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아이돌의 다목적 남성성: 대안도 혁명도 아닌

⚓️오온

1. 서구의 ‘미래’가 된 케이팝 남성성

얼마 전, 방탄소년단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 하이브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체 《위버스 매거진》에 〈LGBTQ+가 K-팝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시되었다(기사 보기). 다양한 퀴어 정체성을 가진 다국적 케이팝 팬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기사는 가족과 사회에서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성소수자들에게 케이팝 팬덤이 대안적인 커뮤니티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성혼 법제화는 요원하거니와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마저 지지부진한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한국에서 시장 가치가 가장 높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운영하는 공식 매체에서 케이팝의 LGBTQ+ 팬덤을 단독으로 다룰 만큼 글로벌 문화 시장에서 ‘K-’와 LGBTQ+의 만남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여기에는 케이팝 음악이 전달하는 희망적인 메시지와 케이팝 아이돌이 상연하는 모호한 젠더 표현이 전 세계의 수많은 LGBTQ+,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소구하면서 글로벌 팬덤이 형성된 배경이 자리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구의 학계는 케이팝을 퀴어하고(C. Oh, 2015) 혼종적인(Anderson, 2014) 젠더・섹슈얼리티 표현을 가능케하는 장으로서 적극 의미화하곤 한다.

이는 방탄소년단의 이례적인 성공을 다루는 외신이 이들의 남성성에 특히나 주목하는 이유이자 배경이다. 예컨대 미국의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는 〈방탄소년단의 무한한 낙관주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애정, 그들의 삶과 가사에서 드러나는 연약함과 솔직함”이 미국의 규범적인 남성상—근육질의 마초적인 백인 남성—과 비교할 때 훨씬 어른스러우며, 마치 미래를 보는 것 같다고 극찬한다(기사 보기). 또한,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방탄소년단의 위업’에 대해 논하면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화장을 하고 머리를 화려하게 염색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 하며, 이는 경직된 남성성 관념에 대한 그들의 본능적인 거부감을 반영한다”고 평한다(기사 보기). 이와 같은 평가는 서구에서 아시아 남성이 비남성적이고 탈성애화된 존재로서 인식되어 왔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케이팝 남자 아이돌이 글로벌한 인기를 얻으면서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 남성이 점차 잘생기고 매력적이며 섹스 어필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케이팝이 서구의 인종적・젠더적 상상계에 자리한 아시아 남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에 도전할 수 있다는 분석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C. Oh, 2015; Anderson, 2014).

그러나 이와 같은 평가는 이미 많은 논자들이 지적했듯 서구의 백인 남성성을 기준으로 아시아 남성성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종적 위계에 기반해 있으며, 여성화된 아시아 남성성이라는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을 또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하기에 문제적이다(Lee et al., 2020; 김수연, 2021). 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 논의의 초점을 보다 가까운 곳으로 옮겨 주로 서구, 특히 미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케이팝 남성성에 대한 평가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 재생산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만약 케이팝 남자 아이돌이 상연하는 남성성이 ‘대안적’이라면, 그것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엇에 대안적인가? 어느 한 맥락에서 ‘대안적’인 것이 다른 맥락에서도 ‘대안적’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남성성은 결국 텅 빈 기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케이팝 남성성에 대한 서구의 담론을 한국에서 적극 승인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는 무엇인가?

