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이주여성의 케이팝 팬덤 실천

Anggaunita Kiranantika (번역: 미현)

케이팝이 불러온 인도네시아의 신-대중문화 장

케이팝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은 오늘날 한국을 글로벌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한국 대중문화는 인터넷과 TV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아이돌의 인기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이끌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문화는 젠더 규범과 밀착되어 있다. 가부장적 가족 단위가 중심이 되는 인도네시아의 지역문화는 여성에게 밀착되어 이들의 활동을 제약한다(Geertz, 1990). 전통에서 현대로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의 인도네시아에서 케이팝은 어쩐지 대중문화 시장의 모든 것과 연결되는 듯하다.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케이팝은 식민의 역사와 연관된 서구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것보다 더욱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케이팝을 위시한 대중문화는 현대화된 삶으로의 전환이라는 결정적인 장면을 드러낸다

인도네시아의 케이팝 시장은 2010년대를 관통하며 동남아시아의 그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게 성장했다. 많은 인도네시아 청년들은 케이팝을 현대적이고 환상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며, 한국 아이돌과 배우들의 매력을 예찬한다(Jung, 2011; Yoon, 2019). 특히 여성들에게 케이팝은 인도네시아에서는 흔치 않은 팬덤 실천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대중문화의 차원으로 환영받는다. 이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팬 활동이 대체로 십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다면, 오늘날에는 케이팝과 팬덤 실천이 여성들의 일상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페미니즘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 글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변화하는 문화적 위치와 정체성을 케이팝을 경유하며 어떻게 마주하고 협상하는지를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최근 케이팝 아이돌은 인도네시아의 트렌드로 떠올랐으며,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팬덤에 참여하며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있다. 케이팝을 즐기는 이들은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인도네시아와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여성들에게 부여되는 문화적 규범이 명확하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팬덤에 참여함으로써 기존의 문화적 가치와 규범들과 협상해간다. 그 중에서도 이 글은 일자리를 찾거나, 남편과 동행하거나, 유학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팬덤 활동에 주목한다.

여성들의 초국적 이주와 문화를 횡단하는 케이팝

이 글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초국가적 이주에 대한 분석이자, 이들이 이주를 통해 문화적 변화를 마주하고 협상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여성들은 팬덤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이주민으로서의 삶을 즐길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꿈꿔왔던 여가 생활과 가까워진다. 물론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현지 문화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이들은 종교, 도덕, 사회문화, 경제가 뒤섞인 인도네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본국의 가부장적 가정에서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때, 케이팝 팬덤에 합류하는 것은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의 남성들과 무관하게 스스로 결정한 개별적인 실천을 통해 기존의 규범을 해체하거나 초문화적인 가치를 만들어낸다.

케이팝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팬덤 실천은 문화의 일부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늘날 케이팝은 여성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한국 사회를 모방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를 창조했다. 여성들은 초국가적 이주를 통해 본국에서보다 자신의 커리어와 활동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에게 이주 노동의 새로운 전망으로 여겨지고 있다.

“BTS는 허구적인 무언가가 아니고, 현실에서 제가 꿈을 쫓고 자기 발전을 이루도록 동기를 부여해요. 저는 BTS 때문에 한국에서 일하기로 결심했어요. 지금 여기서 콘서트를 볼 수 있어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팬미팅에 가려고 근무시간을 조정하거나 야근을 하기도 하고, 피곤한 것도 잊어요. 집[인도네시아]에 있었을 때보다 지금의 제 현실세계가 훨씬 신나고 성공한 것 같아요”

