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진

1. “이번 생은 망했다! 재벌집 막내아들로 다시 태어나자!”
최근 웹소설 원작 기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최고 시청률 26.9%라는 엄청난 실적을 거두며 종방했다. 이에 따라 웹툰/웹소설과 이에 기반한 2차 창작물들이 글로벌 K-콘텐츠 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었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직접 “제2의 ‘재벌집 막내아들’을 만든다”고 선언하며(기사 보기) 관련 사업 지원액을 크게 늘리는 등 정치적, 경제적 논의들이 잇따르기도 했다. 이는 최근 웹툰/웹소설 원작 기반 드라마화와 영화화가 활발해지고, 이들의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의 상업적 가치를 둘러싼 논의들이 증가하고 있던 상황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성공 원인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정서, ‘인생 리셋’에 대한 ‘MZ세대’의 욕망으로 분석하면서,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코드의 웹툰/웹소설을 현실 세계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자신의 원래 삶에서 고통받던 인물들이 손쉽게 인생을 리셋한 뒤 두 번째 기회를 얻어 승승장구하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서사는 ‘헬조선’, ‘이생망’을 습관처럼 부르짖는 오늘날 한국의 2~30대 젊은이들의 절망적인 현실과 맞닿아 있다. 계층 간 불평등이 심화한 사회 현실에 절망한 젊은이들이 문화 콘텐츠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하며, 이것이 ‘회빙환’물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기사 보기; 기사 보기).
다른 한편에는 ‘회빙환’물의 동일한 서사 반복, 즉 ‘뇌절’에 대한 비판이 자리해 있다. 이들은 ‘회빙환’물의 대표적인 서사-주인공이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이미 다 아는’ 세계에서 눈을 뜬다는 것, 그 세계는 내가 이미 지나온 과거이거나 혹은 몇 번이고 읽어서 외우다시피 하는 소설 속의 세계라는 것, 따라서 주인공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으며 이러한 지식을 기반해 미래를 성공적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것-가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서사 속에서 각 작품의 캐릭터와 사건 전개 방식은 독창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지속되는 표절 시비와 창의성 결여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기사 보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공정(工程)’이 아닌 ‘창작’이 필요하다는 준엄한 경고(백은지, 2022: 32)는 ‘회빙환’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회빙환’ 웹툰/웹소설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오랜 기간 축적되어온 장르 내의 경험과 맥락을 소거시켜버린다는 점, 또 ‘뇌절’에 대한 피로감에만 집중한 나머지 작품들 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흥미로운 변주들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선 오늘날의 웹툰/웹소설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 MZ세대’가 소비하는 콘텐츠이리라는 예측과 달리, 웹툰/웹소설 소비는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걸쳐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30대에서 50대에 속하는 이들의 소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회빙환’물에 대한 오늘날의 인기가 단순히 젊은 ‘N포 세대’라는 키워드를 통해서만은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기사 보기).
