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년 반여만에 페미니즘 SF 함께 읽기 연재가 돌아왔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듀나의 초기 단편 「낡은 꿈의 잔해들」(1998)과 「태평양 횡단 특급」(2000)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듀나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SF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창작해온 한국 SF의 대표 작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듀나를 영화평론가로 알고 있지만, 듀나라는 작가의 정수는 그의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많이들 간과하는 부분인데요, 듀나는 소설을 창작하는 데 젠더 관점을 꾸준히 견지해왔습니다.
「낡은 꿈의 잔해들」과 「태평양 횡단 특급」은 1990년대 듀나의 페미니스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먼저, 「낡은 꿈의 잔해들」은 임신한 가정주부인 주인공이 우연히 자신과 똑 닮은 여성을 발견하면서 그녀의 정체를 찾아나서는 미스터리 소설로, 1990년대 한국 사회의 풍요로움과 그에 가려진 여성들의 삶에 대한 듀나의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한편, 「태평양 횡단 특급」은 중세의 지명과 미래의 기술이 공존하는 환상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스팀펑크 소설로,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의 철로와 열차를 소유한 ‘국제철도회사’의 상속자이자 소유자인 여성 주인공이 아직 회사가 장악하지 못한 남아메리카 대륙을 손에 넣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세기 전환기 대한민국이 자리한 지정학적 맥락에 대한 듀나의 날카로운 통찰이 드러납니다.
대담자 : 강은교(오온), 송유진, 조영지(젊은쥐), 최가은, 허주영
‼️ 대담 내용은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1. 「낡은 꿈의 잔해들」: 여성의 삶을 옭아매는 ‘낡은 꿈’ 그리고 현기증
오온: 우선 듀나를 읽는 모임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 먼저 「낡은 꿈의 잔해들」과 「태평양 횡단 특급」을 선정한 이유는 두 작품이 한국 페미니즘 SF의 시초 격에 해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읽기에도 어렵지 않아 방대한 ‘듀나 월드’에 접근하기에 좋은 출발점이라고 판단했다. 다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다. 먼저 「낡은 꿈의 잔해들」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볼까.
젊은쥐: 담백하면서도 진득하고,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소설이었다. 문체가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약간 촌스럽게 페미니즘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 박완서의 소설, 예컨대 「지렁이 울음소리」(1973)와 같은 단편들이 떠올랐다. 중산층 핵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한 삶을 살아가며 폐소공포증을 느끼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또, 그동안 읽어왔던 듀나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듀나의 다른 작품을 읽으면서는 꽤나 냉담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낡은 꿈의 잔해들」의 간결하고 담담한 문장들에서 여성 주인공에 대한 짙은 감정 이입이 느껴졌다.
오온: 곽재식 작가가 「낡은 꿈의 잔해들」을 읽고 쓴 리뷰가 있다(링크). 곽재식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나도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그냥 슥 넘어갔다. 그런데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이 소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됐다. 게다가 정말 정석적인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던가! 처음 읽었을 때 이걸 놓쳤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젊은쥐: 나는 소설의 결말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나’와 ‘그 여자’는 각각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인 걸까? 아니면 동시에 존재하는 걸까?
오온: 나는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장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낡은 꿈의 잔해들」은 일종의 도플갱어 미스터리다. ‘나와 똑같이 생긴 저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을 환기시키고, 이에 대한 가설들을 계속해서 제시하고, 동시에 복선들을 여기저기 깔아두다가, 결말에 이르러 반전을 주는 거다. 다만 도플갱어 전설을 다르게 변주하면서. 원래 도플갱어는 서로 마주치면 어느 한 명이 죽는다고 하지 않나. 소설의 결말부에서 주인공은 점차 진실–‘나’는 가짜에 불과하며 ‘그 여자’가 진짜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현기증을 느낀다. 마지막 문장–“내가 죽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버티며 살아가야 할 길고 지루한 여름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에서 느껴지는 감각적인 심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 여성이 느끼는 존재론적 무력감과 병치되면서 더욱 큰 울림을 준다.
