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팬덤화된 한국 여성 영화 관객

윤서연

* 본고는 필자의 석사학위 논문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 영화 관객의 팬덤화 연구”(2021)의 내용 일부와 필자가 연구를 진행하면서 고민하게 된 지점을 다룬다. 

1. 영화의 팬이 된다는 것

때때로 우리들은 어떤 영화가 자신의 모든 걸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순간을 흔히들 ‘입덕’을 했다고 표현한다. 한 영화의 팬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특정 영화의 팬이 된 자들을 단순히 관객이 아닌 시네필리아로, 컬트로, 아니면 팬덤[1]으로 호명할 수 있을까? 이엔 앙은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현상은 복잡하다고 설명하면서,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수용자가 텍스트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이엔 앙, 2018: 29). 하지만 아무리 수용자-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더라도,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 영화의 ‘여성 관객’은 취향이 없는 수동적인 소비자로 취급받았다. 2000년대 초반 와라나고 관객 운동에 이어, 여성 관객들은 2000년대 중반 <후회하지 않아>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10년대 <아수라>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여성 관객은 이전의 멜로드라마를 향유하던 고무신 관객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찾는 과정을 이미 거쳤으며, 팬덤과 유사한 형태를 띠며 주도적으로 집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 작품들은 두 마초적인 남성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유사) 퀴어 영화에 속해 있으며, 여성 관객은 이 영화들을 일본의 미소년 게이 만화인 야오이의 연장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1] 헨리 젠킨스는 팬덤을 사회 부적응자, 분별없는 소비자가 아닌 텍스트의 의미를 사냥하는 밀렵꾼으로 보며, 능동적이며 비판적으로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창의적인 집단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위문화 집단은 팬덤을 통해 관심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으며, 팬의 개인적 공명이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확대되고, 관람 문화가 참여문화로 전환되며 그들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커뮤니티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헨리 젠킨스, 2008: 7, 61-63)

2010년대 중반부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된 페미니즘 운동을 가리키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새롭게 등장한 한국 여성 영화를 다양하게 독해하는 여성 관객이 새롭게 부상하였다. <청년경찰>이나 <V.I.P.>처럼 일부 남성 감독들이 여성 혐오로 가득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동시에 <아가씨>, <미쓰백>, <벌새> 등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룬 중소규모의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가 물밀듯이 등장했다. 위에 열거한 여성 서사 작품에서 감독들은 여성 인물에게 조연이나 단역, 시체 역할이 아닌 영화의 주요 서사를 주도하는 역할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 한국에서 살아가며 직면하는 다양한 사회 및 생존 문제들을 성적 대상화[2] 없이 재현하였다. 이에 여성 관객들은 단순한 소비자를 뛰어넘어 다양한 방법으로 이 작품들에 응답하였다. 그들은 애호하는 영화에 따라 벌새단, 메기 떼, 만월단, 허스토리언 등으로 자신을 호명하며 N차 관람, 영혼 보내기, 대관 상영, 평점 테러 막기 등 주도적으로 영화를 읽고 보며 보호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2] 카메라가 여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을 뜻한다. 로라 멀비에 따르면 객체로서의 여성, 이를 지켜보는 남성이라는 구조의 시각 기제를 통해 주로 남성 관객들이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2. 아이돌 팬덤의 실천 양식을 흡수한 여성 영화 팬덤

그렇다면 왜 여성 관객들이 201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국내 여성 서사 영화를 중심으로 팬덤화 되었을까? 물론 국내 여성 영화 텍스트를 관람하면서 발생하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온라인 페미니즘의 부흥으로 인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기 시작한 여성 관객이 남성 중심 서사 영화를 거부하고, 여성 서사 영화를 받아들이며 여성 서사 영화를 여성의 삶과 연결된 것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성을 비하하는 영화가 곧 현실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문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에,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 개인 그대로의 모습을 성적 대상화 없이 스크린에 옮겨 오는 것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

여성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들에게서는 여성 서사 작품, 미디어 텍스트 자체에 대한 매혹과 여배우 혹은 감독에 대한 매혹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나타난 여성 관객은 여성 영화를 애호하고 있는데, 이들은 TV 시리즈나 영화를 즐겨 보는 ‘미디어 팬덤’의 범주에도 포함되는 동시에, 여배우와 감독을 본보기로써 존경하는 ‘셀레브리티 팬덤’ 범주에도 속해 있다.여성 영화를 응원하는 관객들이 영화를 사랑하면서 보이는 실천 방식이 90년대 이후 등장한 10대 소녀들을 중심으로 모인 한국 ‘아이돌 팬덤’의 실천 방식을 이어받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이돌 팬덤이 아이돌을 매개로 10대 또래의 소녀들 사이에서 소통 공동체를 구성했던 것처럼, 여성 영화를 응원하는 관객들도 여성 영화를 다리 삼아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논의와 여성 연대를 위한 소통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90년대 후반에서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10대 시절을 보내며 아이돌 팬덤 문화를 학습한 세대는 2010년대 20대~30대에 접어들면서 그 문화를 토대로 매끄럽고 수월하게 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아이돌 팬의 활동 방식과 여성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여성 서사를 응원하는 실천 양상은 매우 유사하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음반을 여러 장 구입하기, 무한대 음원 스트리밍, 그리고 팬미팅 때 선물을 조공하거나 플랜카드를 제작해 참여하는 아이돌 팬덤의 행위와 관객 수를 늘리기 위한 영혼 보내기와 N차 관람, 대관 행사 참여 시 영화 대사를 인용한 슬로건 제작하기, 대관 행사 종료 후 남은 금액을 청소년 퀴어 단체에 후원하거나 민족과여성역사관에 기부하는 이들의 행위는 크리스티나 부세가 주장한 무급이자 자발적, 순수한 사랑에 의해 수행되는 팬 노동(Fan Labor)으로 파악할 수 있다(Busse, 2015 : 113-114). 이는 좋은 여성 서사 영화를 창작한 감독과 배우에게 작품을 통해 얻은 감동을 돌려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나의 석사 논문에서는 2010년대 후반 등장하여 여성 서사를 응원하는 관객이 아이돌 팬덤의 실천 방식을 계승했기에 이들을 ‘여성 영화 팬덤’[3]으로 명명한다.