또한 ‘회빙환’이라는 클리셰가 이미 지겨운 ‘뇌절’ 수준에 이르러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주장과는 반대로, 클리셰 반복이 그 자체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장르의 규칙은 독자와 작가가 만들어낸 그 장르의 역사”이고, “진부한 세계관도, 시스템창도 그러한 ‘약속’”의 일부라는 지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장르가 어떤 규칙을 가지고, 어떤 유사성을 가진다는 것이 장르의 창작성을 저해하진 않”기 때문이다(김휘빈, 2022). 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모름지기 클리셰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반복되고 또 반복되어야 제맛이고, 장르의 진짜 매력은 수없이 되풀이되는 규칙과 유사성 속에서 발생하는 변주들 속에 있다고 본다. 장르 문법에 극도로 익숙해진 나머지 이를 마음대로 주무르며 갖고 노는 수준에까지 이른 창작자, 그리고 독자들이 무엇을 새롭게 발명해내는지, 어떻게 기존의 클리셰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립하고 뒤틀고 찢고 다른 것에 끼얹는지를 지켜봄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장르의 동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다루기 위해, 이 글은 지금부터 ‘로맨스판타지’(이하 ‘로판’)라는 웹툰/웹소설의 한 장르에 주목하고자 한다. ‘로판’은 ‘회빙환’ 코드가 가장 먼저, 또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어온 장르이자(안상원, 2018), 현재 웹툰/웹소설 시장에서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장르로도 얘기된다. 따라서 ‘로판’은 그간 장르의 효용과 의의, 한계를 둘러싸고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어오기도 했다. 특히 최근 몇 년 들어 페미니즘 리부트와 ‘여성서사’[1]에 대한 논쟁이 끼어들어 오면서, ‘로판’에 대한 논의는 훨씬 풍부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 글은 지금부터 ‘회빙환’물을 대표하는 장르 중 하나로서 ‘로판’에 주목하면서, 이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 논의를 정리하고, 이러한 논의들이 주로 어떤 지점에 주목해왔는지, 또 이런 관점을 통해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재미있는 변주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이 글은 2019년 전후의 한국이라는 고유한 시공간 속에서 전개되었던 논의의 결과 만들어진 특수한 개념으로 ‘여성서사’를 이해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서사’는 기존의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학/문화와 대비되는 것이자, 여성 캐릭터가 서사의 주축이 되어 이들 간의 우정과 사랑, 연대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야기 전반을 가리키는 범박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2. ‘로맨스판타지’=보수적인 장르?
‘로맨스판타지’란 ‘로맨스’와 ‘판타지’라는 두 장르 분류가 결합한 것으로, 쉽게 설명하면 여주인공이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 세계관에서 로맨스를 펼쳐나가는 내용의 작품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로판’을 ‘동로판(동양풍 로맨스판타지)’, ‘서로판(서양풍 로맨스판타지)’으로 다시 한번 나눌 수 있지만, 현재 ‘로판’ 카테고리에서 연재 중인 작품은 압도적으로 후자가 많다. ‘서로판’은 대부분 마법사와 드래곤, 정령 등이 존재하는 톨킨식 서구 판타지 세계관 속에서, 여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왕궁 혹은 귀족 사교계에 들어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회빙환’의 코드가 활발하게 사용되며, 여주인공이 자신의 목적-다른 인물에 대한 복수, 실패한 과거에 대한 후회의 해소, 혹은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남주인공-주로 공작, 왕자, 황태자, 황제 등-과의 로맨스를 키워나가는 내용이 주가 된다.[2]
[2] ‘로맨스판타지’라는 장르가 형성된 과정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이는 여러 장르들 간의 경합과 갈등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휘빈(2019)의 내용을 참조.
‘로판’에 대한 비평적, 학술적 논의들은 최근 몇 년 들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로판’이 2015년도 이후 각종 웹툰/웹소설 사이트에 별도의 카테고리로 분류되기 시작하고(김휘빈, 2019), 이에 속하는 작품들이 인기 웹소설 상위권 차트를 점령했던 상황이 있었다. 이후 대표적인 몇몇 인기 ‘로판’ 웹소설들이 웹툰으로 각색되고, 다음웹툰(현 카카오웹툰), 네이버웹툰 등의 지면에서 연재되기 시작하며 ‘로판’을 소비하는 독자층은 더욱 확장되었다. 즉 웹소설과 웹툰 영역 둘 다에서 ‘로판’이 갖는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로판’에 대한 학술적, 비평적 관심 역시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로판’이 동시대 여성 독자들의 욕망을 투명하게 담고 있는 장르라는 점이 여러 글에서 공통으로 지적되었다(권경미, 2022; 백은지, 2022; 서은영, 2020). 이는 ‘로판’이 여성이 창작하고 여성이 소비하는 장르라는 사실, 즉 매우 젠더화되어 있는 장르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었다. 창작자와 독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독자의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직접 전달되는 웹툰/웹소설의 특성상, 한 작품의 세계관과 서사는 이를 수용하는 이들의 의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로판’의 서사와 세계관, 캐릭터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오늘날의 여성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이러한 욕망을 어떤 방식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홍난지, 2022).
