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녀를 뒤집어쓴 남성들

우엉

1. 메타버스와 VRChat

넷플릭스의 드라마 〈블랙 미러〉 시즌 5의 첫 번째 에피소드 〈스트라이킹 바이퍼스〉(2019)에서는 “모든 신체 감각을 구현한” VR 격투게임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라는 가상의 게임 공간이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친구 사이인 대니와 칼은 평소처럼 함께 게임을 즐기기 위해 스트라이킹 바이퍼스에 접속한다. 대니는 남성 캐릭터 ‘랜스’, 칼은 여성 캐릭터 ‘록셰트’를 선택한다. 격투게임인 만큼 서로의 몸이 엉키며 엎치락뒤치락 대전을 이어가던 둘은 묘한 기류를 느끼고,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이 키스한다. 이때 ‘현실’에서의 대니와 칼은 이성애자로 묘사된다. 대니는 결혼 후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고, 칼은 어린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둘은 황급히 게임을 종료하고 실수라며 넘어가지만, 다시 게임에서 만났을 때 서로를 향한 이끌림에 못 이겨 결국 캐릭터의 모습을 한 채로 섹스를 하게 된다. 심지어 관계가 진행되면서 칼은 대니에게 섹스 중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게임 캐릭터의 상태로 말이다. 이 에피소드는 가상현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감각에 대한 상상적 전망을 내놓는다. 그런데 이러한 SF적 상상이 더 이상 상상의 영역에만 머물러있지 않다면 어떨까?

미국의 VRChat Inc.가 출시한 VRChat은 꾸준히 동시 접속자 3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COVID-19의 장기화에 따른 메타버스의 대유행은 그 인기에 불을 지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기에 VRChat은 매우 적절했다. 음성 지향 VR 채팅 게임 VRChat은 유저가 만든 다양한 가상 공간인 ‘월드’에서 VR 기술을 사용하여 각자의 아바타로 전세계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VRChat이 다른 채팅 플랫폼 혹은 게임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은 게임의 자유도가 굉장히 높고 유저가 콘텐츠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다. VRChat이 내세우는 슬로건 “창작하고, 공유하고, 플레이하라(Create, Share, Play)”처럼(링크), 유저는 자신만의 아바타와 아바타가 존재하는 월드를 직접 제작하여 다른 유저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VRChat은 유저에게 특정 콘텐츠를 직접 제공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창작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유저는 월드에서 다른 유저들과 함께 채팅과 게임을 하거나 가상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참석하는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만의 세계관과 그에 따른 규칙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는 곧 VRChat 내 여러 하위문화가 발생하게 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게임 플레이가 ‘나’의 온몸을 경유한다는 것이다. VRChat은 기본적으로 VR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1인칭 게임으로, 유저는 가상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온몸을 움직이며 게임에 진입한다. 무언가를 집기 위해서 팔을 뻗고, 시선을 바꾸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다른 이를 껴안기 위해 허공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이러한 몸짓(body language)을 통해 유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메우는 새로운 감각을 형성하고 게임에 몰입(immersion)한다. 몰입이란 현실의 감각적 경험이 음소거되고 가상세계의 감각적 경험이 충분히 고조되며 사람들이 더 이상 현실에 없다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Kelty, C. M. et al, 2008). 기존의 비디오 게임이 주로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몰입을 이끌어냈다면, VRChat을 비롯한 VR 게임에서는 몰입을 이끌어내는 감각이 촉각을 포함하여 확장된다. VR 기술은 미세 진동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유저의 신체 감각을 가상세계에 몰입시킨다. VRChat에서 아바타는 유저들이 가상세계에서 체현(embodiment)하는 형태 또는 모형으로, 특정한 종류의 매너리즘을 유발하면서도 그 집단에 적응하고 사회적 상황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Montemorano, 2020). 다시 말해, 유저는 특정한 아바타를 선택함으로써 현실의 물리적 세계로부터 가상을 통제하고, 새롭고 대안적인 자기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가능성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만 해왔던 행위들을 직접 실험할 수 있게끔 한다. 이를테면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가상 섹스 같은 것 말이다.

