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접힌 시간성에 가려진 장애인의 삶에 주목하기

희원

김은정, 강진경·강진영 옮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후마니타스, 2022) 표지 이미지

치유의 폭력성과 접힌 시간성

저자 김은정은 젠더 및 장애학 연구자이자 한국의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 ‘장애여성공감’의 회원이다. 그는 교차성, 트랜스내셔널한 여성주의 장애학, 인권, 무성애, 크립/퀴어 이론, ‘불구’의 생태학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의 박사논문을 다듬어 출간한 이 책에서는 페미니스트 장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담론과 몸의 뒤얽힘을 설명하고 있으며, 장애 및 질병이 지니는 신체성을 간과하지 않는 분석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의 키워드는 ‘치유’다. 이는 장애나 질병을 ‘치료 가능한’ 것으로 위치시키는 힘과 관련된다. 일상에서 ‘힐링’이나 쉼, 회복 등과 관련되는 치유는 이 글에서 폭력과 관련된다. 저자는 ‘치유 폭력(curative violence)’을 타자를 ‘나아지게’ 해줄 것이라는 이유로 타자가 지닌 차이를 문제삼고, 그 차이를 소거하며, 심지어 타자라는 대상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김은정, 2022:38). 치유는 정치적·문화적 재현, 사회운동 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젠더 혹은 이성애중심주의 등과 같은 다양한 정상성의 작용과 동시에 나타난다. 이에 저자는 치유 서사의 구조를 지니는 20-21세기 한국사회의 각종 재현─담론, 영화, 소설, 정책 등─을 통해 치유폭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저자는 글의 서두에서 ‘치유의 시간성은 접힌 시간성(folded temporality)’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장애 이전의 과거와 이후의 미래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시간을 ‘접어버리고’, 장애인을 타자화한다는 의미다.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 안에서 장애는 타자성으로 위치되며, 장애라는 타자성을 ‘치유’하는 데에는 젠더, 섹슈얼리티, 인종, 민족, 국가 등과 관련된 정상성 규범이 소환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치유는 완전한 정상성의 회복으로만 상상된다는 문제가 있다. 치유는 불완전할 수 있으며, 치유로 인한 이로움의 불확실성에는 각종 피해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치유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노력을 가로막고, 장애나 질병을 의료적인 영역에만 국한시킨다(김은정, 2022: 33-36). 치유는 정상성에 의거하여 규범적인 몸을 생산하고 통치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폭력성을 띤다. 저자는 장애와 치유를 각각 긍정, 부정으로 연결짓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서 비판적으로 사유하기를 시도하고 있다(김은정, 2022: 46). 강제적인 신체정상성은 비규범적인 몸의 존재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김은정, 2022: 230).

치유 서사와 정상성 규범이 은폐하는 장애와 질병의 현재

이 글에서 치유 서사는 장애 ‘이전’이나 ‘이후’의 정상신체로의 회복가능성을 강제함으로써 장애 몸의 현재를 마주하기 어렵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장애를 치유한다는 환상은 몸뿐 아니라 젠더와 이성애 규범, 계급이나 인종주의 등의 정상성을 경유하여 구성된다. 치유 서사에서 장애는 해악이자 손상과 불완전의 상태와 동일시되므로, 장애를 예방하거나 근절하는 것은 장애인 개인, 장애인의 가족, 그리고 국가의 정상성을 위해 중요한 임무로 자리한다. 

1장 ‘낳아서는 안 되는 장애’에서는 장애인의 재생산을 도덕적, 제도적으로 규제해왔던 근현대 한국사회의 우생학적 역사를 다룬다. 특히 박정희정권은 모자보건법 제정을 통해 우생학을 법제화하였으며,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매개되는 ‘치유’의 서사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구성해왔다. 치유 서사는 속 장애여성의 재생산은 성별이분법, 이성애중심주의, 결혼제도, 핵가족 등의 정상성 수행을 통해서 재현되었으며, 치유의 폭력성은 장애 자체보다는 장애의 발생 가능성을 예방하는 데에서 드러났다.

