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가능한 퀴어 여성들의 이세계, GL

보람

* 이 글은 나의 석사학위 논문 “퀴어 여성 GL 향유자들의 문화실천에 관한 연구” (2022)의 일부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기억하기로 나는 언제나 만화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 봤던 아동용 만화는 냉전이 막 끝나고 우주산업이 부상하던 1990년대라는 시대적 영향 때문인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았다. 이런 만화 속 주인공들은 외계 침략자들로부터 지구를 구해야 했다. 외계인을 물리치는 상상의 공간에서도 남녀가 유별했는데 대개 여자 어린이는 ‘마법소녀’가 되고, 남자 어린이는 거대 로봇의 조종석에 탔다. 나는 그때 예쁜 치마를 입는 쪽으로 변신하기보다는 로봇에 타는 쪽이 취향이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만화 속에서도 로봇은 남자애들만 탔고 현실 세계에서도 내게 할당된 장난감들은 분홍색 상자에 든 인형들이었기에 갑자기 의뭉스러운 로봇 취향을 밝혀 친구들과 어른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청소년이 되자 친구들은 귀여니 소설이나 보이그룹 BL(Boys’ Love)팬픽을 보기 시작했다. 나도 대화에 끼기 위해서 ‘필독서’ 몇 편을 보았고 이후에도 종종 손에 들어오면 재밌게 읽었지만, 굳이 찾아 읽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걸그룹 팬픽을 처음 읽고 그제야 친구들이 왜 그렇게 로맨스 소설이 재밌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나는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이었고 나에겐 이것이야말로 ‘로맨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GL(Girls’ Love)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GL 안에서는 내가 로봇을 타거나 여자를 좋아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GL이라는 세계 속에서는 동급생 여자애를 좋아하는 나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고, 분홍색 상자로 상징되는 ‘소녀’적인 수행을 견디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여성 성소수자로서 겪는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성소수자에게 가장 큰 위협은 사회로부터의 배제이다. 내가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마땅히 좋아해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혹은 좋아해선 안 될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없는 존재가 되는 것. 그로 인해 시스템과 관계망 속에서 추방당하여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것. 언뜻 보면 이런 것들은 굶주림이나 신체적 폭력보다는 한결 나은 고민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들은 한데 얽혀서 발생한다. 그런데 GL 속에는 ‘나의 자리’가 있었다.

다른 퀴어 여성들에게도 GL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졌다. 나의 석사 논문은 이러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논문을 쓰면서 다양한 퀴어 여성들과 함께 GL과 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에 응해준 퀴어 여성들은 입을 모아 GL에서 즐거움과 동시에 안전이라는 감각을 느꼈다고 말했다. GL을 경유하여 ‘여성을/도 사랑하는 여성’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스스로와 주변으로부터 긍정적인 존재로 환영받는 경험을 하는 것은 퀴어 여성이 세상에 수용되는 감각을 느낄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많은 퀴어 여성들이 GL문화 속에서 소수자 캐릭터의 삶을 따라가며 위로받고 삶을 유지하는 힘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이처럼 상상적 세계관 속에서 퀴어 여성은 비로소 성원권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GL이라는 문화실천을 통해 퀴어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주류 사회에서의 소외된 자’, ‘핍박받은 자’ 이상의 무엇으로 구성해내는 것이다. 

나아가 ‘여성이 창작하는 여성이 여성을 사랑하는 공간’이라는 GL의 특성은 “누가 ‘여성’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그 범주를 확장한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은 ‘여성’이라는 범주에 부착되는 특징들을 무화시킨다. 이것은 GL의 캐릭터가 ‘여성’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어떤 신체를 가지고 있어도, 어떤 몸의 경험이 있어도(통념적으로 ‘여성’은 못/안 할 것 같은 행동을 해도) 마땅히 ‘여성’으로 묘사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통해 역설적으로 여성 젠더를 교란한다. 다시 말해, GL 문화실천은 기존 사회의 고정적 여성 이미지에 균열의 틈새를 만들어낸다.

그뿐만 아니라 선정성을 담지한 GL 작품들을 보면 겁 없이 성적 실천을 하는, 즉 적극적으로 섹스‘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성관계를 통해 주로 느끼는 위험인 원치 않은 임신, 성병, 남성에 의한 폭력 등으로부터 거리감이 있는 여성 간의 섹슈얼리티의 특성이 GL 작품에 녹아든 것이기도 하다. GL의 섹스에서 삽입과 흡입의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은 남근이라는 기표에 권력과 권위 그리고 욕망이라는 기의를 연결시키는 팔루스적 공식을 비껴간다. 이렇게 남성이 사라진 성적인 관계를 통해 GL이 보여주는 것은 이성애중심주의에서 ‘여성’에게 부착된 섹슈얼리티의 변주 가능성이다.

하지만 GL문화가 가지는 이러한 긍정적인 가능성과 의미와는 별개로 슬프게도 GL은 여전히 비인기 장르이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상징 질서의 하위를 점유하는 현상과도 연관된다. GL러들은 ‘여성’이, 그리고 ‘여성들의 관계’가 사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내가 안 그리면/사면 망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고, 구매한다. 퀴어 여성들의 이러한 노력 속에서, 다행히도 장르의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수와 향유자 수는 지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에는 다양한 국내 웹툰/웹소설 플랫폼에서 GL 카테고리 또는 해시태그를 통한 검색이 가능해졌고 대중작에서도 종종 GL을 찾을 수 있다. 2023년 현재는 한 소녀가 로봇을 타고 다른 소녀와 결혼을 약속하는 전체관람가 만화를 인기방송 채널에서 볼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요즘 어린이들에게는 희소식이지 않을까.

앞으로 이성애중심주의가 흔들리고 퀴어가 더이상 ‘기이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아닌 사회가 된다면 ‘여성 동성애’를 장르의 성립 조건으로 강조하는 GL이라는 범주에도 변화가 올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한국의 GL은 퀴어 여성들이 주도하는 문화로서 그들의 유희와 쾌락, 안전과 희망, 자유와 가능성을 담은 공간이다. 재현물은 사회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주조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 다양하고 많은 GL 작품이 나오기를, 또 퀴어 여성들이 그 안과 밖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