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d Vol.7 ‘덕질’: 욕망과 윤리 사이 기획의 변

📬최가은

1.

2022년 1월 20일부터 7월 7일까지 대략 6개월간 방영된 공중파 예능 〈주접이 풍년〉은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한 ‘덕질’의 탐구를 표방했다. 이 프로그램은 덕질의 “최신 트렌드”가 된 ‘주접’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이를 긍정적인 놀이 문화로 재배치하는 데 목적을 둔다. 총 23회의 에피소드가 방영되는 동안 스타 덕질의 표본인 아이돌 그룹 및 그들의 팬덤은 물론, 트롯 가수, 스포츠 선수, 시인, 스타 강사, 희극인 그룹과 같은 다양한 덕질의 대상과 그 팬덤이 출연했다.

여러 영역과 장르를 가로지르며 나타나는 ‘주접’, 즉 유난한 덕질 행위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지만, 프로그램 전체의 패턴은 유사하다. 대개의 에피소드는 이른바 덕질로 이해되는 팬덤의 기이한 행위들, 가령 스타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동일시와 사랑, ‘반복적’, ‘열정적’ 과소비와 같은 행위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닌 이들을 발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가족 및 친구들로 구성된 이들 팬덤-반대자의 우려 섞인 선입견을 먼저 제공하여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산 뒤, 주접이 지닌 ‘의외의’ 긍정적인 효과를 전시하며 반전을 노리는 것이다. 주접의 긍정적 사례는 팬덤과 스타 간 행해지는 ‘수평적’인 관계 맺기 방식에서부터, 단순한 수용자가 아닌 기획자이자 편집자로, 즉 스타 산업의 구성원으로 재조정된 팬덤의 위상까지 다양하다. 특히 불행한 일상을 살던 이들이 누군가의 ‘덕후’가 된 이후에 얻게 된 강렬한 삶의 행복과 기쁨은 빠지지 않는 이야깃거리다. 이러한 정보를 통해 덕질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팬덤-반대자는 마침내 해당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스타들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그들의 매력을 이해하게 되고, 급기야 이들 덕질에 동참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주접이 풍년〉은 동시대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요인인 덕질이 이해되어 온 역사 자체를 보여준다. 덕질 반대석에 앉은 이들을 통해 이른바 ‘빠순이’와 ‘오타쿠’ 문화를 미성숙한 ‘영어덜트’ 계열의 음지 문화로 배치해 온 그간의 여러 대중 담론이 환기되는데, 무려 이들을 스타와 팬이 직접 감화시키는 구성은 덕질을 일종의 ‘건강한’ 또는 ‘생산적인’ 영향력을 지닌 놀이 문화로서 동질화하여 재배치하려는 최근 우리 사회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한 에피소드 내에서 팬덤 실천의 의미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전환되는 전개는 곧 한국 사회가 덕질에 던져온 시선의 변화 과정에 상응하는 것이다.

어떻게 덕질은 갑작스럽게 이처럼 많은 문화 영역에서, 이토록 다양한 방식으로 승인받게 된 걸까. 남자 아이돌 그룹 역사상 이례적으로 대체 복무 논쟁까지 불러일으킨 방탄소년단의 ‘국위 선양’, 즉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 사례는 물론, 페미니즘이 최근 청년 세대의 주요한 정서적 기반이자 갈등 요인으로 지시되는 과정에서 재구성된 문화의 의미 등 다양한 맥락이 그 배경으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덕질’과 ‘최애’, ‘영업’과 ‘주접’ 등의 표현이 말 그대로 범람하는 요즘의 풍경은 한국 사회의 여러 특정한 현상을 설명하기에 ‘덕질’만큼 편리한 용어가 없다는 사실만을 방증하는 듯하다. 비로소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K-컬처와 팬덤의 힘,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기력’을 극복하게 한 정치권의 팬덤화 등과 같은, 다분히 덕질 논리에 기반한 현상 진단은 개별 사안을 특징 짓는 온갖 복잡한 맥락을 소거하고 이를 해석할 손쉬운 해법을 제시한다.