이런 전제에 기반해, 오늘날 유행하는 ‘로판’ 웹툰/웹소설의 서사가 어떤 한계를 가졌는지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오늘날 거의 공식화되다시피 한 ‘로판’의 서사 구조와 장치들을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의 갈래 중 첫 번째로는 ‘자기계발’, ‘알파걸’ 등의 키워드를 통해 ‘로판’의 서사를 읽어내는 것이다(안상원, 2018; 안상원, 2020). 이는 ‘로판’ 중에서도 특히 ‘회귀물’, ‘책빙의물’이라는 하위 장르를 들여다보면서, 이에 속하는 작품들 속 여주인공이 대부분 보수적인 자기계발의 논리를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로판’ 서사의 주인공들은 미래인 혹은 원작의 외부 관찰자로서 본인이 가진 지식을 자신의 생존과 성공만을 위해 활용할 뿐,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세계를 바꾸는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기계발의 논리에 갇혀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신계급주의’라는 관점을 통해 ‘로판’의 서사를 바라보는 것이다(권경미, 2022). 이는 ‘로판’의 세계관이 특정 시공간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대부분 서유럽의 왕정국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여주인공은 귀족 혹은 왕족으로 깨어나 더 높은 신분의 남주인공과 결혼하게 된다는 점을 짚으며 오늘날 유행하는 ‘로판’의 세계관이 신분 질서를 내재화한 계급주의적 세계관이라고 평가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던 여주인공은 공후백자남의 계급 질서가 견고한 세계에서 별 혼란을 겪지 않고 살아가며, 오히려 자신의 성공을 위해 계급적 특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면모를 보인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로판’이 독자들로 하여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섹스-젠더 체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서은영, 2020). 이에 따르면 ‘로판’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남주인공을 ‘후회남’, ‘집착남’, ‘얀데레’ 등의 호칭을 통해 정당화하고, 작품 내의 묘사와 작화를 통해 건장하고 억압적인 남성, 수동적이고 예쁜 여성의 이미지를 고착시킨다. 결론적으로 작품을 통해 현실 속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젠더 질서가 재생산될 뿐 아니라, 이야기를 읽는 여성 독자들 역시 이러한 젠더 질서를 내면화하게 된다.
‘로판’ 웹툰/웹소설에 대한 위의 비판들은 분명 일부 동의되는 지점들이 있다. 현실 속의 여주인공이 서양식 판타지 세계의 귀족가 영애로 환생 혹은 빙의하고, 이후 북부 대공 혹은 황태자 혹은 황제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계급과 돈, 남주인공의 조력을 통해 극복해나간다는 스토리는 분명 동시대 여성들의 민망하리만큼 솔직한 욕망에 부응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분명 신자유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열망과,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성에게 보호받고픈 열망이 녹아들어가 있다.
하지만 웹툰/웹소설을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로서, 이런 비판들은 어딘가 마뜩잖은 구석을 남긴다. 장르를 구성하는 토대를 비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즉 ‘로판’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장르이게끔 만들어주는 근본적인 구성 요소들을 곧 장르의 한계로 지적하는 것은 그저 당위적이고 원론적인 비판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되묻게 되는 것이다.
