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정치, 어떤 연대로 나아갈 것인가

이가현(페미니즘당 창당모임 공동대표)

이번 특별기고는 Fwd의 여섯 번째 기획 <페미니즘 정치, ‘불행’의 좌표 다시 찍기>의 필진들이 지난 기획의 연장선에서 마련한 특별 지면입니다. 지난 2022년 1월에 열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가자?!> 간담회를 계기로 초청에 응해주신 필자 이가현 님께 감사드립니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 그리고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2022년 상반기는 선거로 꽉 찬 한 해였다. 괴로웠던 대통령 선거와 그에 딸린 지방선거를 뒤로한 채 이대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잠시, 오랜만에 선거일정이 없는 기간을 앞두고 지난 몇 년의 페미니즘 정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고 앞으로 페미니즘 정치는 어떤 스텝을 밟아야 할지 미뤄둔 고민이 닥쳐왔다.

지난 해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전 대표의 윤석열 선대위 합류 후 몇몇 페미니스트정치활동가들이 모여 1월 11일 ‘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가자’라는 이름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약 일주일 동안 195명의 시민, 활동가, 정치인들이 연명했다. 성명을 발표한 사람들은 성명이 남긴 질문들을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가자?!’라는 이름의 간담회를 열었다. 페미니즘 정치를 시도하는 활동가와 정치인들이 모여 페미니즘 정치의 상징과도 같았던 신지예라는 인물을 떠나보내며 페미니즘 정치는 끝나지 않았음을, 그렇다면 페미니즘 정치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든 페미니즘의 정치적 공유지를 사유화하는 일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정리되지 않은 고민 보따리를 풀어놓고 확인했다.

더듬더듬 페미니즘 정치를 정의하는 일을 시작하며 든 생각은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페미니즘 정치에 기대하는 것은 정말 많다. 페미니즘 정치는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입법하는 것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보호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은 남성권력에 편입하지 않고 의회에 진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면서도 권력을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남성중심적 정치 구조를 바꿔야 하고, 중앙정치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기반해야 하며, 민주주의의 확대까지 고민해야 한다. 페미니즘 정치가 이런 모든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했지만 상상력이 자극되는 일이기도 했다. 성명문 발표와 간담회 이후 만들어진 ‘페미니스트 여성 정치를 고민하는 모임(가)’은 페미니즘 정치, 페미니스트 정치 가이드라인을 출판하는 것을 꿈꾸며 정치란 무엇인지,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하나하나 우리만의 정의를 세우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하는 현 정세에 대한 토론은 덤이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둘러싼 공격과 옹호의 딜레마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또 다양한 정당과 단체에서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페미니즘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언론과 타 정치인,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소속 정당 당원들에게까지 공격을 받는다. 이들은 단순한 비판뿐만이 아니라 성희롱, 성추행, 협박, 스토킹, 벽보와 현수막 훼손, 폭행, 성폭행처럼 범죄에 해당하는 일들을 겪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하거나 실수를 했을 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에 대해 비판하거나 토론하기가 어렵다. 안 그래도 공격받고 있는데, 같은 페미니스트까지 공격을 해 버리면 이들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각종 범죄에 더 취약한 위치가 될까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해야 할 비판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옹호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을 ‘연대의 정치’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 어떤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은 자신의 위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정치적으로 위협받으면 페미니즘 정치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비판적인 토론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한다. 또 이런 태도는 페미니스트 정치인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 태도이기도 하다.

범죄와 공격으로부터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보호하면서도 건전한 비판과 토론, 문제 제기와 책임지기를 통해 페미니즘 정치의 영역을 함께 넓혀나가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고 있다. 나 또한 한 명의 페미니스트 정치인이기에, 인정하기 싫은 비판과 반박을 어떻게 잘 수용할 수 있을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곧 나의 위치가 위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비슷한 처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정치활동가들이 모여서 서로를 붙들고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양당중심주의와 페미니즘 정치의 양립 가능성