2. VRChat의 미소녀들

VR 섹스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VRChat에는 월드를 막론하고 여성형 아바타[1], 특히 미소녀(美少女, びしょうじょ/bishojo) 아바타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VRChat 전용 아바타를 판매하는 사이트 BOOTH[2]에 접속하면, 여성형 미소녀 아바타가 판매 품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링크). 미소녀 캐릭터는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문법을 따르며, 외적으로 어려 보이고, 애교를 부리며, 큰 눈, 섬세한 속눈썹, 긴 머리, 10대의 가느다란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귀여움(かわいい/kawaii)을 지향한다(Chen, 2015). 이와 같은 공식은 주로 남성에게 소구하기 위한 것으로, 귀여운 여성에 대한 남성 집단의 환상을 재현하고 젠더 규범과 성 역할을 모방함으로써 이를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Saito, 2014). 그런데 VRChat의 유저의 남녀 성비는 대략 8:2라고 한다(황유진, 2022).[3] 이는 VRChat 월드, 즉 가상세계에서 마주하는 아바타들은 대다수가 여성형인 반면, 이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뜻이다. 실제 유저의 성별과 그들이 선택하는 아바타의 성별을 정확히 매칭하기란 불가능하지만, 통계가 제시하고 월드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은 대부분의 남성 유저들이 여성형 아바타를 선택한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게끔 한다.

[1] VRChat에서는 아바타에 특정 성별을 지정할 수 없지만, 사용자가 아바타의 외형을 통해 ‘여캐(여성 캐릭터)’, ‘남캐(남성 캐릭터)’ 등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를 대체한다. 간혹 동물이나 마스코트 캐릭터 등 인간의 형태가 아닌 아바타들도 다수 존재한다. VRChat 자체에는 매우 다양한 유형의 아바타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인간형 아바타만을 다룬다. 단, ‘여성 아바타’라는 표현이 아닌 ‘여성형 아바타’ 또는 ‘미소녀 아바타’라는 표현을 선택하고자 한다.
[2] BOOTH는 일본의 회원제 창작 그림 커뮤니티 사이트인 pixiv에서 운영하는 동인, 2차 창작 전문 굿즈 판매 플랫폼으로, 이 사이트를 통해 창작자를 자신의 작업물을 판매하고, 사용자는 원하는 작업물을 구매를 할 수 있다. 최근 VRChat의 흥행과 아바타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여 3D 모델링 아바타와 아이템을 판매하는 ‘3D Models’ 카테고리를 따로 마련하게 되었다.
[3] 황유진은 “VRChat의 공식적인 통계”를 언급하지만, VRChat이 제공한 공식적인 통계를 따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트래픽 통계 사이트인 ‘시밀러웹’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VRChat 사용자의 성비는 대략 8:2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링크)

사실 남성이 여성형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은 특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RPG 게임에서 남성 유저들은 여성형 캐릭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VRChat의 경우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브레디키나와 지아드는 VRChat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버추얼 유튜버(Virtual YouTuber)’ 중 미소녀 아바타를 사용하는 남성과 그 문화를 일컫는 바비니쿠(バ美肉, バびにく)[4]를 온라인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로 해석한다. 그들에 따르면, 바비니쿠 문화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저항한다. 버튜버들은 연약함(vulnerability), 의존적임(dependability), 매력적임(desirability)과 같이 자기 자신에 내재되어 있지만 동시에 보편적 남성성에 벗어나는 특성들을 수행하기 위해 ‘나’를 표현하고 탐구하는 수단으로서 미소녀 아바타를 선택한다. 이때 바비니쿠의 미소녀 아바타 사용은 전통적인 젠더 규범과 헤게모니 남성성을 탈피하는 퀴어 실천으로 해석된다(Bredikhina & Giard, 2022)