이처럼 사회 문화 대부분의 현상이 ‘덕질’이라는 이름 아래 착실히 범주화되는 가운데, ‘덕질’의 젠더화된 용례 및 그것의 실천이 내재한 시장화 문제에 관한 생산적인 논쟁은 대중 담론에서 소외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 담론은 팬덤에 대한 대중의 긍정적인 주목을 이론적으로 지지하거나, 그러한 입장이 누락하는 팬덤의 역사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에 집중을 요청하는 팬덤-비판 연구로 양분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덕질이 이처럼 위안과 행복이라는 상찬 혹은 무임 노동 및 소비자 정체성이라는 오명 사이에 놓일 때, 덕질에 내재한 모순되고 양가적인 감정과 이를 직접 행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팬 개인, 또는 팬덤의 문제들은 의심되지 않는 채로 지속된다. 나를 ‘성공한 덕후’로 만들어주었다가 돌연 범죄자가 된 ‘오빠’ 때문에 그간의 덕질은 물론 인생 자체가 오염된 너무 많은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성덕〉의 씁쓸한 어조는 이 풀리지 않는 여러 문제를 상기한다. 영화는 덕질에 내재한 문제와 가능성을 동시에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여전히 어떤 질문들은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대담 보기).

2.

Fwd 필진들은 동시대를 ‘덕질’과 함께 살아가는 현상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로서, 이 해명되지 않는 질문 앞에 모여보기로 했다.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이 질문들이 모두 각자의 욕망과 윤리, 그 사이에서 서성이는 동안 축적된 것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덕질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역으로 의미화하는 일에 주력하기보다, 덕질이라는 행위 자체에 내재해 있는 모순된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기획의 방향을 잡아간 것은 그 때문이다. 수 차례의 ‘덕질’ 세미나를 거친 7호 기획 멤버들은 오랜 논의와 토론을 거쳐 “‘덕질’: 욕망과 윤리 사이”라는 전체 주제를 정하고, 크게 세 가지 하위 테마에 속하는 여섯 편의 글을 발행하기로 했다.

하위 테마는 자기고백, 참여관찰, 메타비평이다. 모든 덕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덕질을 정당화하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다시 말해, 덕후는 계속해서 자신의 덕질 ‘썰’을 풀어내고 남들의 덕질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덕질 행위를 정당화하고 덕질 대상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인정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러한 정당화와 인정의 근거가 충분히 ‘객관적’이지 않다는 의심에 시달리며 덕질이라는 행위의 의미를 반성적으로 검토하고, 더 나아가 덕질을 둘러싼 ‘장르’ 내외부의 담론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세 가지 하위 테마가 모두 연구 방법인 동시에 지극히 ‘오타쿠’스러운 실천이라는 것을 눈치채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연구자이면서 오타쿠인 7호 필진들이 내부자이면서 동시에 외부자적 시각에 입각하여 전개한 여러 관찰과 고민의 결과는, 샌드라 하딩이 이야기한 여성 연구자들의 위치성—‘내부에 있는 외부인들(outsiders within)’—을 상기한다. 우리의 ‘오타쿠’적 실천은 “‘외부인들’의 삶과 ‘내부인들’의 삶, 그들이 애용하는 개념체계들 사이의 틈새에 대해 숙고하여 객관성을 향상시킬 수 있”기를 꾀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 방법론의 일환이기도 하다(하딩 2009: 203). 

첫 번째 테마인 ‘자기고백’에는 정연과 다현의 글이 속한다. 이들은 페미니스트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덕질의 현실적인 고민을 통과한다. 최근 페미니스트-덕후라는 자기 정체성에 기반한 작업물과 연구 담론의 생산이 활발하다. 이와 같은 흐름은 페미니스트 정체성과 덕질 간의 복잡한 관계가 사회적 현상의 일부이기 이전에 개개인의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연의 〈얼룩진 덕질로 힘겨워하는 페미니스트에게〉는 ‘어덕행덕’과 ‘탈덕’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실제 삶의 양태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글쓴이의 간절한 소망으로부터 비롯된다. 나에게는 이 글이 페미니스트라면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규범으로 서로의 삶을 재단하기보다 규범에 일치하지 않는 삶들을 받아들이고 우선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제안으로 읽혔다. 