지방선거가 한참 진행되던 중 페미니스트 정치세력화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다. 강의를 마치고한 참가자가 질문을 했다. 거대양당에 소속되어 페미니즘 정치를 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말이다.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피소사실이 여성단체 대표와 대표 출신 정치인으로부터 유출되었던 ‘유출사건’과 이후 벌어진 ‘피해 호소인 논쟁’, 그리고 여성 인권을 위해 힘써오던 지식인의 보수정당 합류라는 사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다. 그에 더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거대 양당은 유례없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과 여성혐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동시에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캠프에 영입했다. 많은 이들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박지현 전 위원장의 활동을 보며 어쩌면 양당에서도 페미니즘 정치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윤석열 선대위에 합류한 신지예 전 대표를 보며 어떤 사람들은 국민의힘에서의 페미니즘 정치를 응원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정치는 없다. 특히 경쟁을 전제로 한 정치판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한 두 명의 정치인이 정당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페미니즘 정치로 이어지기는 매우 어렵다. 일례로 지난 국회의원 선거 당시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기 위해 만났던 민주당 보좌진은 ‘우리 당의 백혜련 의원이 만든 (n번방 방지법) 법안이 있다’며 우쭐댔다. 그러나 당시 국회청원으로 상정된 텔레그램 방지법안을 심사하는 자리에 있던 민주당 의원은 법안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발언을 했다(원문 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건 지지자들이건 나눌 것 없이 ‘그래도 권인숙 의원이 있는 정당과 없는 정당은 다르지 않냐’며 민주당을 비판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시도도 목격했다. 페미니즘 정치를 정당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더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몇 명의 페미니스트 의원들 뒤로 당 전체가 숨고, 책임을 방기하고, 그 알리바이를 페미니스트 의원들의 존재 그 자체에서 찾는 것이었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그렇게 단편적으로 활용하는 가운데에서도 나름 고군분투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이들도 결국 당파적인 일 앞에서는 신념을 잠시 협상하게 되는 것을 목격했다. 박지현 전 위원장이 선거운동을 하며 ‘이재명은 차악이 아닌 최선’이라고 말한 것, 신지예 전 대표가 ‘국민의힘 강령과 내 페미니즘은 다르지 않다’고 언론에 인터뷰한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거대 양당에서 기성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정책을 펼치지 않아도 되는 알리바이가 되어주는 역할을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양당에서 페미니즘 정치가 가능할지 의구심이 든다.

이에 더해 페미니즘은 이분법에 반대하는 실천이기에 양당체제라는 견고한 이분법에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페미니즘 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양당체제는 단순히 양당이 크다, 세다 정도의 것이 아니라 양당 외의 정치세력은 자생할 수 없도록 모든 제도와 인식, 문화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페미니즘과 가까운 언어로 표현하자면 ‘정당이분법’이나 ‘양당중심주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도적인 것을 예로 들어보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 순으로 모든 선거에서 번호를 부여하는 것, 선거비용을 보전받는 비율을 10%와 15%로 정해두어 거대 양당은 비용을 모두 보전받는 ‘0원 선거’를 할 수 있지만 그 외의 후보들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선거비용을 고스란히 빼앗겨야 한다는 것, 전 지역구에 후보를 모두 공천한 정당만이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국가보조금을 몰아주는 것처럼 선거와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살아남으려면 양당에 가입하는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양당체제’이다. 이런 전방위적 ‘양당중심주의’는 정치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고 결국 ‘변화를 만들고 싶으면 힘 있는 쪽에 붙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상대보다 강해져서 상대를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만드는 양당체제가 어떻게 페미니즘 정치가 보호하고자 하는 다양성과 소수자의 권리와 조화롭게 맞물릴 수 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힘 있는 곳에서 틈새를 만들려는 시도는 분명 의미 있지만, 그 이분법 바깥에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거나 이분법을 깨나가는 시도가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 정치로 만나는 페미니즘

그런 이분법에서 벗어난 페미니즘 정치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등장했다. 진보정당에서 출마한 페미니스트 정치인들도 있었지만 내가 보다 주목한 후보들은 ‘청주페미니스트연대’ 후보들이었다. 충청북도 청주에서 7명의 페미니스트가 ‘청주페미니스트연대’라는 이름의 연대를 만들어 함께 공약을 만들고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이들의 비전과 공약은 다음과 같다.