[4] 바비니쿠(バ美肉, バびにく)는 ‘버츄얼 미소녀의 육체를 얻음(バーチャル美少女受肉, virtual girl incarnation)’ 혹은 ‘버츄얼 미소녀의 육체를 손에 넣음(バーチャル美少女セルフ受肉, virtual girl self-incarnation)’을 약어로 표현한 것이다.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바비니쿠보다는 한자를 그대로 음독한 ‘버미육’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남성 유저의 여성형 아바타 사용에서 단순히 ‘나’의 실제 몸과 아바타의 시각적 특성의 불일치 그 자체에만 주목하기엔 현실의 성 역할, 대표성, 권력 역학과 같은 문제를 시야에서 놓칠 우려가 있다. 한국에서 VRChat 유저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VRChat 마이너 갤러리’를 살펴보면, 이들이 남성형 아바타를 ‘게이’의 표식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은 이성애자이므로 여성형 아바타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며, 다른 선택지—남성형 아바타—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는 식이다. VRChat은 유저가 VR 기기를 착용한 채 시선을 움직이면 화면이 이를 따라 이동하는 1인칭 시점 게임이다. 그러므로 유저가 자신의 아바타를 보기 위해선 월드에 거울 구조물을 설치하여 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아야만 한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감상하는 동시에 다른 유저들과 교류하는 것이 VRChat의 ‘최종 콘텐츠’[5]라고 증언한다. 실제로 VRChat에서 유저들은 상대와 대화할 때 상대의 아바타를 바라보기보다 거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상대와 이야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느 월드에서든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도 항상 이 거울 앞이다. 그만큼 VRChat 유저들에게 거울을 경유한 스스로의 아바타 감상은 게임을 즐기는 중요한 콘텐츠 중 하나다. 따라서 ‘게이도 아니고 같은 남자를 굳이 감상하는’ 일은 이성애자인 그들의 시선에선 ‘비정상’으로 치부된다. 동시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남성 유저—모에한 미소녀 아바타를 입은 유저—의 모습을 상정하고, 그렇지 않은 유저들을 ‘게이’라며 비하한다. 미남의 모습을 한 남성형 아바타와 낮고 굵은 목소리로 여성 유저들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이케맨(イケメン)’ 유저를 ‘여미새’[6] 라고 부르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5] 최종 콘텐츠란 본래 게임 내의 다른 모든 요소를 경험하고 충분히 숙련된 사용자가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특별 콘텐츠를 의미하지만, 몇몇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게임에 흥미가 떨어질 정도로 게임 내 모든 요소를 경험한 ‘고인물’ 사용자가 게임에 남아있으면서 즐기는 무언가를 일컫는다. VRChat 사용자들은 VRChat의 기능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되었을 때 일종의 최종 콘텐츠로서 다른 유저와 아바타를 감상하며 대화를 하는데, 이를 ‘친목(질)’이라 표현한다.
[6] ‘여미새’란 ‘여자에 미친 새끼’의 줄임말로,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에서 여성에게 추근대는 남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VRChat 유저들의 커뮤니티는 ‘남성이 남성을 본다’는 행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여성혐오적이고 동성애혐오적인 에토스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한다. 물론 오랫동안 게임이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인식되었으며(Lien, 2013), 현재까지도 게임 문화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여성혐오와 동성애혐오로 가득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과 게이에 대한 이들의 타자화된 시선은 그닥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전형적인 남성 동성사회성(homosociality)에서 남성들 간의 신체 접촉이나 육체적 친밀성이 엄격하게 금기시되며, 이를 통해 남성들이 자신의 이성애적 위치를 공고히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Flood, 2008), 스스로 이성애자임을 주장하는 남성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친밀성 교환 행위—원격 VR 섹스—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3. VRChat에서 ‘섹스’하기

