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모임에서는 듀나의 두 호러-판타지 소설 「너네 아빠 어딨니?」(2007)와 「구부전」(2015)를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너네 아빠 어딨니?」는 『판타스틱』 5호에 먼저 발표되고 듀나의 다섯 번째 작품집 『용의 이』(2007)에 수록된 단편으로,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의 판자촌에서 동생 ‘새봄이’와 함께 아빠의 폭력을 견디며 살아가는 초등학생 ‘새별이’를 주인공으로 한 좀비 아포칼립스 소설입니다. 「구부전」은 『미스테리아』 4호에 먼저 발표되고 듀나의 열 번째 작품집 『구부전』(2019)에 수록된 중편으로, 조선 후기의 저명한 양반집 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뱀파이어 고딕-좀비 아포칼립스 소설입니다. 두 작품에서 듀나는 현대 한국과 조선 후기의 폭력적이고 무능한 가부장을 침착하고 영리한 소녀 주인공의 손으로 처단합니다. 이때 피가 낭자하는 좀비 아포칼립스의 현장을 묘사하는 듀나의 무심하고도 유쾌한 어조가 돋보입니다.
대담자 : 강은교(오온), 송유진, 이하영, 이다은(보라돌이), 최가은, 허주영
‼️ 대담 내용은 스포일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
0. 듀나와 ‘K-좀비’
오온: 오늘도 듀나 대담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하다. 오늘 함께 읽을 두 작품은 듀나의 뱀파이어・좀비 이야기다. 영화 〈부산행〉(2016),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2019–), 〈지금 우리 학교는〉(2022)과 같은 영상물의 글로벌 흥행으로 ‘K-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듀나의 좀비 이야기를 지금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의 감상이 궁금하다.
유진: 처음 「구부전」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전’의 한자가 당연히 전할 전(傳)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싸움 전(戰)이었다. 시아버지 구(舅), 며느리 부(婦), 싸움 전 자를 써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싸움’이라는, 소설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인 거다. 나 역시 오온이 언급한 것처럼 「구부전」을 〈킹덤〉과 대비해서 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부전」은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목을 치는 부친살해 서사인 반면, 〈킹덤〉은 왕세자가 좀비 창궐이라는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신임을 얻어 영웅이 되고, 왕실의 존속을 위태롭게 만든 외척 세력을 척결함으로써 마침내 왕위를 계승하는 적자상속 서사이지 않나.
오온: 확실히 〈킹덤〉은 조선 후기 왕실을 배경으로 한 사극의 클리셰를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외척의 세도 정치로 인하여 왕실의 적자상속이 위태로워지고, 이는 곧 국가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뜻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간악한 여성 인물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물론 여성 인물의 스토리도 설명되지만.
가은: 바로 그러한 관습적 지점이 〈킹덤: 아신전〉(2021)에서 어떻게 돌파되고 또 뒤집힐 것인지가 관건이었는데, 세계 설정을 소개하다 끝나버린 느낌이라 다소 아쉬웠다.
1. 가부장제의 망령을 불태우는 고딕 소녀 주인공
오온: 「구부전」의 결말부에서 앤 래드클리프의 고딕 소설과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레베카〉가 인용되는 것에서도 드러나듯, 이 두 작품은 듀나 식으로 변주된 여성 고딕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고딕의 가장 클래식한 결말은 저택이 활활 불타면서 끝나는 것인데, 「구부전」에서도 주인공이 저택을 불태우고 떠난다(고 서술된다). 게다가 다들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구부전」과 「너네 아빠 어딨니?」가 이어진다. 「구부전」에서 주인공이 시아버지의 왼쪽 눈에 은장도를 박아 넣는데,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 새별이가 아빠를 깊숙이 묻기 위해 땅을 파다가 왼쪽 눈에 은장도가 박힌 상투 튼 노인의 머리를 발견한다. 「구부전」이 「너네 아빠 어딨니?」보다 나중에 쓰인 작품인데, 듀나는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 아빠가 좀비로 되살아난 이유를, 「구부전」에서 그 아래 조선의 양반 좀비들이 묻혀 있었기 때문임을 암시하면서 떡밥을 회수한다. 이렇게 두 이야기를 상호텍스트적으로 연결함으로써, 듀나는 “현재를 옥죄어 오는 과거의 망령이라는 고딕 모티프를 변주”하여 조선의 가부장제가 현대 한국에서 죽지도 않고 되살아나고 있음을 드러낸다.[1]
[1] 강은교(2022). “페미니스트 세계만들기(worlding)로서 듀나의 SF에 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70쪽.
가은: 고딕 서사라는 틀을 두고 생각하면 흥미로운 지점이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 클래식한 고딕 서사의 여성 주인공들은 혼자서 자기가 미친 게 아닌지 의심하다 결국 파국을 맞는다. 반대로 듀나의 좀비 소설 속 여성 주인공들은 모두가 좀비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미감염되는 자이자, 가장 똑똑한 자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부활하는 가부장을 매번 죽이지만, 그것이 아무리 되살아난다고 해도 끄떡없다. 이들은 애초에 좀비에 감염되지 않으니까.