3. 클리셰를 따르는/위반하는 ‘로판’의 서사들
최근 몇 년간의 웹툰/웹소설에서 주인공이 어느 날 귀족가의 영애로 환생한다거나, 혹은 소설 속 주인공에게 빙의하게 되는 일은 더 이상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마치 일상적으로 종종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회빙환’ 현상에 대한 설명은 단 몇 줄 혹은 몇 컷으로 축약되고(“에이 뭐야, 역시나 귀족가 영애로 환생해버렸잖아?”), 주인공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그다지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마법사가 있는 판타지 세계관에서 마법의 원리를 따져 묻지 않고, 좀비 아포칼립스물에서 좀비 창궐의 과학적 원인이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 것처럼, 정체 모를 서양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서 깨어나 살아가게 된 사건 역시 그저 ‘자연스러운’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사의 핵심은 ‘회빙환’이라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익숙한 기존의 ‘로판’ 문법을 어떻게 비틀어내는가, 즉 예측할 수 있는 클리셰 라인을 충실하게 따라가면서도 어떻게 예상치 못한 변칙들을 일으킴으로써 재미를 만들어내는가에 있다. 이는 그동안 ‘로판’의 전형으로 얘기되어왔던 서사에 대한 일종의 메타적 변용이기도 하다. 여주와 남주의 사랑, 그리고 이를 통한 각종 고난과 어려움의 해소라는 로맨스 서사의 기본 틀을 유지하되, 그 안에 이상한 요소들을 덧붙이고 전치시킴으로써 어딘가 조금 엉뚱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별 존재감도 없는 백작가 영애로 빙의한 주인공이 어쩌다 보니 원작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가 버린다거나(〈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원작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모두 완결된 뒤의 세계에 들어가 홀로 남겨진 서브 남주를 주워 가진다거나(〈엔딩 후 서브남을 주웠다〉, 〈원작은 완결난 지 한참 됐습니다만〉), 한발 더 나아가 메인 주인공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려진 서브 남주를 위해 이 꽉 물고 복수까지 해주는 등의 이야기(〈버려진 최애를 위하여〉)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시들은 그간 몇몇 비평에서 ‘로판’의 특징이자 한계로 지적되었던 설정과 장치들이, 실제로는 얼마든지 변주를 거듭하면서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처럼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장르, 모티프 간의 결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살아남은 로맨스〉는 책빙의물과 좀비물, 타임슬립물과 생존물이 모두 결합한, 그야말로 완벽한 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현대 학원로맨스 소설 속 여주 역할에 빙의된 주인공은 이야기의 완결을 향해 순조롭게 나아간다. 하지만 남주의 고백이 예정되어 있던 날 갑자기 학교에서 좀비 사태가 발발하고,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다시 그날 아침으로 회귀하게 되는, 이른바 ‘무한 루프’에 갇히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여러 번의 루프를 거듭해가며 학급 친구들과 함께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 이 과정에서 ‘원작 소설’이라는 세계관이 가진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평범한 ‘로판’인 척하며 시작되었던 이야기가 좀비 아포칼립스와 생존물, 타임슬립이라는 복수의 장르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즉 장르와 클리셰들의 혼재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이처럼 ‘로판’은 인접 장르와 계속해서 결합하고 혼합되는 한편, 장르 내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거듭해가며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이는 ‘로판’ 장르에만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로판’ 외에도 다양한 장르와 모티프 간의 결합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의 장르론으로는 미처 포착할 수도, 설명해낼 수도 없는 혼종들이 판을 점령한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인 장르 구분을 넘어서는 관점, 즉 장르의 가변성과 혼종성에 주목하는 새로운 관점의 필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이지용, 2019).
이 시점에서 ‘로판’의 보수성과 한계를 진단한 몇몇 주장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로판’의 한계로 지적되었던 여러 특징-수동적인 여주 캐릭터, 남주에 의한 구원 서사, 계급과 신분 등의 수직적 장치들-은 여성 창작자와 독자들의 욕망에 따라 자유롭게 수정될 수 있는 도구일 뿐, ‘로판’ 자체를 규정짓는 고정적인 본질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일부 ‘로판’이 동시대 “페미니즘 리부트 담론에 어긋나는” 장르이자 “‘화석처럼 존치된’ 영역”(서은영, 2020: 94-95), 해방적인 ‘여성서사’와 대비되는 장르라고 보는 비판에는 특히 동의하기 어렵다.
