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두

*이 글은 나의 석사학위 논문 “‘그들만의 리그’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한국 금융투자업계의 젠더화된 네트워크에 관한 비판적 분석 -” (2022)의 일부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들어가며 : 한국 자본시장과 그를 움직이는 사람들
‘주식 안 하면 바보’라는 소리를 듣던 시기가 엊그제 같은데, 한국 주식시장은 어느새 그 전으로 새삼스럽게 복귀한 듯하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심화하던 2021년 초, 1,400선 바닥을 친 후 코스피는 장중 사상 최초 3,000선을 돌파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주식시장 활황에 많은 사람은 핸드폰에 증권사 앱을 깔고 매 순간 바뀌는 빨갛고 파란 신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나 이 축제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연내 4,000선 돌파까지도 가능할 것이라 평가했던 일부 투자 전문가들의 전망이 실현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치인 2,000대 중반으로 빠르게 회귀하며 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식시장으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시장은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여러 조건 속에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자본시장을 경험하고 바라보며, 나는 매 순간 쉼 없이 일어나는,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구체적으로는 활발하게 투자가 일어날 수 있는 큰 판과 틀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말이다.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하였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여의도로 대표되는 몇몇 도시 공간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주요 금융투자회사와 금융 공기업 본사가 몰려있는, 소위 ‘금융 1번가’로 일컬어지는 작은 섬과 개인 자산가들의 목돈이 매일같이 운용되는 증권사 지점이 즐비한 거리 등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노동함으로써 한국 금융투자업계와 자본시장이 움직이고 있는지, 그러한 노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금융과 자본시장의 문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해석하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만의 리그’로 집중되는 자본
연구를 시작하며 인터뷰를 막 시작했을 즈음, 한 여성 연구 참여자 장현서 씨[1]는 내게 이런 말을 전했다. “그들만의 세상 느낌이죠. 제가 보기엔 좀 그래요.”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표현은 금융투자업계 내부의 배타성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는 말이었다. 금융투자업계는 크게 직접적으로 투자에 참여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프론트 오피스와 투자 행위에 수반되는 위험(risk)을 관리하고 제어하는 미들 오피스, 그리고 프론트와 미들 오피스의 뒤에서 각종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백 오피스로 구분된다. 장현서 씨가 언급한 ‘그들만의 세상’은 금융투자업계 전체 중에서도 주로 프론트 오피스를 지칭했다. 프론트 오피스에 속한 직군(펀드매니저, 딜러, 직접적으로 투자 상품을 운용하는 운용역 등)으로 입성하기 위해서는 암묵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을 획득해야 했는데, 고학벌과 고스펙 등을 비롯해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바로 젠더였다.
[1] 본 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연구 참여자들의 이름은 가명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여러 통계 자료와(금융위원회, 임형석, 2021), 많은 연구 참여자들에게 들은 업계 인력 현황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파악했다. 실제로 프론트 오피스의 남성 노동자 비율은 아직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았다.[2] 영국의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린다 맥도웰(2010)은 이러한 금융투자업계 내 프론트 오피스의 남성 중심성과 그로 인해 구성된 특정한 남성성이 이중정인 상징성을 띤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상징성은 이성적 주체로서의 합리적인 남성과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좀 더 비이성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을 발현하는 남성상과 연결된다. 이러한 이중적인 남성성은 가부장제를 기초로 한 자본주의에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구조화되었던 사회문화적 맥락과 이어졌다. 즉, 실제로 수익을 내는 프론트(한 연구 참여자의 말에 따르면 “바깥에서 돈 벌어오는 아빠”)에서 냉정하게 때로는 공격적으로 투자를 감행하고, 다양한 형태로 돈을 벌어오는 일을 중점적으로 수행할 때, 비교적 여성 노동자 비율이 높은 백 오피스는 “집 안에서 살림하는 엄마” 역할을 수행하며 그를 지원한다. 근대 이후의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성별에 따른 ‘차이’를 통해 이윤을 축적해 온 ‘성별화된’ 시스템이라는 분석(김현미, 손승영, 2003)은 이같이 금융투자업계 노동 구조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2] 2021년 기준 금융업계에서 프론트 오피스 업무로 분류되는 자산 운용 직무에서 남성 고용 비중은 73.5%, 투자은행 직무에서 남성 고용 비중은 82.3%였다.