―나나, 24세, 대학원생/통역가

여성들은 팬덤에서의 삶과 현실에서의 삶을 연결지어 설명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팬덤 활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저는 매일매일 러비[Reveluv, 레드벨벳 팬덤]로서의 자신감을 가지고 노래해요. 그게 제 퇴근 후의 안식이에요. 러비들은 멋지고, 개성도 강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쉽게 당할 것 같지 않아 보여요. [팬덤 활동이] 제가 여기서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고, 저는 여성 팬들의 활기를 퍼뜨리고 싶어요. 저는 히잡을 쓰니까 [케이팝] 옷차림이나 메이크업을 이슬람 복장에 적용해서 따라 하기도 해요. 그래서 인스타 인플루언서가 되기도 했어요. 저는 인도네시아 여성으로서 괜찮은 직장도 얻고, 커리어도 추구하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요. 저는 다른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꿈꾸는 저의 작은 세계와 이곳에서의 소중한 삶을 즐길 거예요.”

―피카, 28세, 공장노동자

이슬람 복장에 레드벨벳의 스타일링을 적용시키는 위의 사례가 보여주듯, 중요한 지점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해외에 거주하며 내면의 문화적 충돌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욕구나 기대를 찾아나서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대중문화를 소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략적인 문화 혼용은 소셜미디어에서 젊은 여성을 비롯한 팔로워 집단의 복잡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저는 BTS의 팬이지만 안효섭, 남주혁, 송중기 같은 배우의 팬이기도 해요. 가끔 시간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촬영했던 곳을 가기도 하고, 서울 근교에 화려하고 편한 카페에 앉아서 그 사람들의 소셜미디어를 눈팅하기도 해요. 적어도 제가 K–드라마 나오는 걸 해 볼 수 있잖아요.”

―디바, 27세, 전업주부

위 사례는 한국에서 최신의 소비주의적 삶을 따라 가며 내면에 새로운 삶의 가치들을 형성해가는 팬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곳곳에서 케이팝과 연관된 콘텐츠를 만들어 업로드한다. 한정판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단독 팬미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트렌드 세터가 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여성들에게 케이팝 굿즈를 구입하고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외형적인 가치를 높이는 일이자 안락한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일이다.

성공의 상징이 된 인도네시아의 케이팝 인플루언서들

이 흐름의 주인공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성공한 직장인’, ‘교육받은 계층의 여성’, ‘이상적인 어머니’로 여겨진다. 이는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여성들이 기존의 가정주부 모델에서 멀어지면서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팬덤 실천은 여성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저소득층에서 중산층 여성으로, 순종적 아내/어머니에서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아내/어머니로 정체성이 이행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1] 더불어, 한국의 이주노동자나 국제학생이 되기 위한 팁이 유튜브를 통해 공유되는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한국으로의 이주와 케이팝에 대한 접근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1] (역자주)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서의 이행은 한국으로의 노동이주를 통해 가능한 것이지만, 팬덤활동이 이러한 계급적 이행을 나타낸다.