2. 초국적 여성 팬덤의 응시 아래에서, 한국 사회의 호모포비아에 기대어

2018년 5월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앨범이 한국 대중음악 최초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이후, 한국 언론과 학계는 한국의 맥락에서는 다소 뜬금없이 느껴지는 이들의 성공을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이때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 위안과 희망을 전달하는 가사, 소셜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 이 모두를 관통하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등과 더불어 이들의 ‘성공 비결’로 전면에 제시된 것은 방탄소년단의 ‘부드러운 남성성(soft masculinity)’이다. 대표적으로 홍석경은 저서 『BTS 길 위에서』에서 방탄소년단의 ‘해롭지 않은 남성성(anti toxic masculinity)’이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으로 대표되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안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방탄소년단의 남성성이 갖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화장을 하고 스스로를 가꿈으로써 여성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둘째, 이들은 무대 위에서도 무대 뒤에서도 상냥하고 다정할 뿐만 아니라 남성성에 대한 어떤 통념에도 개의치 않고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셋째, 이들은 동성 간 사회적・신체적 친밀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홍석경, 2020: 250-256). 앞서 살펴본 미국 매체들의 논의와 대동소이한 분석이다. 애시당초 주어진 과제의 목적이 방탄소년단의 ‘세계적인’ 인기—여기서 ‘세계’란 사실상 서구를 뜻한다—를 설명하기 위함인 이상,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유사한 국내의 수많은 논의들이 그저 서구의 담론을 그대로 재생산한다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남성성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온 맥락과 구조에 대한 설명을 누락함으로써, 원인과 결과를 뒤섞는다는 데 있다. 먼저, 현재 보편적인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젠더 표현—짙은 눈 화장, 슬림한 체형, 관리된 체모 등—은 “이성애적 욕망을 중심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강은교, 2020: 63)에서 산업이 오랜 기간 동안 초국적 여성 팬덤의 욕망에 부응하는 남성성 표현을 실험하고 정교화해온 결과다. 허윤이 지적한 것처럼, “색다른 연출과 퍼포먼스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양한 남성성을 기획, 실험해 볼 수 있는 케이팝 공간에서 퀴어함은 곧 헤게모니다(허윤, 2022: 104).” 특히 공격적이고 여성혐오적인 ‘힙합 남성성’을 표방하며 데뷔하였으나 큰 성과를 얻지 못하면서 음악적・시각적 측면 모두에서 변화를 주어야만 했던 방탄소년단의 경우, (그러한 변화가 결과적으로 서구 사회에 “긍정적인 롤모델”(기사 보기)을 제시했다고 평가되는 것과 별개로) 이들의 ‘대안적인’ 남성성이 다른 무엇도 아닌 시장 논리에 따른 ‘대안’이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케이팝 아이돌 동성 멤버들 간의 거리낌 없는 친밀한 감정 표현은, 동성애적 욕망이 문화적 해석의 시민권을 얻지 못한 한국 사회 그리고 이성애적 욕망을 기본값으로 상정하되 연애와 결혼을 비롯한 이성 간의 독점적인 친밀성 교환은 금기시되는 케이팝 아이돌 산업의 이중적인 규범 체계하에서 발달한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의 독특한 한 형태다. 홍석경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동성 친밀성이 동성애를 반박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지만(홍석경, 2020: 255), 거꾸로 이들의 동성 친밀성은 그 자체로 동성애적 욕망의 상징적 억압을 조건으로 한 것이다. 더 나아가, 케이팝 아이돌 산업에서 팬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이돌 그룹이 깨지지 않는 ‘하나’라는 환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룹 ‘내부’의 결속을 해치거나 초과하는 ‘외부’와의 관계는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고 규제된다. 그룹 내 동성 멤버들 간의 관계야말로 케이팝 아이돌이 자유롭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친밀성의 유일한 형태인 것이다. 특히 주로 여성 팬덤의 응시 하에 놓인 남자 아이돌의 경우, 이러한 관계가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성립되는 통상적인 동성사회성[1]의 마초적이고 위계적인 결속이어서는 안 된다는, 언제나 다정하고 애정 어린 유대여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남자 아이돌과 여성 팬덤의 일대다 관계에서 교환의 주체는 환상적으로나마 여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기이하게 ‘퀴어’한 동성사회성은 동성 간의 친밀한 감정 표현이 곧 동성애적 관계를 의미한다는 서구 사회의 유성애중심적 통념에 ‘개의치 않은’ 결과라기보다, 여성 팬덤의 욕망에 조응하는 친밀성의 양식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동성 간의 성적 욕망은 존재할 수조차 없다는 한국 사회의 이성애중심적・동성애혐오적 통념에 적극적으로 ‘기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테다.

[1] 이브 세지윅에 따르면, 남성 동성사회성은 여성 교환과 호모포비아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가부장적 권력의 유지와 이양에는 남성들 사이의 유대가 수반되는데, 이 관계가 동성애로 오해되지 않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성적 대상—여성—을 교환하는 거래가 필요하다. (Sedgwick, 1985)

3. BTS 성공 신화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

나는 이렇게 방탄소년단에 대한 ‘해외 반응’을 주워섬기는 한국의 논자들이 방탄소년단을 지금의 방탄소년단으로 만든 케이팝 산업의 수많은 역설적인 조건들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들이 그러한 조건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함으로써, 정구원이 이지영의 저서 『BTS 예술혁명』의 서평에서 지적한 바처럼 방탄소년단을 “역사적 맥락을 초월, 혹은 무시한 영역”(정구원, 2018)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이들의 연구와 논평은 방탄소년단이 여타의 케이팝 아이돌 그룹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을 공통되게 고수하면서도, 막상 그 ‘다름’을 여타의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나 팬덤 문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데는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다소 선택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지행은 방탄소년단의 성공 뒤에는 그들의 팬덤인 ‘아미’가 있었음에 주목하면서 이들이야말로 (이전의 케이팝 해외 팬덤과는 다른) “진정한 글로벌 팬덤”이라고 호명한다(이지행, 2020: 81). 이때 ‘아미’를 예외화하는 근거는 방탄소년단이 미국을 위시한 전 세계에서 이룩한 산업적 성과 지표다. 그룹의 전례없는 성공이 곧장 팬덤의 다양한 실천을 전례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지행은 여타의 케이팝 해외 팬덤에도 해당되는 많은 특징—글로벌 투표 참여, 한국어 공부, 팬덤 번역 등—을 ‘아미’의 전유물로 치환한다(이지행, 2019). 이로써 ‘아미’가 다른 케이팝 아이돌 팬덤과 질적으로 다른 이유는 방탄소년단의 성과가 양적으로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며, 방탄소년단이 양적으로 전무후무한 성과를 거둔 이유는 ‘아미’가 다른 팬덤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묘한 순환 논리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동연이 지적했듯,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BTS의 지표들은 시간과 공간을 고려하여 상대적인 관점에서 독해되어야 하며, 그것을 절대화하는 순간, 지표의 신화 안으로 갇히게 된다(이동연, 2019: 178-179).” 지표에 기댄 예외화는 방탄소년단의 성공 신화를 강화할 수는 있을지언정, 정작 방탄소년단의 유례없는 성공이라는 현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는 실패한다.