1. 성 ‘평등’ 실현하는 청주
– 성 평등국 설치로 평등한 지방자치 실현
– 청주시 및 산하기관 성 평등 공시제 및 계약제로 평등한 일터 구축
– 장애인 이동권 확대 및 24시간 활동 지원, 이주민 차별 없는 권리 적용
– 청주시 여성지원 제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성평등 포털 사이트 구축
–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포함한 청주시 인권조례 제정 

2.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청주
– 성범죄 예방과 근절을 위한 조례·교육프로그램·전담체계 시스템 구축
– 청년 및 노인 대상 공공주택 공급 확대 및 여성 1인 가구 주거 안정 보장
– 보건소마다 재생산권리센터 설립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보장
– 시니어 희망일자리 대상 확대 및 일자리 전담지원센터 설치
– 여성농민 건강권 확보

3. ‘나’만 말고, ‘우리’를 위해 ‘연대’하는 청주
– 각 동별 공공돌봄센터 설치로 통합돌봄 체계 구축
– 돌봄 노동자 지원 조례 제정 및 노동기본권 보장
– 기후위기 대응 위한 시민100인위원회 구성 및 기후정의 조례 제정
– 다양한 가족 구성권 보장과 접근 장벽 없는 공공서비스 확충
– 공공 주치의 제도로 1차 의료 강화, 공공병원 확대 
▲ 청주페미니스트연대의 ‘평등, 존엄, 연대’ 기치를 담은 대표 공약 (출처 :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이들은 청년 여성 후보들이 ‘떼’로 등장하는 전략을 활용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페미니즘의 관점을 분명히 하고 지역에서 페미니즘을 알리는 운동적 차원에서 선거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여타 정당에는 흔히 있는 정책연구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후보들 모두가 몇 개월 전부터 열심히 공부해 지역기반의 비전과 공약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들은 선거를 함께하는 구성원들의 의사결정이 기획자와 집행자가 괴리되지 않고 일치하도록 평등한 관계에 각별히 힘쓰기도 했다.

이 7명의 예비후보 중 무소속 2명, 노동당 1명의 후보까지 총 세 명의 후보가 본 후보까지 출마해 선거를 완주했다. 페미니즘당은 페미니스트 정치세력화의 일환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청주페미니스트연대 후보들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이들의 당선을 위해 활동할 것을 결정했다. 나는 청주에서 청주페미니스트연대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면서 청주의 동네별 특징과 지역의 운동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가 많은 곳에는 ‘이주여성의 권리를 위한다’는 문구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현수막을 걸었고, 유아나 어린이가 많이 사는 동네에는 ‘동마다 공공돌봄센터 설치’ 피켓을 들었다. 원래 살던 주민을 쫓아내고 건설된 아파트 단지 이야기, 백로서식지를 파괴해 개발된 동네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삶에 기반한 페미니즘 정치를 다시 한번 실천하고 그 상상력을 넓혀갈 수 있는 시도였다.

청주페미니스트연대는 선거가 끝나고도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에 모여 활동하면서 지역의 페미니즘 정치를 이어가 보겠다고 했다. 양당체제가 이토록 공고한 가운데에도 매 선거마다 끊이지 않고 페미니즘 정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렇게 전국의 방방곡곡에서 페미니스트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각자의 페미니즘 정치를 고민하거나 이어 나가고 있다. 이들이 다만 ‘등장’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고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몫은 또 페미니즘 정치의 역할로 남겨져 있다. ‘페미니즘 정치는 연대의 정치’라는 말에서 조금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어떤 연대의 방식을 활용할 수 있는지 실천전략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할 시기인 듯하다. 페미니즘 정치가 말 또는 침묵으로 하는 연대뿐만 아니라 직접 만나고 몸으로 부대끼며 정드는 다정한 연대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잘못을 책임지면서도 온갖 폭력으로부터는 보호받는 페미니스트 정치인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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