VRChat은 전체이용가 게임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아바타 간 섹스를 공식적인 콘텐츠로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VRChat이 높은 자유도를 자랑하는 만큼 유저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VRChat 내에서의 ‘섹스’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만 VRChat의 높은 자유도는 유저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과 ‘매너’를 만들어낸 조건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른 유저의 아바타를 동의 없이 ‘만지는’ 행위는 가상의 접촉임에도 ‘비매너’라 여겨진다. 아무 곳에서 아무하고나 섹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VRChat에서 유저들은 ‘just H party’ 월드(이하 ‘H 월드’)를 만들었다. 변태를 뜻하는 일본어 ‘헨타이(へんたい, Hentai)’의 ‘H’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이름 그대로 함께 모여 ‘야한 짓’을 하는 곳이다. H 월드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VR 기기를 반드시 착용하고 입장해야 한다. 이는 직접 본인의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반드시 여성형 아바타의 모습이어야 한다. VRChat 마이너 갤러리에서 유저들은 섹스에서 여성형 미소녀 아바타를 사용하는 것을 “상호적인 배려”라고 표현한다. 앞서 말했듯, VRChat 게임은 유저의 시선을 따라가는 1인칭 시점 게임이다. VRChat에서 섹스를 하는 것은 상대의 아바타를 바라보며 이루어진다. 이성애자인 그들은 매력적인 미소녀를 바라보며 서로의 욕구를 해소한다. 이는 곧 왜 대부분의 VRChat 섹스가 상대의 얼굴을 바라본 채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건은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H 월드를 이용하는 유저 간의 암묵적인 규칙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VRChat에서의 섹스 행위에 대해 이해하고자, 그들의 룰에 따라 VR 기기를 착용하고 여성형 아바타를 선택하여 직접 VRChat에 접속해보았다. H 월드에서 유저들은 주로 서로를 끌어안거나 한 명이 다른 한 명 위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서로의 아바타를 매우 가까이 밀착시키고 그 형태를 복잡하게 엮음으로써 섹스의 동작을 구현한다. 여기에서 허리를 흔들거나 혀를 내밀거나 마이크를 켜고 신음을 내면 더욱 ‘진짜’ 같은 섹스가 가능하다. 그러나 완벽하게 ‘진짜 같은’ 섹스는 불가능하기에, 유저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이들이 VRChat에서의 섹스가 현실의 섹스와 유사하도록 만드는 시도 중 하나로 BOOTH에서 판매하는 아바타에 탈부착 가능한 3D 모델링을 들 수 있다(링크).[7] 이곳에서 유저들은 남성기, 여성기, 정액, 성인용품 등 여러 성인용 3D 모델링 악세사리를 구매할 수 있으며,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단연 남성기인 페니스 모델링이다. 나는 현장에서 그들의 섹스를 관찰하면서, 아바타에게 페니스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며 유저들이 성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목격하였다. 3D 페니스 모델링은 섹스의 모든 과정에서 사용되지는 않으며, 섹스의 수위를 높여가는 중 오르가즘으로 이해되는 ‘절정’의 구간에서 ‘강력한 한방’으로 사용되거나 상대에게 구강성교를 요구할 때만 등장한다. 이때 이 3D 탈부착 페니스는 단순한 게임 아이템 이상으로, 가장 강력한 섹스의 도구이자 ‘남근 대용품’으로서 딜도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 

[7] 성인물이니 주의하라는 식의 알림이 뜨긴 하지만, 별도의 복잡한 성인인증 없이도 열람과 구매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최근 VRChat은 ‘아바타 다이내믹스(Avatar Dynamics)’라는 업데이트를 통해 ‘피직스본(PhysBones)’ 기술을 무료로 제공함으로써(링크), 현실감을 극대화하고 싶어 하는 유저들의 욕망에 부응했다. 피직스본은 물리 엔진[8]의 일종으로, 아바타 간의 상호작용, 특히 충돌을 현실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한다. 해당 업데이트 이전 아바타 간의 충돌은 3D 모델링이 어색하게 겹쳐지는 것이 전부였지만, 피직스본 기술을 통해 충돌 강도에 따라 아바타의 피부가 출렁이거나 눌리는 등 실제 인간의 몸과 살의 성질과 유사한 반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상대를 잡아당기거나 툭툭 치거나 세게 끌어안아 찌그러트리는 등 훨씬 다양한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VRChat 마이너 갤러리에서도 많은 유저들은 피직스본 기술이 ‘진짜’ ‘닿는 듯한’, ‘만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상대방의 피부를 느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시청각만으로도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몰입’이 더욱 생생해진다는 뜻일 테다. 이처럼 VRChat 유저들은 여러 기술을 바탕으로 더욱 ‘진짜 같은’ 섹스에 접근하는 중이다.

[8] 물리 엔진이란 현실의 물리 시스템을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하기 위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칭하는 말로, 주로 게임, 영화 등 영상 미디어를 제작할 때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된다.