다시 남성성에 대한 논의로 돌아와서, 핵심은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독특한 남성성이 “지정학적 위치를 기준으로 봤을 때 서구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아시아 남성성이지만, 초국적 트랜스미디어를 통해 최대한 많은 팬의 요구를 충족하려는 ‘제조된 다목적 남성성’이기도 하다”는 점(김수연, 2021: 164), 이로부터 방탄소년단 역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제조된 다목적 남성성(manufactured versatile masculinity)’이란 초국적 여성 팬덤에 소구하기 위해 ‘초식남’에서부터 ‘짐승돌’에 이르는 다양한 모습을 상연해 온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남성성을 설명하기 위해 정선이 고안한 개념이다(S. Jung, 2011). 그에 따르면 케이팝 아이돌의 남성성은 “다층적이고, 문화적으로 혼성적이며, 동시에 모순적이고 무엇보다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Ibid.: 165, 인용자 강조). 

김구용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방탄소년단의 ‘대안적인’ 남성성은 ‘Love Yourself’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자기 돌봄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약화시키기보다는 물화하고 수용할 수 있다(G. Kim, 2022: 139).” 방탄소년단의 기획사가 노래, 뮤직비디오, 컨셉북, 모바일 게임, 웹툰 등을 넘나드는 트랜스미디어 콘텐츠로 이루어진 메타 내러티브 세계 ‘방탄 유니버스(BU)’를 통해 구축한 이야기—자유와 청춘을 낭만화하는 유토피아적・노스탤지아적 이상,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아미’의 공으로 돌림으로써 팬들에게 그들의 금전적・감정적 투자가 보상받았다는 성취감을 선사하는 성장 서사 등—는 “사회적 지위 상승과 자기 임파워먼트를 위한 자기 돌봄, 개선, 투자라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지탱”한다(Ibid.: 135). 이러한 점에서 방탄소년단은 신자유주의 시대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변화, 즉 “생산지향적 남성성으로부터 소비지향적 남성성으로의 문화적 전환을 표상”한다(Ibid.: 139). 결국 이들의 남성성은 그에 따라붙는 ‘대안’, ‘해방’, ‘미래’와 같은 수사가 시사하는 바와는 달리, 구조적 젠더 불평등에 사실상 도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사회에서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무해한’ 아시아 남성성이 ‘유해한’ 백인 남성성의 ‘대안’이자 ‘미래’로 여겨진다면, 우리는 여태껏 문화적 변두리에 위치했던 한국이 무려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 ‘대안’을 제시했다는 우월감에 잠식될 것이 아니라, 케이팝의 남성성을 다목적적인 것으로 제조해온 사회적・문화적・산업적 동인과 그것이 ‘한국적인’ 맥락에서 탈구되어 글로벌한 대표성을 갖게 된 경제적・지정학적 조건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케이팝의 남성성—더 나아가서는 케이팝의 미학—이 담지한 가능성과 한계를 정치하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4. ‘모두를 위한 케이팝’의 아이러니