‘로판’과 ‘여성서사’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장르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예쁜 드레스를 입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하는 고귀한 영애들”(서은영, 2020: 95)이 나오는 이야기와 탈코르셋을 하는 여성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대비시키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또한 ‘여성서사’를 해방적이고 변혁적인 것, 반대로 ‘로판’은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로판’은 지속적인 장르 내외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이는 단순히 ‘보수적’이라는 평가 한 줄로 축약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로판’의 여주인공들은 단순히 돈 많고 잘생기고 귀족인 남주인공에게 구제받기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아니며, 이들이 ‘로판’의 서사와 세계관을 이리저리 누비며 발생시키는 행위성, 그리고 변칙 가능성을 손쉽게 누락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로판’에 대한 위와 같은 비판은 마치 장르가 그 자체로 보수적이며, 나아가 페미니즘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몇몇 과거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의 주장을 연상시킨다. 모든 장르는 똑같은 클리셰를 수동적으로 계속 반복할 뿐이고, 이는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가진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에너지를 고갈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르의 유동성과 전복성에 대한 논의들이 보여주듯이, 그 어떤 장르도 ‘선천적으로 보수적’이거나 페미니즘에 해롭다고 얘기될 수는 없다. 그렇게 얘기하기엔 장르는 너무도 느슨하고, 헐렁하고, 카멜레온과 같이 다채로운 것이기 때문이다(Makinen, 2001: 1). 그 안에서 장르가 장르 스스로를 배신할 가능성, 즉 거듭되는 반복을 거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서사를 그려나갈 가능성은 언제든 존재한다.
‘로판’에 대한 비평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전개될 필요가 있다. 각 장르의 경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동시에 점선화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비평은 장르가 그 내부에서 어떤 문법과 규칙 상의 변화를 겪고 있는지, 또 타 장르의 장치와 모티프들을 어떻게 차용하고 있는지, 그 결과 발생하는 생산적이고 변칙적인 서사들은 무엇이 있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동시대 여성들의 욕망이 변화하는 양상을 가장 투명하게 보여주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돈 많고 잘생기고 몸 좋은 이성애자 남성과의 로맨스를 꿈꾼다는 점에서 이들의 욕망은 보수적인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판’의 서사 안에서 여주인공이 갖는 위치와 행위성은 확실하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비평은 이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들을 착실하게 관찰하고, 해석하고, 현재적인 의의를 부여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 권경미(2022).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의 신계급주의와 서사 특징-책빙의물과 회귀물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제84호, 109–140쪽.
- 김휘빈(2017). 『웹소설 작가 서바이벌 가이드』. 고양: 이마.
- _____(2019). “판타지가 로맨스를 만났을 때”, 텍스트릿 엮음, 『비주류 선언』, 서울: 요다, 221–240쪽.
- _____(2022). “이 기사를 보강합니다 (1): 새 웹툰, 웹소설 나왔다하면… ‘이세계물, 전생물’ 천지”(https://brunch.co.kr/@whuibin/15).
- 백은지(2022). “한국 로맨스 장르가 지녀야 할 미래 지향성은 무엇인가?”, 『지금, 만화』, 제16호, 32–33쪽.
- 서은영(2020). “로맨스판타지 웹툰의 부상과 재현 #서로판, #영애물, #집착남물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연구』, 제16권 3호, 93–113쪽.
- 안상원(2018). “한국 웹소설의 회귀 모티프 연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80권, 279–307쪽.
- _____(2019). “한국 웹소설 ‘로맨스판타지’ 장르의 서사적 특성 연구”, 『인문콘텐츠』, 제55호, 219–234쪽.
- _____(2020). “한국 웹소설의 ‘책빙의물’의 특성 연구-로맨스판타지 장르를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제26권 3호, 87–120쪽.
- 이지용(2019). “장르란 무엇인가”, 텍스트릿 엮음, 『비주류 선언』, 서울: 요다, 5–20쪽.
- 홍난지(2022). “로맨스 판타지, 보편적이고 다양한 욕망의 발현 공간 그리고…”, 『지금, 만화』, 제16호, 34–41쪽.
- Makinen, M.(2001). Feminist Popular Fiction. New York: Palgrave Macmil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