오온: 그렇게 주인공이 좀비에 대한 면역력을 확보하게 되는 과정은 너무 우연적이어서 거의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구부전」에서는 주인공과 사생아 쌍둥이 조카들이 시아버지의 약을 만드는데 쓰고 남은 재료를 먹었다가 엉겁결에 불사신이 되고,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는 동네 무당이 써준 부적이 두 자매를 좀비로부터 보호해준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그것만으로도 약간 의아한데 심지어 수십 장을 복사해도 부적의 효능이 그대로라고 묘사된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한데 듀나는 별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간다. (웃음) 서사적으로 봤을 때 이건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할 수 있는데, 실상 듀나는 그걸 의도한 것 같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좀비 전염 및 면역의 원리가 아니라, 소녀들이 드디어 가부장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주영: 「너네 아빠 어딨니?」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아빠가 죽고 난 후 어른들은 새별이네 집에 와서 자꾸 아빠를 찾는다. 물론 새봄이와 새별이는 미성년자니까 보호자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게 당연하지만, 어른들은 새봄이와 새별이가 아닌 아빠를 찾으러 온다. 그러니까 아빠와 아빠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다면 새봄이와 새별이는 외부의 방해와 침입을 받을 일이 없는 거다. 이는 「구부전」에서 시댁 식구들이 전부 뱀파이어가 되고 난 다음 낮에 활동하는 남자 어른이 없으니 집에 누가 없는지 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으러 오는 장면과 겹친다. 어린이와 여자들만 사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쉽게 들킬 수밖에 없다. 성인 남자를 찾아오는 외부인에 의해 결국 발각되기 때문에. 두 소설에서 가부장이 죽으면서 주인공들이 비로소 누리게 되는 물질적・정신적 안락함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결국 집을 불태우고 떠나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아이러니의 유희 속에서 전복되는 아버지의 세계
유진: 나는 「구부전」에서 시공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게 흥미로웠다. 처음부터 몇 년도에 일어난 일이라고 언급되는데다, 중간에 등장하는 이기론에 대한 서술로부터 조선 후기의 예송 논쟁을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시아버지 캐릭터가 누구를 레퍼런스로 삼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하영: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도 공간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서울경기의 몇몇 동네가 연상된다. 그런데 다음 서술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막상 이들 공간을 리얼리즘적으로 하나하나 묘사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도 재미있다. “지금까지 나는 무대가 되는 달동네를 새별이네 가족만 사는 텅 빈 공간처럼 그렸어. 정말 그 동네가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다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지.”(40)
가은: 그럼에도 공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특히 이 두 작품에서 공간 분할이 계급 분리의 상징으로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는 새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정문과 후문으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계급이 구분된다. 「구부전」에서는 대문이 그런 기능을 하는데, ‘과시용’으로 만들어져 요란하고 불쾌한 소리를 내는 이것은 그 자체로 신분 위계를 상징한다. 이렇게 듀나 월드에서 계급 분리는 공간 분할로 드러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 경계와 위계가 언제나 문화적 유산을 통해 교란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 새별이가 클래식을 감식하는 귀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문과 후문의 구분이 교란되고, 「구부전」에서도 대학자 시아버지가 언문으로 쓰인 가정의학서 앞에서는 문맹이 되면서 남자들의 세계와 여자들의 세계의 위계가 교란된다. 사실 이것은 듀나의 다른 단편 「히즈 올 댓」에서도 반복되는 방식이다. 듀나는 경계가 분명한 공간을 흐리게 하는 힘이 문화에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주영: 듀나는 이분법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가은이 이야기한 것처럼 「너네 아빠 어딨니?」의 새별이는 고전 음악과 문학에 빠삭한데, 그것이 곧장 고급문화/대중문화의 위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정문과 후문 같은 계급적 구분은 독자로 하여금 모종의 전복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듀나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라는 또 다른 이분법을 달리 배치하면서 그 기대를 빗겨간다. 그러니까 어느 하나의 이분법에 또 하나의 이분법을 더하면서 계급, 세대, 문화의 이분법 자체를 교란하는 거다. 그렇기에 듀나의 세계에서는 SS501과 조지 엘리엇이 나란히 등장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이른바 ‘세계’ ‘고전’ 문학은 지하철 역의 작은 도서관이나 폐품처리장과 같은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듀나(와 듀나의 주인공들)은 이를 바탕으로 무언가 매우 이상하고 흥미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고전을 읽고 비범해진 소녀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탈취하고, 아버지의 논리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듀나의 소설이야말로 ‘start from the bottom’이고, ‘토종’ 힙합이 아닌가 싶다. (일동 웃음)
가은: 그런데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듀나의 소녀들이 그러한 문화적 유산을 상속받는 맥락이 아이러니하다는 것이다. 굉장히 폭력적인 상황, 이를테면 성적 학대와 같은 상황 속에서 유산 상속이 이루어진다.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 두 자매에게 헌책을 주는 폐품처리장 아저씨는 소아성애 경향이 있다고 언급되고, 「구부전」의 주인공이 ‘자기만의 방’이 생기고 시댁의 방대한 장서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강압적이고 정략적인 결혼이라는 가부장제 억압의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오온: 그런데 또 듀나는 그와 같은 상황을 심각한 어조로 서술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일도 있었다는 듯이 한두 줄로 설명하고 넘어간다.