가은: 이번에 듀나의 소설을 몇 편 읽으면서, 이 작가는 여자들을 정말 집요하게 관찰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낡은 꿈의 잔해들」의 경우 이러한 관찰력의 대상을 1인칭의 ‘나’로 가져왔다는 점이 조금 놀라웠다. 여자들은 어릴 때 꿈에 엄청 집착하지 않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놓고 계속해서 사랑하고, 질투하고, 집착하고.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이 ‘낡은 꿈’이 ‘잔해’가 되어 떠돈다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
젊은쥐: 나 역시 내가 꾸었던 꿈이 사라지지 않고 어떠한 형체를 갖추어 어딘가를 배회한다는 상상을 하니 속이 정말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가은: 그런데 이 소설을 젠더라는 키워드를 통해 읽어내기 위해서는 여성 주인공이 임산부라는 설정이 중요한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오온: 주인공이 산부인과 의사와 ‘정상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지 않나. 그래서 나는 ‘정상성’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삶의 표상으로서 임신한 여성이 제시되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소설의 첫 문장에서 주인공이 “어느 날 오후”에 “백화점에서 산 새 구두랑 청동 화병이 든 쇼핑백들”을 들고 “핸드백에서 차 열쇠를 꺼내”고 있었다고 서술된다. 즉, 1990년대 당시의 시대상을 떠오르게 하는, 엄청나게 풍요로운 중산층 가정주부의 삶인 거다. 게다가 임신이라는 조건으로 인해 이 여성이 느끼는 폐소공포증이 더욱 극대화되지 않을까. ‘나’는 이미 아이까지 가졌는데, 이 모든 삶이 가짜인 걸 안 채로 남은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밀려오는 허무와 공포를 상상해보면, 정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
젊은쥐: 가짜인 ‘나’가 진짜인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지도 궁금하다. 버림받아 억울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 아니면 그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지.
오온: 가짜인 ‘나’가 진짜인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주인공이 카페에서 ‘그 여자’의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도 진짜인 ‘나’는 가짜인 ‘나’를 거의 의식하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그 여자’에게 ‘나’는 제대로 감각되지 않았던 거다. ‘그 여자’에게 ‘나’는 이미 떠나가버린 어린 시절의 ‘낡은 꿈의 잔해들’에 불과할 뿐이니까. 가은이 이야기한 것처럼, 나 역시 10대 시절에 이상적인 여성상에 집착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내가 정확히 어떠한 형태의 여성상을 그렸는지 기억하지 못하지 않나. 그렇기에 가짜인 ‘나’가 아무리 소리쳐도 진짜인 ‘나’는 그녀를 인식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나도 갑자기 마음이 갑갑해진다.
2. 「태평양 횡단 특급」: 여성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라는 아이러니
유진: 「태평양 횡단 특급」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단순히 전 세계가 너비 6.8미터의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태평양 횡단 특급」이 그리는 세계가 시공간이 뒤섞인 혼종적인 곳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그러한 점에서 소설이라기보다는 모순적이고 점층적인 역사의 부분들을 어느 한 개인의 시각에서 서술한 역사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젊은쥐: 나 역시 「태평양 횡단 특급」이 당대의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면서 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듀나가 국민국가(nation-state) 체제를 넘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가은: 다양한 지명들이 나오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아즈텍 신성 공화국’이다.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의 기술과 전근대적인 종교 의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희생자로 선택된 어린 소녀가 무언가 특별한 반란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그저 홀로 우뚝 서서 신학자를 노려보다가 제단을 뛰쳐 나오지 않나. 그러면서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되고. 이 부분에서 갑자기 벅차오르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젊은쥐: 그런데 아이를 도움으로써 국제철도회사가 여태까지 고수해 온 중립주의가 무너진 것이 아닌가? 이전까지는 어느 편도 들지 않음으로써 모든 지역을 가로지를 수 있는 권리를 얻어왔는데, 주인공이 아즈텍에서 벌어진 일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쓴 것 같다. 결말은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
오온: 아즈텍을 마지막으로 무너뜨림으로써 세계 모든 대륙을 잇는 철도가 완공되었으니 국제철도회사의 중립주의가 무너지더라도 문제 없었을 것 같다. 회사가 전 세계를 장악했으므로 이제 이념은 더 이상 중요치 않은 거다. 게다가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서 주인공이 남편의 ‘사람 좋은 미소’를 쳐다보면서 그의 순진함을 가엾게 여기는 동시에 내심 부러워하지 않나. 희생당하는 소녀를 구하는 데에도 끊임없이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비정한 여성 지배자라는 표상, 바로 그로 인해 그녀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씁쓸한 감정. 이 모든 것이 압축적으로 전달되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니었나 한다.