이윤을 발생시키는 포지션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그를 노동자들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 내외부에 존재하는 여러 자원과 자본은 이윤의 원천인 ‘앞으로’ 향하며 배타적으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테면 투자 행위를 통해 업계 내에서 관련된 평판(reputation)이 쌓이고, 그 결과로 난 이익은 대부분 (직접적으로 투자를 수행한) 프론트 오피스의 운용역들에게 막대한 성과급으로 제공되었다. 또 투자 행위를 진행하며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는 그 내부에서 일종의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하여 이후의 투자와 수익 창출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자본은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획득하는 실제적이거나 잠재적인 자원의 총합(부르디외, 1986)”을 의미하며, 그러한 집단을 만들어내는 연결망의 폐쇄성이 강할수록 더욱 그 힘과 지배력이 강해진다(콜만, 1990). ‘그들만의 세상’, 조금 더 익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만의 리그’의 사회적 자본에는 높은 상승 이동 가능성과 이윤 창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남성 중심적인 프론트 오피스 노동 문화를 기반으로 구축된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중심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고, 그 결과 업계에서 가장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여겨지는 영역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데, 이는 젠더 고정관념에 따른 분리를 전제하며 동시에 재생산한다(Brass, 1985).
금융투자업계의 젠더화된 능력주의
금융투자업계는 어떤 업계보다도 능력주의와 성과중심주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말 그대로 숫자로 모든 것이 납득되고 설명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매력이 있는 곳이죠. 왜냐면 능력이 있으면 충분히 인정을 받는?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고 보상이 주어지는 곳이 많지 않잖아요.” 연구 참여자 이정민 씨는 업계의 능력주의를 이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비록 자신은 여성이라서 업계에서 능력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곳의 강력한 성과주의가 여성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정민 씨의 경험과 가치관은 한편으로 모순되거나 대치되어 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금융투자업계에서 능력주의가 젠더화된 형태로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풀어 말하자면, 업계 내에선 능숙하게 수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능력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설정되어 있었다. 프론트에서 다수의 남성이 발휘하는 ‘능력’은 막대한 성과 보상과 연결되며 경제적으로 고평가되지만, 여성들이 이 업계 안에서 주로 도맡고 있는 업무와 소속된 영역에서 발휘하는 ‘능력’은 해당 보상체계 내에서 쉽게 저평가되거나 비가시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여성이라는 그리고 여성이라는 성별의 규범적인 속성에 관련된 특정한 능력은 업계 보상 체계에 적절하게 편입되지 못했다. 업계가 성과중심주의에 따라 구축되어 있으며, 이러한 맥락을 포괄해 능력주의가 젠더화된 채 이데올로기로써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맡은 백오피스의 오퍼레이팅(후선 지원) 업무를 “쓸데없는 일”, “아무나 해도 되는 일”로 스스로 낮추어보았던 한 연구 참여자의 이야기와, 자신의 ‘능력’이 제대로 평가받고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에 계속해서 의문을 가졌던 여성 연구 참여자 황미연 씨의 사례가 이를 뒷받침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러한 차별적인 능력주의와 성과중심주의 보상체계를 기반으로 하여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금융투자업계의 젠더화된 능력주의가 공고하게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능력주의 그 자체가 기존의 전통적이고 이분화된 젠더 규범을 약화하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별을 비롯한 여러 조건과 관계없이, 오로지 내 ‘능력’만 증명하면 경제적으로 큰 성과와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업계의 신자유주의적인 희망의 내러티브는 주변의 실제 성공 사례들과 연결되어 일종의 환상처럼 관계자들에게 공유되지만, 동시에 업계의 구조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Roth, 2006). 금융투자업계 이윤 축적의 문법은 성별 이분화된 노동 구조의 문법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능력주의 서사는 그 구조를 쉽게 가리며 매력적인 가치로 대두된다. 그 결과 이 ‘능력’이 어떤 식으로 젠더화되는지는 업계 내에서 잘 논의되지 않고, 그저 개인이 잘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로 남는다. 오히려 무엇보다 능력주의를 우선하여 내세우는 방식은 금융투자업계가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 그에 반박하기 위해 강조되기도 한다(Roth, 2006: 188).
금융자본주의와 불평등한 성공 신화
나는 젠더 관점에서 금융투자업계 노동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업계 내부에서 각종 자원과 자본, 기회와 능력이 성별에 따라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와 차별의 구조는 금융투자업계에 막대한 이윤을 발생시키는 주요한 메커니즘이며, 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으로 금융자본주의가 작동하게 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이 업계가 기능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투자업계 노동자들은 이 플랫폼을 구축하고 움직이는 사람들로, 업계 바깥의 사람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들 노동 수행의 결과로 투자하게 된 사람들의 일상은 금융자본주의의 자장과 논리에 포섭된다. 랜디 마틴(2002)은 이 같은 흐름을 ‘일상의 금융화’로 개념화했는데, 일상 전체가 금융의 논리 속으로 삼투되어 들어가는 경향성을 띠는 현상을 의미한다(박승일 외, 2015: 184). 이를테면 금융투자업계에서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갖가지 금융상품과 거래는 일상에서 대중화된 투자-주체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여러 삶의 문제를 개인화된 형태로 해결하게 하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이 안에서 투자하는 개인은 금융화된 일상이 초래하는 모든 사회적 위험과 리스크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박성일, 2010).