다현의 글 〈힙합을 애증하는 페미니스트 여기 있음〉 역시 직접 랩 가사를 쓰고 힙합 장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페미니스트의 자기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이제는 정말이지 ‘대중적’인 장르이면서도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에토스가 지배적인 힙합 신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이며, 또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힙합을 지속적으로 향유해온 리스너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는 다현은 우선 분명하게 ‘여기 있는’ 자신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다현은 ‘힙합을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라는 겉보기에 충돌하는 듯한 정체성을 숨겼던 경험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름 아닌 페미니스트로서 힙합을 전유한 경험 사이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열망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두 번째 테마는 팬덤-오타쿠 참여관찰 사례연구이다. 리예, 우엉의 글이 여기에 속한다. 리예의 글 〈오타쿠는 관계를 맺고 싶어: 자캐커뮤를 중심으로〉는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놀이 문화인 ‘자캐커뮤’를 ‘관계’라는 렌즈를 통해 접근한다. ‘자캐커뮤’를 즐기는 연구참여자들은 무엇보다 캐릭터 간 관계 맺기를 즐기며, 이 관계성을 ‘공평하게’ 배분하기 위해 여러 규범을 만든다. 리예는 이들이 내보이는 관계에 대한 욕망 및 평등에 대한 요구로부터 오늘날 ‘덕후’들의 ‘덕질’을 새롭게 조망할 단서를 찾고, 나아가 덕질의 일반적 의미를 재구하고자 한다. 이 글은 ‘덕후’들의 서로 다른 ‘장르’가 겉으로는 전혀 교집합을 이룰 것 같지 않아 보임에도 결국 ‘덕질’이라는 방법론 하에 공명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통찰을 드러낸다.

우엉의 〈미소녀를 뒤집어쓴 남성들〉은 팬데믹 이후 부쩍 주목받기 시작한 ‘메타버스’에 대한 참여관찰을 실행한다. 가상현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채팅 게임 플랫폼 VRChat은 미소녀 캐릭터를 뒤집어쓴 남성 유저들로 북적인다. 우엉은 이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VR 섹스에 주목함으로써, 남성 유저들이 미소녀 아바타와 맺는 동일시와 대상화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분석한다. 혹자는 이를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저항이자 대안적 남성성의 수행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실제 유저들이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양상은 그러한 분석에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만약 메타버스가 우리의 ‘미래’라면, 지금까지는 가상적이었으나 기술을 매개하여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욕망의 다양한 형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엉의 연구가 이를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테마에 속하는 필자들은 모두 장르를 메타적으로 비평한다. 오온의 글 〈케이팝 아이돌의 다목적 남성성: 대안도 혁명도 아닌〉은 케이팝 남자 아이돌 그룹과 관련한 현시점 가장 논쟁적인 문제를 다룬다. 오온은 방탄소년단으로 대표되는 케이팝 남자 아이돌의 남성성을 ‘대안적인 것’으로 상찬하는 서구의 담론이 한국에서 무비판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음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글은 최근 몇 년 간 케이팝 남자 아이돌을 문화면과 사회면에서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수식하는 ‘대안적 남성성’과 ‘폭력적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인식론 자체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또한 이는 K-컬처의 글로벌한 영향력 확대를 ‘승리’, ‘정복’과 같은 제국주의적 수사로 자축하는 기존의 ‘한류’ 담론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비판이기도 하다. 

송유진의 〈회빙환물의 여주인공은 페미니즘을 꿈꾸는가?〉는 오늘날 웹툰・웹소설의 클리셰 ‘뇌절’ 속에서 피어나는 즐거운 변용들에 주목한다. 최근 웹툰・웹소설계의 동향에 대한 대중적인 논의는 소위 ‘회빙환’(회귀・빙의・환생)으로 대표되는 클리셰의 반복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여러 장르의 웹툰・웹소설 중에서도 로맨스판타지 웹툰에 주목하는 이 글은 최근의 ‘로판’이 어떻게 기존의 장르 클리셰에 부응하면서도 이를 배반하는지,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동시대 여성 창작자-독자들의 욕망과 상호작용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로맨스판타지 장르를 둘러싼 논의의 지평에 메타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으로, 대중 장르의 한계를 섣불리 재단하기보다 개별 작품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도들을 보다 유쾌한 마음으로 관찰하며 따라가 보자는 제안이다. 

이제 우리의 삶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 ‘덕질’을 더 ‘나은’ 방식으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덕후들의 자기고백, 참여관찰, 메타비평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번 7호를 접한 독자들이 ‘덕질’에 대한 통념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하는 우리의 작업에 동참하기를 기대해본다. 반년여 간 준비한 7호 기획의 필진들은 조만간 공개 포럼을 통해 독자들과 만날 계획이다. 차례로 공개될 여섯 편의 글은 앞으로 펼쳐질 토론에 마중물이 되어줄 것이다. 


참고 문헌

  • Harding, S. (1991). Whose Science, Whose Knowledge?: Thinking from Women’s Lives,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조주현 옮김. (2009).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여성들의 삶에서 생각하기』, 서울: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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