[3] 물론 한국 여성 영화에 정동적으로 반응하는 관객의 성별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하여 추측하는 것은 위험한 시도가 될 수 있다. 이에 관객들의 성별과 무관하게 그들이 안티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여성 의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성별과 성적 취향과는 관계없이 여성 영화에 공명한 관객들을 ‘여성 영화 팬덤’으로 명명했다는 점을 밝힌다. 

새롭게 등장한 국내 여성 영화는 ‘여성 영화 팬덤’의 주도로 그들이 조성하는 참여문화 및 담론과 함께하며 더 큰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의미로 확장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성 영화 팬덤’의 능동적인 참여 행위와 응원은 관객 수 누적으로 <미쓰백>과 <걸캅스>를 비롯한 몇몇 여성 영화의 손익분기점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여성 영화인의 비율이 늘어나고, 투자되고 개봉되는 여성 영화 숫자도 증가했다는 점에서 여성 관객의 여성 서사 요구가 헛된 게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3. 여성 영화 응원과 검열이라는 양가성

여성 서사 작품에 대한 응원이 존재하는 한편, 여성 영화를 과도하게 검열하고자 하는 양상도 존재한다. ‘여성 영화 팬덤’은 양적으로 더 많고 더 다양한 여성 영화가 출현하기를 원하여 다양한 행위로 여성 영화 제작을 독려하지만, 동시에 여성 영화에 재현되는 여성 인물과 내러티브가 기존의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이성애 관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온라인에서는 완벽한 여성 서사의 기준을 분류하는 도표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나는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하여 관객이 다양하고 풍부한 여성 의제를 나눌 가능성을 포함한 좋은 작품을 경험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예로, 2019년에 <벌새>와 <아워 바디>는 불과 한 달 차이를 두고 개봉했지만, 여성 영화 팬덤이 두 작품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벌새>는 관객들의 큰 지지를 얻으며 벌새단 결성과 14만 명이라는 관객 수를 기록했지만, <아워 바디>는 비우호적인 담론이 형성되었으며 영화 팬덤 조직은커녕 8천 명에 불과한 관객 수를 기록했다. <벌새>는 10대 소녀인 주인공이 성인 여성의 도움을 얻어 남성 구성원에 의해 발생하는 가정 폭력에 저항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여성 영화 팬덤이 원하는 이상적인 여성 영화는 여성 주인공이 가부장제로 대표되는 남성의 폭력 혹은 악인 여성의 폭력으로 혹사당하다가, 이를 다른 여성 인물의 조력으로 극복하는 서사의 영화이다. <벌새>는 여성 영화 팬덤이 원하는 여성 영화의 이데아에 완벽하게 겹쳐지는 영화였기에 인기를 얻고 여성 영화 팬덤 사이에서 우호적인 담론을 성공적으로 형성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쓰백>과 <허스토리>도 ‘여성 영화 팬덤’에 속하는 ‘쓰백러’와 ‘허스토리언’을 만들어냈는데, 여성만이 여성을 구원할 수 있다는 주제 의식이 서사에 그대로 반영되었기에 여성 관객들의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아워 바디>는 30대 여성 주인공이 다른 성인 여성의 도움을 얻어서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서사가 진행되다가 그 희망이 이내 조력자의 죽음으로 좌절된다. 이 작품에서는 다른 여성 인물도 여성 주인공의 삶을 구원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또한 이성애 관계를 극렬하게 거부하는 ‘여성 영화 팬덤’이 여성 인물과 중년 남성의 섹스 장면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어린 여성과 섹스하는 중년 남성들의 판타지가 반영된 알탕 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가 팽배한 상태에서–해당 영화에 대한 비우호적인 담론이 형성되었다. 즉, <아워 바디>는 여성 영화 팬덤이 요구하는 페미니스트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다른 유형의 인물이 주연으로 등장하였기에 해당 작품은 ‘여성 영화 팬덤’을 구성하지 못하고 극장에서 금방 내려가며 관객에게 외면받은 것이다.

<아워 바디>도 <벌새>만큼 관객들 사이에서 논의되어야 할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지닌 작품이나 파편화된 평가로 그럴 자격조차 얻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검열’을 통하여 창작물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극단주의보다, 기존의 페미니스트 여성 영화 팬덤이 한국 여성 영화에 요구하는 이상적인 기준을 조금 빗겨나가더라도 새롭고 다양한 이야기를 수용하는 태도와 포용주의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 본고는 Fwd에 기고된 글로, 기고된 글의 입장은 Fwd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 윤서연 (2021).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 여성 영화 관객의 팬덤화 연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석사학위논문.
  • Ang, Ien. 1985. WATCHING DALLAS: Soap Opera and the Melodramatic Imagination. London: Methuen &Co. Ltd, 박지훈 옮김(2018),『댈러스 보기의 즐거움』, 나남.
  • Jenkins, Henry. (2006). Fans, Bloggers, and Gamers: Exploring Participatory Culture,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정현진 옮김(2008),『팬, 블로거, 게이머: 참여문화에 대한 탐색』, 비즈앤비즈.
  • Busse, K. (2015). Fan Labor and Feminism: Capitalizing on the fannish labor of love, Cinema Journal, 54(3), 1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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