이들은 케이팝 팬덤 실천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가부장적 문화를 떠나기를 열망한다. 이들은 기꺼이 새로운 외국 문화를 경험하고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이때 여성들은 기술을 통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새로운 지식 · 문화 · 생활 방식을 경유하여 팬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창조한다. 즉, 팬덤이라는 문화적 실천은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이주를 결심하게 되는 동기이며, 동시에 인도네시아에서 새로운 젠더 규범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오늘날 한국으로 이주한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젠더 · 계급 · 문화 · 종교의 교차점에서 억압 · 현대화 · 신자유주의적 자아가 뒤섞인 목소리를 내기 위한 투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팬덤에 참여하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케이팝을 소비하면서 인도네시아인으로서의 문화와 일정 정도 성공적인 자기 삶의 동기를 재구성한다. 인도네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는 케이팝이 동양과 서양, 글로벌과 로컬의 문화적 측면이 혼재하는 하이브리드 인기 상품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에 있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팬덤 실천은 이러한 초문화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동시에, 일상생활에서 새로운 젠더 양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문화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인도네시아 팬덤 구성원들 사이에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초국적인 이주를 경험하는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케이팝 팬덤의 충실한 일원으로 칭송받고, 동료 팬들에게 정보와 소식을 공유하면서 인도네시아 팬들을 대표하는 위치에 서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다시금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며 아이돌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려고 노력한다. 일례로 아이돌의 생일이나 아이돌이 상을 탔을 때, 인도네시아에 있는 팬들은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에게 팬들을 대신하여 ‘나시뜸뿡(Nasi Tumpeng: 기쁜 일을 축하하거나 존경을 표시할 때 먹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쌀 요리)’과 같은 선물을 아이돌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주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에서의 팬덤 상호작용과 지원은 현지의 여성들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의 이주를 꿈꾸게 하는 중대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그들이 선택한 스타뿐만 아니라, 스타와 연관된 웹 커뮤니티의 다른 유저와 강렬한 유대감을 갖는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강력한 기계(powerful machine)’로서, 특히 여성들에게 온라인에서의 상호연결성을 강화시킨다(Gill, 2007; Nagle, 2017). 팬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쌓으며, 지구 반대편에서 온 동료 팬들과 경험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디지털 문화를 구축한다. 한국으로의 이주는 충돌하고 재구성되는 다층적인 문화적 지형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젠더 질서를 복잡하게 한다. 여성들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을 방문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를 전시하며 한국에서 지내는 삶의 특권을 전시하고, 자국의 여성들에게 인도네시아와는 다른 가치를 환기시킨다.

즉, 여성들은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더불어 이전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대중문화에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케이팝이 확산되는 것은 이러한 문화적 전환을 나타내는 하나의 장면이며, 케이팝과 인도네시아 여성들이 글로벌 문화에 끼치는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들은 케이팝 팬으로서 활발히 교류하며 소비를 넘어선 대중문화의 장을 펼쳐내고 있다. 

저항과 실천으로 인도네시아 여성 팬덤을 다시보기

오늘날 대중문화는 인도네시아 여성의 젠더 정체성과 행위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의 팬덤 실천을 통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규범과 가치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여성 팬들은 팬덤 실천 속에서 전통에서 벗어난 젠더 양식과 조우하며 스스로의 정체성과 관점을 만들어 나간다.

따라서 초국가적 이주는 여성들이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으로 이주한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경험은 단순히 팬덤의 소비로 일축될 수 없으며, 인도네시아의 가부장제에 대한 의미 있는 저항이자 새로운 젠더 질서의 등장일 수 있다. 초문화적인 가치를 습득하는 이들 삶의 방식은 현대 인도네시아 여성들에게 새로운 형상을 제시한다.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은 해외에서 경험을 쌓고 소셜미디어에서 케이팝 팬덤의 지지를 받으며 인플루언서가 됨으로써, 이주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일을 하거나 학위를 받거나 가족과 동행하기 위해 한국에 이주한 여성들은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 젠더 가치관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일상을 경험한다. 이때 여성들은 케이팝 팬덤의 문화를 횡단하며 인도네시아의 규범적 젠더 재현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치들을 대변한다. 이들은 이주 노동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소셜미디어라는 공적 영역에서 살아남으면서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참고 문헌

  • Geertz, C. (1990). “Popular Art” and the Javanese Tradition. Indonesia, (50), 77-94.
  • Gill, R. (2007). Postfeminist media culture: Elements of a sensibility.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10(2), 147-166.
  • Jung, S. (2011). “K-pop, Indonesian Fandom, and Social Media.” In “Race and Ethnicity in Fandom,” edited by Robin Anne Reid and Sarah Gatson, special issue, Transformative Works and Cultures, no. 8. https://doi.org/10.3983/twc.2011.0289.
  • Nagle, A. (2017). Kill all normies: The online culture wars from Tumblr and 4chan to the alt-right and Trump. UK: Croydon: Zero Books
  • Yoon, S. (2019). K-Pop fandom in a veil: Religious reception and adaptation to popular culture. Journal of Indonesian Islam, 13(1),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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