4. 호모소셜과 호모섹슈얼 사이에서

VRChat의 남성 유저들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광고되는 테크놀로지의 구체적인 한계 속에서 각자의 욕망을 탐색하고 실험한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 이를 매개하는 형상은 미소녀 아바타다. 이들에게 미소녀 아바타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면서도 거울에 비춰볼 대상이다. 즉, 남성 유저는 자신의 욕망을 미소녀 아바타에 투영하기도 하고, 미소녀 아바타를 성적으로 대상화하기도 하면서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더 나아가, VRChat 속 남성들은 미소녀 아바타라는 가상의 몸을 경유하며 서로에게 ‘접촉’한다. 이때 이들이 ‘나는 이성애자이며, 게이는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섹스를 (서로를 욕망하는 행위가 아닌) 서로를 ‘배려’하는 행위로서 의미화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행위가 내포하고 있는 동성애적 함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즉, 동성애혐오적 발언을 과시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자신들의 행위를 애써 ‘비정상적인’ 행위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소녀를 뒤집어쓴 남성들이 VRChat에서 만들어낸 독특한 동성사회는 동성 간의 ‘진득한’ 관계가 금기시되던 기존의 전형적인 동성사회성에서 빗겨난다고 할 수 있겠다.

기술 평론가이자 작가인 하워드 라인골드에 의해 알려진 용어 ‘텔레딜도닉스(teledildonics)’는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해 원격으로 경험하는 섹스, 즉 ‘원격 섹스’를 가리킨다. 그는 미래의 통신 기술 발전이 섹스 시장을 움직일 것이며, 촉각을 구현한 보디 수트나 통신 기계 등을 언급하며 “가상현실 기술과 통신 네트워크의 통합을 통해, 인간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누군가 또는 전체 인구에게 연락하고 접촉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Rheingold, 1990: 52-54). 그렇다면 미소녀를 뒤집어쓴 남성들이 VRChat에서 VR 기기를 쓰고 섹스하는 것이야말로 현시대의 텔레딜도닉스가 아닐까? 그들이 사용하는 3D 페니스 모델링은 텔레딜도(teledildo) 그 자체다. 다만 섹스에 임하던 유저가 ‘절정’에 달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3D 페니스 모델링을 찾는 것은 단순히 섹스의 한 단계에 그치지 않는다. 삽입과 사정에 치우친 남근 중심적인 쾌락 모델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3D 페니스 모델링이라는 상징이 VR 섹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고 의미화되는지에 대한 정교한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구 물음으로 남겨둔다.


참고 문헌

  • Bredikhina, L., & Giard, A. (2022). Becoming a Virtual Cutie: Digital Cross-Dressing in Japan. Convergence, 28(6), 1643-1661.
  • Chen, J. S. (2015). Beautiful, Meaningful, and Powerful: Explorations of the “Bishojo (Beautiful Girl)” and “Bishonen (Beautiful Boy)” in Taiwan’s Anime/Manga Fan Culture. International Perspectives on Shojo and Shojo Manga (pp. 109-119). Routledge.
  • Flood, M. (2008). Men, sex, and homosociality: How bonds between men shape their sexual relations with women. Men and Masculinities, 10(3), pp.339–359.
  • Kelty, C. M., Fischer, M. M., Golub, A. R., Jackson, J. B., Christen, K., Brown, M. F., & Boellstorff, T. (2008). Anthropology of/in circulation: The future of open access and scholarly societies. Cultural Anthropology, 23(3), pp.559–588.
  • Lien, T. (2013). No girls allowed. Polygon. https://www.polygon.com/features/2013/12/2/5143856/no-girls-allowed
  • Montemorano, C. (2020). Body Language: Avatars, Identity Formation, and Communicative Interaction in VRChat. Student Research Submissions. 361. https://scholar.umw.edu/student_research/361 
  • Rheingold, Howard. (1990). Teledildonics: Reach out and Touch Someone. Mondo 2000, 2, pp.52–54.
  • Saito, K. (2014). Magic, shōjo, and metamorphosis: Magical girl anime and the challenges of changing gender identities in Japanese society.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73(1), pp.143–164.
  • 황유진 (2022). 메타버스와 젠더, 가상의 자기 정체성. 『과학뒤켠』, 13호. https://behindsciences.kaist.ac.kr/2022/10/03/메타버스와-젠더-가상의-자기-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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