이 선택지들은 사람들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추동한다. “지금이 기회인데”와 “큰돈 벌 수 있다”는 식의 언사는 불평등하고 양극화된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모종의 성공 신화를 부추긴다. 누구든 이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너도 얼른 합류하라고 말이다. 나 또한 연구 중에 비슷한 표현을 연구 참여자에게서 들었을 때, 은연중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 조바심이 났던 적이 있다. 그리고 뭔가 해보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이 잠깐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희망의 문구는 표면상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기회와 (돈 벌)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정말 그러한가를 따져보면 쉽게 수긍할 수 없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이들에게만 한정적으로 기회 구조가 훨씬 넓게 열려있는 금융자본주의 시대 불평등한 한국 사회의 단면은, 마치 금융투자업계 내의 ‘그들만의 리그’와 유사한 배타성과 폐쇄성, 구조적 모순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금융투자업계를 경유해 작동하는 금융자본주의와, 그에 수반되는 ‘불평등한 성공 신화’에 관한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더욱 풍성한 사례와 분석은 이영은, 2022: 4장 참고). 연구 참여자 김준혁 씨의 이야기이다. 김준혁 씨는 ‘증권맨’에 대한 동경을 느껴 금융투자업계에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고 불려주는 PB(Private Banker)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실적을 올렸지만, 또 얼마 못 가 자기 일에 회의를 느꼈다. 거래대금에 비례해 수수료 수익이 커지는 수익 구조 속에서, 고액 자산가 한 명에게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일반 고객 10명에게서 얻는 것과 같다 보니 쉽게 목표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부자를 자신의 충성고객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는 그가 처음 바랐던 “모두를 위한 금융인”이 되는 길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었다. “왜냐, 돈은 돈을 부르거든요.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뭐든 길이 있어요.” 다른 연구 참여자 장현서 씨가 했던 말인데, 김준혁 씨가 경험한 현실과 묘하게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었다. 여기에서 ‘길’은 금융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획득 가능한 (돈 벌) 기회를 의미했다. 그리고 이 기회는 이미 더 많이 가진 이들이 더욱 쉽게 가질 수 있었다.
나가며 : ‘그들만의 리그’ 바깥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
연구를 진행하며 단일하게 해석되지 않는 욕망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났다. 여전히 금융투자업계에서 열심히 일하며 각자의 부푼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 불만과 회의를 느끼고 업계 바깥으로 나와 개인으로 투자를 이어 나가거나 다른 일을 시작한 이들, 업계 내외부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며 평판을 쌓고 몸값을 높여온 이들 모두의 이야기는 서로 부분적으로 연결되며 금융자본주의의 노동 문화를 만들어냈다. 금융투자업계의 성별화된 노동 구조와 이데올로기는 내부의 기회 구조의 모순과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며 작동하였고, 업계 외부의 좀 더 거시적인 ‘그들만의 리그’, 즉 양극화된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와 많은 부분 닮아있었다. 나는 이러한 연결과 유사성의 지점에서 금융자본주의의 영향력이 팽배한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앞으로 ‘그들만의 리그’ 바깥의 경험과 감정, 이야기를 풍성하게 이어 나가는 장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금융투자업계 안의 ‘그들만의 리그’와 그에 따른 불평등한 자원 접근, 젠더화된 분배 구조, 능력주의에 관한 문제 제기는 리그에 속하지 못한 이들의 경험과 시선에서 시작할 수 있다. 또한 금융과 투자에 관련된 실천으로 삶이 꾸려지고, 마치 그를 통하지 않으면 욕망을 성취할 수 없거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만 사로잡혀 있는다면, 금융화된 삶의 양식을 재사유하고 성찰함으로써 다른 선택지나 대안을 구상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의 글이 그러한 문제 제기와 사유의 유의미한 시작점 중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 금융위원회, 임형석(2021). 『금융인력 기초통계 분석 및 수급 현황』.
- 김현미, 손승영(2003). “성별화된 시공간적 노동 개념과 한국 여성노동의 유연화”, 『한국여성학』, 제19집 2호, 63-96쪽.
- 박성일(2010). “일상을 잠식한 금융자본주의”, 김현미 외(편저), 『친밀한 적』. 이후. 49-72쪽.
- 박승일, 원용진(2015). “신자유주의 통치성과 금융화 그리고 금융-장치”, 『사회과학연구』, 제23권 1호, 172-216쪽.
- 이영은(2022). “‘그들만의 리그’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한국 금융투자업계의 젠더화된 네트워크에 관한 비판적 분석”,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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