2장 ‘대리 치유’에서는 가족이나 국가를 경유하는 치유 서사를 살펴본다. 가족구성원은 장애 몸의 대리인으로서 이들을 부양하는 의무를 지님으로써 치유의 책임자가 된다. 장애는 가족의 특성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가족의 정상성 지위는 치유와 직결된다. 한편 국가적인 대리 치유 서사에서는 장애인과 국가정치, 영토 사이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를테면 착취당한 여성의 이미지는 국가적 몸으로서의 장애인을 경유하고, 치유와 풍요는 연결된다. 이때 치유는 정상성에 대한 희생과 헌신이며, 국가는 치유를 통해 번영하는 유토피아로 거듭날 수 있다. 

4장 ‘머무를 수 없는 곳, 가족’은 한센병에 대한 치유 폭력의 서사를 논의한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폭력의 역사를 뒤로 하고 등장한 ‘인식 개선’ 캠페인에서는 한센병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사실을 통해 질병의 낙인을 상쇄하기를 꾀한다. 하지만 과학 담론에만 의존하여 인식을 개선하고자 하려는 시도는, 완치 이후에도 삶을 유예당하는 한센인들의 현실을 비가시화한다. 한편 한센인 치유 서사는 병의 진단과 절망, 치료와 정상 신체로의 신체 복원, 시민으로서의 성공과 이성애 관계 형성이라는 단계적 구조를 띠고 있다. 이때 이성애 결혼을 통한 가정 꾸리기는 한센병과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상상된다.

한편 장애인의 섹슈얼리티 역시 치유 폭력을 경유하여 재현된다. 3장 ‘사랑의 방식이라는 폭력’에서는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치유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는 서사를 분석한다.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이분법적으로 상상되는 경향이 있다. 그 중 첫째는 장애여성의 성적 욕구를 외부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장애여성의 성이 피해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여성성의 승인으로 의미화하거나, 비극의 근원으로서의 장애를 치유할 것을 종용하는 치유 폭력은 지속적인 억압과 폭력을 경험하는 장애인의 삶을 손쉽게 은폐한다는 문제를 포함한다(김은정, 2022: 259). 

5장 ‘치유로서의 성경험’에서는 한국의 장애인 섹슈얼리티 재현을 톺아본다.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신자유주의적 온정주의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재현된다. 이성애경험은 장애를 ‘치유’하고 인간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된다. 한편 장애인에 대한 성적 서비스 제공 담론 에서는 장애인의 성욕과 섹슈얼리티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간주한다. 이러한 논의는 젠더, 장애 위계의 개입을 은폐하고, 구조와 규범의 문제를 개인화하게 된다. 또한 장애인의 성욕을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은 섹슈얼리티를 성욕으로 환원하는 동시에, 장애인의 무/성적 행위를 규율하는 효과를 지닌다.

결국 비장애중심적 정상성 규범은 장애뿐 아니라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인종 등의 정상성 그리고 국가주의와 모두 맞물린 힘으로서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규범들에 기반을 둔 치유 서사는 장애인들의 서로 다른 위치성을 감추고, 규범적인 신체에만 사람됨의 자격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장애 이전과 이후의 정상성에만 주목하게 하는 치유 서사의 구조를 ‘타입캡슐’이라고 지칭한다. 이는 장애인이 살아온/살아갈 시간이 만나는 현재를 지워버린다는 의미로 읽힌다.

규범과 접힌 시간성을 해체하기

“‘괜찮았던’ 과거를 향한 향수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장애가 있는 몸에 투영하면서 과거와 미래에만 주목하기 때문에, 몸의 역사와 함께, 그리고 나이든 후의 미래와 함께 현재에 머무르기 힘들다는 것이 접힌 시간 속에 살아가는 삶의 특징이다. (중략) 이런 문제의식은 과거와 미래의 중요성을 일축하면서 단순하게 현재주의presentism를 주장하거나 혹은 우리 모두 이 순간만은 위해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개선과 악화의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또한 거창한 희망과 절망이라는 이분화된 도식 밖에 존재하는 미래, 폭력 없이 살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보려는 것이다(김은정, 2022: 358).”