결론을 대신하여, 나는 케이팝의 글로벌한 성공을 가능케 한 핵심이 바로 케이팝의 태생적 한계를 조건짓기도 한다는 점을 짚고자 한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많은 연구가 지적하듯, 현재 케이팝이 누리고 있는 글로벌한 위상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목소리를 통해 서로 다른 언어, 문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적극적인 참여자이자 충성스러운 소비자로 포섭하는 데 성공하면서 확보된 것이다. 이는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몇몇 케이팝 아이돌이 미국의 #BlackLivesMatter, #StopAsianHate 운동에 지지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케이팝이 확보한 광범위한 문화적 대표성은, 한국에서 아이돌이 탈정치적인 존재이길 넘어 정치에 대한 ‘입장 없음’을 강요받는 존재로 위치지어짐에 따라 소비자-대중과 ‘소비자-팬덤’(김수아, 2020)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요인들을 하나둘씩 제거함으로써 만들어낸 텅 빈 표상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는 케이팝이 지금과 같은 글로벌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의 입장과도 불화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케이팝 아이돌이 입장을 밝혀야 하는 문제가 중국계 멤버의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 여부에서부터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이슈까지 아우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방탄소년단의 글로벌한 성공에 힘입어 케이팝이 (주로 서구에서) 획득한 대표성을 그저 신문화제국주의적인 어조로 기념하는 대신, 케이팝이 서로 다른 위치와 맥락에서 수용될 때 발생하는 균열과 단차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논의가 케이팝 남성성을 ‘퀴어’한 것으로 해석하고 재전유하고자 하는 케이팝 LGBTQ+ 팬덤의 실천을 무용한 것으로 일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님을 덧붙이고자 한다. 오히려 LGBTQ+ 팬덤의 존재가 그 자체로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남성성을 ‘대안’으로 인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비판한 대부분의 연구가 범하고 있는 이와 같은 오류는 LGBTQ+ 팬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기보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신화를 강화하기 위해 이들의 정체성과 행위성을 전유하는 것에 가깝다. 서로 다른 욕망과 관점을 가진 수많은 팬들을 ‘아미’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호명함으로써 때로는 우호적이고 감응적이지만 때로는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케이팝 팬덤 문화를 그저 혁명적이고 대항적인 것으로 이상화하려는 시도 속에서, 마치 ‘해외’ 또는 ‘서구’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상정되곤 하는 케이팝 LGBTQ+ 팬덤의 해석적 개입은 방탄소년단의 성공 신화에 이국적인 색채를 더해주는 장식에 그치고 만다. 만약 어떠한 문화 텍스트—혹은 그 속의 ‘최애’—가 ‘퀴어’해지는 것이 수용자와의 관계 속에서라면(윤태은, 2022), 케이팝의 퀴어니스에 대한 담론은 팬-해석자들의 서로 다른 위치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섣불리 동질화하거나 총체화하지 않을 때 비로소 유효해질 것이다. 


참고 문헌

  • Anderson, C. S. (2014). “That’s my man! Overlapping Masculinities in Korean Popular Music”. Y. Kuwahara (ed.), The Korean Wave. New York: Palgrave Macmillan. 117–131.
  • Jung, S. (2011). Korean Masculinities and Transcultural Consumption. Hong Kong: Hong Kong University Press.
  • Kim, G. (2022). “BTS, Alternative Masculinity and Its Discontents”. Y. Kim (ed.), The Soft Power of the Korean Wave: Parasite, BTS, and Drama. New York: Routledge. 129–141.
  • Lee, J., Lee, R. and Park, J. (2020) “Unpacking K-pop in America: The Subversive Potential of Male K-pop Idols’ Soft Masculinity”.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14. 5900–5019.
  • Oh, C. (2015). “Queering Spectatorship in K-pop: The Androgynous Male Dancing Body and Western Female Fandom”. Journal of Fandom Studies. 3(1). 5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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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은교 (2020). “케이팝(K-pop) 아이돌의 자필 사과문: 손글씨의 진정성과 팬덤의 소비자 정체성”. 『여성문학연구』 제51호. 36–71쪽.
  • 김수아 (2020). “소비자-팬덤과 팬덤의 문화 정치”. 『여성문학연구』 제50호. 10–48쪽.
  • 김수연 (2021). “‘방탄소년단’과 아시아 남성성—탈제국화와 트랜스미디어를 중심으로—”. 『인문과학』 제82집. 143–175쪽.
  • 이동연 (2019). “방탄소년단의 신화는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문화과학』 제97호. 176–201쪽.
  • 이지행 (2019). 『BTS와 아미 컬쳐』.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 ____ (2020). “서구 미디어의 지배담론에 대한 방탄소년단 글로벌 팬덤의 대항담론적 실천 연구”. 『여성문학연구』 제50호. 79–114쪽.
  • 윤태은 (2022). “최애에게 퀴어하다는 메달 걸어주기”. 『서울대저널』 제173호. http://www.snujn.com/news/56633
  • 정구원 (2018). “팬덤 비평의 가능성 혹은 한계, 『BTS 예술혁명』”. Heterophony. https://heterophony.kr/bts-art-revolution/
  • 허윤 (2022). “무해한 오빠에서 의리있는 남자로”. 류진희, 백문임, 허윤 기획. 『페미돌로지』. 서울: 빨간소금. 102–123쪽.
  • 홍석경 (2020). 『BTS 길 위에서』. 서울: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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