가은: 남편이 국제철도회사의 모순과 허상을 계속해서 지적하지만, 그 자신도 마지막에는 소녀를 구하고는 감상에 빠진다는 점, 그로써 그가 줄곧 비난하던 제국주의적 논리에 호응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소녀를 구하는 장면을 보면서 감상적으로 되지 않나. 어쨌든 이 냉철한 여성이 결국 소녀를 구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런데 소설을 자세히 읽다 보면 아즈텍은 이미 쇠퇴하고 있었고, 종교적 지배력도 꽤나 약해진 상태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바로 그랬기 때문에 소녀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성 주인공은 역사적 조건들과 그 위에 쌓인 우연들을 파악하고 계산하는 주체인 거다. 이렇게 역사의 우연성을 계속해서 암시함으로써, 이 이야기가 단순히 휴머니즘적인 구원 서사로 빠지지 않도록 분명히 한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주영: 소설을 읽다보면 ‘모르겠다’는 표현이 몇 번 등장한다. 아즈텍에서 반종교 혁명이 일어났을 때 신학자가 왜 자리를 피해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지 않았는지, 주인공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주인공 역시 아즈텍에서 소녀를 구함으로써 왜인지 ‘모르겠는’ 선택을 하지 않나. 물론 이미 모든 상황을 계산해두고 있긴 했지만. 이 둘의 ‘모르겠는 선택’이 대비되는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온: 주인공이 아버지로부터 국제철도회사가 고려를 무너뜨린 이야기를 동화처럼 들어왔다고 서술하는 부분이 있다. 이때 회사는 고려로 향하는 모든 물류를 차단함으로써 고려인들을 폭력적으로 복속시킨다. 반면 주인공이 아즈텍을 무너뜨릴 때에는 희생당하는 소녀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아즈텍인들을 인도적으로 해방시킨다. 나는 이와 같은 대비가 여성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의 양가성을 드러낸다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듀나는 “20세기 후반의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가 로컬을 해방하는 동시에 구속하는 아이러니”를 “가부장적 권력을 상속받은 여성 통치자라는 혼종적 인물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1] 게다가 혁명가 출신이지만 물질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관념론자 남편과, 신을 섬기지만 정신보다 물질을 중시하는 유물론자 신학자가 벌이는 아이러니한 논쟁에서 당대 한국 남성 지식인들에 대한 듀나의 삐딱한 시선을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태평양 횡단 특급」은 지구화와 신자유주의화의 가속화, 민족주의적 민주화 운동의 점차적인 소멸, 여성운동으로 대표되는 소수자 정치의 등장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1990년대의 한국을 압축적으로 형상화한 텍스트가 아닐까 한다.
[1] 강은교(2022). “페미니스트 세계만들기(worlding)로서 듀나의 SF에 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52쪽.
가은: 1990년대의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듀나가 당시의 흐름에 쉽게 동요하지 않으면서 상당히 세련된 이야기를 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최근 1990년대를 세상 ‘힙’했던 시대로 재조명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민족주의를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내장하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틀 안에서 페미니즘과 여성서사를 사유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시대이기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러한 당시의 분위기를 다소 시니컬하게 느껴질 만큼 멀리하고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꼭 문단이 아니더라도, 당시의 시대적인 분위기와 그것이 주는 압박이라는 게 분명히 있었을 텐데도 그렇다.