결론에서 저자는 치유의 시간성을 해체할 대안적인 상상력을 제안한다. 저자의 주장은 접힌 시간성을 펼쳐서 구김 없이 다림질하자는 것도, 현재에만 주목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일직선상의 시간성을 거부하고, 과거-현재-미래가 만나는 삶의 조건을 짚어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는 한편으로 미국의 퀴어연구자 주디스 핼버스탬(2005)이 이야기했던 ‘퀴어한 시간성’ 논의를 떠오르게 한다. ‘핵가족과 재생산, 돌봄, 국가와 안정성, 미래와 장수에 대한 열망 등을 포함’하는 이성애규범적 시간성과 달리, 퀴어한 시간성은 이성애규범적 생애 모델, 안정성, 생명에의 천착에서 벗어나는 삶의 궤적에서 발견된다. 이때 ‘퀴어’는 비규범적인 공동체, 정체성, 체현, 시공간적 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인종이나 계급, 위치성, 나이 등에 따라 이질적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퀴어한 시간성은 위태로움이나 질병,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기를 허용함으로써 규범적인 생애주기를 벗어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치유서사 안에서 장애는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방식이 아니라 지나쳐버려야 할 과거 혹은 약속된 정상성이라는 유토피아적 미래로 간주된다. 장애를 과거와 미래에 위치시키는 치유폭력의 ‘접힌 시간성’은 장애인이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구조적 차별을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하지만 저자가 서술한 것처럼 치유와 정상성 규범이 유보해버린 장애인의 삶은 묻어두어야 할 과거도, 진보된 미래도 아니다. 장애인들의 삶은 살아온 과거, 살아갈 미래가 뒤섞여 만나는 현재라는 장에 위치해 있다. 접혀버린 시간성 안에서 삶을 유예당한 장애 몸들은 현존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되찾기 위해 싸워왔다. 장애뿐 아니라 퀴어나 노동자 등의 삶 역시 진보된 미래라는 미명 하에 나중으로 미뤄지고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현재의 시공간성을 강조하는 ‘지금, 여기, 당장’과 같은 구호가 겨냥하는 것은 소수자들을 미래나 도래할 것인지도 확실치 않은 시간에 둠으로써 시민권과 존재를 부정하고 삶을 박탈하는 방식일 테다. 

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을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미래에 제멋대로 위치시키는 ‘시기상조’의 정치학은 사람됨을 박탈하고 삶을 가로막아왔다. 그러한 가운데 한쪽에서는 삶을 쟁취하기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살기를 중단하는 일들이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주관하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2001년 이래로 지속되고 있으며, 올해 5월 이후에만 5건 이상의 발달장애인 가족의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렇듯 한국 사회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 미래의 포기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치유를 강제하는 사회에서 장애인은 오직 정상성을 매개하는 힘들을 경유함으로써 사람됨을 획득할 수 있지만, 지금 여기에는 사람됨과 사람다운 삶의 범주를 넓혀나가기 위한 투쟁에 뛰어드는 장애인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투쟁은 장애와 질병,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도 같다. 치유당하지 않을 권리, 정상성에 포섭되지 않아도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 이 책은 치유의 접힌 시간성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져 온 정상성 규범을 드러내고 해체하기 위한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 하현덕, “대한민국 발달장애인에게는 국가가 없습니다. 국가가 필요합니다”, 비마이너, 2022년 6월 7일. (기사 보기)
  • Halberstam, Judith (2005). Queer Temporality and Postmodern Geographies, In A Queer Time and Place: Transgender Bodies, Subcultural Lives,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pp. 1-21.
  • Wendell, Susan (2018).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강진영, 김은정, 황지성 옮김), 서울: 그린비 (원서출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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