 몸, 성, 그리고 그에 관한 규범과 질서를 불허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미 정치적이다. 가능성을 하나로 닫아버리는 순간 퀴어/페미니스트 독해의 급진성은 특정한 범주에의 성원권과 맞바뀌고, 소수자-퀴어의 특이성이 포착될 가능성은 사라지게 된다.

만약 오타쿠가 말해지지 않은 것을 열띠게 추측하고, 토론하며, 엉성한 설정을 깁고 메우며,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들을 발견하는 일을 즐기는 자들이라면, 또 페미니스트가 구성원들에게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와 질서를 고안하려고 하는 자들이라면, 페미니스트-오타쿠란 작품으로부터 정의롭고 다채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오타쿠는 더 다양한 캐릭터와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서로 그 세계를 보완하고 비판하며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캐릭터의 특이성을 포착하고, 더 다양한 몸과 성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존중받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참여해야 한다. 방어-탈환 꼴이 아닌 형태로서, 또 개인에 대한 사이버불링이 되지 않는 선에서 비판을 주고받아야 한다. 여기서 소개한 기획들은 ‘시각적 경관을 경유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판될 수 있을 것이다. 섣불리 가상의 캐릭터를 젠더퀴어로 읽는 것은 실재하는 퀴어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인가? (실제로 라이레이를 둘러싼 논쟁 때 트랜스젠더 당사자들 중에서도 이 기획을 거북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성의 주체성은 과연 짧은 머리와 반바지에서만 나오는가? 단지 전장이 아닌 곳에서 비로소 이러한 토론이 가능할 것이며, 새로운 몸이 쓰이고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오혜진(2019). “구겨버린 입장권: 소수자의 존재론과 역사적 아카이브, 그리고 ‘퀴어링(queering)’”. 『문화과학』, 제 100집, 258-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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