주영: 어떤 면에서 동시대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민으로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란 중립성, 무해함, 귀여움 같은 것들이지 않나. 요즘은 다들 자신이 얼마나 중립적인 사람인지 어필하는 데 무진장 애를 쓰는 것 같다. ‘중립 기어를 박는다’는 표현이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하지만 듀나는 이 소설에서 내내 중립주의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중립이라는 기치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실감하고 있기도 하다.
가은: 게다가 주인공이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어왔던 고려 정복 무용담이, 사실은 아버지가 뒤에서 조작한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서술이 나온다. 그러니까 듀나는 회사의 중립주의가 가부장적 ‘신화’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여성 주인공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이로부터 아버지와 남편이 거대 담론에 기댐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신화화하거나 탈역사화하는 반면, 여성 주인공은 이 모두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을 짚어낼 수도 있겠다.
3.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여성 주인공이 만들어 나가는 ‘듀나 월드’
주영: 두 작품을 읽으면서, 듀나가 남성 인물을 의식적으로 후경화함으로써 여성 주인공을 전경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컨대 「태평양 횡단 특급」의 첫 장에서부터 남편을 처형했다고 언급하지 않나. 게다가 아버지가 아들이 아닌 딸에게 회사를 물려준 이유가 별달리 제시되지 않는데,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설명을 비워둔 것 같았다. 듀나가 이렇게 남성 인물을 제거한 다음 여성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논해보면 좋겠다.
유진: 실제로 듀나의 소설에서 남성 인물, 특히 중년 남성은 일찌감치 죽거나 사라진다. 남성 인물이 소설의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아주 드문 경우에서조차, 드라마라고 할 만한 것이 주어지지 않아 감정 이입의 여지가 별로 생기지 않는다. 일례로 ‘민트’라는 이름의 소녀가 한 남성의 에너지를 흡수해 민트의 방주를 만들어 우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장편 『민트의 세계』(창비 2018)를 들 수 있다. 아마 듀나가 남성 인물을 일찌감치 제거하는 이유는 듀나의 많은 소설들에서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존의 세계는 무너졌으며, 이제 소녀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남성 인물의 죽음을 여성 주인공이 극복해야 하는 실존적・변증법적 통과 의례로 거창하게 의미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듀나는 이를 무정하게 느껴질 만큼 간단하게 처리해 버린다.
오온: 동의한다. 듀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되, 애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저 여성 주인공의 앞에 놓인, 있는 그대로의 현실일 뿐인 거다.
주영: 그러면서도 듀나는 기존의 세계, 아버지의 세계를 아예 존재한 적 없었던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는 것 같다. 「태평양 횡단 특급」에서 여성 주인공이 아버지의 중립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방법을 찾지만, 필요할 때에는 다시 중립주의를 빌리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짓는 이야기라기보다, 아버지가 남겨놓고 간 세계에서 여성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듀나의 소설은 매우 장르적이며, 그만큼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적인 세계를 그립니다. 그러면서도 듀나는 여성 주인공의 앞에 놓인 낯선 세계가 아버지가 남긴 끔찍한 유산들로 가득한 혼란스러운 세계라는 점을 숨기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듀나는 단순히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섬찟하게 경고하거나(디스토피아), 지금-여기보다 ‘더 나은’ 세계를 대안으로 두루뭉술하게 제시하는 데(유토피아) 그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특유의 아이러니한 유머 감각으로 가부장적 세계의 균열을 비틀어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개입 지점들을 만들고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바로 이것이 듀나의 소설을 페미니즘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탁월하게 만들어 주는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모임에서 1990년대 듀나의 페미니스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다루었다면, 다음 모임에서는 2010년대 이후 듀나의 페미니스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다음에는 듀나의 어떤 작품들을 함께 읽을지, 듀나의 페미니스트 시각은 이십 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어떻게 변화했을지, 듀나의 SF로부터 어떠한 페미니즘적 통찰을 얻을 수 있을지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리 : 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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