가은: 맞다. 듀나는 억압과 폭력의 추악함에 호소하기보다 아이러니한 맥락 위에서 아이들이 아버지의 망가진 유산을 상속받고 그로부터 괴상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초점을 두는 것 같다.
다은: 침착하고 심드렁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듀나 특유의 문체가 좀비 아포칼립스와 부친살해라는 사건을 훨씬 극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3. 젠더화되고 계급화된 지식의 위계 전복
하영: 「구부전」에서 신유학의 이기론을 다루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뱀파이어가 되기 전 시아버지는 ‘이’를 중시하는 학파의 대표자였는데, 뱀파이어로 환생한 다음에는 극단적으로 ‘기’를 중시하는 입장으로 바뀐다. 그런데 듀나는 서술자의 입을 빌어 “두 글자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하나도 안 중요”(52)하다고 말한다. 시아버지는 이를 실존적인 전환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듀나가 보기에 주리론이나 주기론이나 탁상공론인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주영: 「구부전」에서는 인간과 좀비, 주리론과 주기론뿐만 아니라 남자 책과 여자 책이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아들들이 모두 좀비가 되어가는 재난 속에서 언문으로 쓰인 여자 책의 지식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게 한문으로 쓰인 남자 책의 지식은 쓸모가 없어지고, 남자들은 사실상 문맹이 되어버린다. 시아버지를 포함한 남자들은 재난을 재난으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 상황에서도 주리론이냐, 주기론이냐 하면서 토론이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가은: 서술자가 시댁 식구들이 좀비가 된 원인을 추적하면서, 조선의 남자들이 아버지가 병들면 자신의 피부를 베어서 피를 나눠주는 관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듀나는 이런 미신적인 관습을 진지하게 비판하기보다, 마치 ‘그렇게 꼴값을 떨더니 결국 좀비가 된 게 아니냐’는 식으로 유쾌하게 조롱하는데,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의 좀비와 「구부전」에서의 뱀파이어-좀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다.
오온: 장르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뱀파이어는 죽음을 초월한 존재로서 종종 매혹과 연민의 대상이 되지만, 좀비는 죽음을 육화한 존재로서 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시댁 식구들이 뱀파이어에서 좀비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제거해야 할 서사적 필연성이 부여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영: 나는 「구부전」에서 뱀파이어와 좀비가 연속선 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뱀파이어가 조금 더 고상한 존재이고 좀비가 원초적인 욕망만 남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은 시댁 식구들이 좀비가 된 것이 “어떤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더 좋은 일”이며, “뱀파이어야 말로 가장 낭비가 심한 육식동물”이라고 이야기한다(73). 그러니까 뱀파이어와 좀비의 차이는 시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때의 차이인 거지, 시댁 식구들을 뒤치다꺼리 해야 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뱀파이어와 좀비는 별 차이가 없다. 치워야 할 시체인 건 똑같기 때문이다. 「구부전」에서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말하는 주리론과 주기론, 뱀파이어와 좀비의 경계에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면서 현학적인 구별 기준을 비튼다.
가은: 〈킹덤〉에서 흥미로웠던 장면 중 하나가 떠오른다. 좀비 사태가 발생한 후, 한 양반이 시체 무더기 속에서 “우리 애 어딨어!” 하면서 미친듯이 자식을 찾는다. 이유는 귀한 자기 자식이 천것들과 같이 있으면 안 되고, 양반은 따로 묻혀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자식을 찾기는 어려운데, 인간이 전부 좀비가 되면서 신분의 경계가 흐려진 탓이다. 「구부전」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반복되는 것 같다. 좀비 사태를 사람들에게 설명할 언어의 부족만큼이나 문제적인 것은 이들이 양반이라는 사실이다. 「구부전」의 서술자는 시댁 식구들을 뒤치다꺼리 하면서 양반의 사상과 가치가 뱀파이어-좀비의 형태로 영속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결국 각성한다.
유진: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 조선의 가치, 조선의 문화가 세상을 정복하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 집 남자들과 같은 부류가 영원히 지배계급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니, 그건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세상이 죽을 운명이라면 굳이 살릴 필요는 없었습니다.”(81) 좀비 사태가 퍼지고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을 건지 말 건지 결단해야 하는 기로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다니 정말 듀나스럽다고 생각했다. 사실 굳이 좀비 사태가 아니어도 주인공의 입장에서 여기는 이미 망한 세상이고, 자기는 사실상 불사신이기 때문에, 굳이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떻게 되든 간에 우리는 (너희를 제거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지가 선명히 느껴졌다.
4. 장밋빛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 듀나의 아이들
주영: 「너네 아빠 어딨니?」와 「구부전」의 주인공은 모두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아이들을 보호한다. 그런데 「너네 아빠 어딨니?」의 새별이가 새봄이를, 「구부전」의 주인공이 사생아 쌍둥이 조카를 보호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새로운 세대이자 세상의 미래이기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 대의가 있어서 아이들을 지키는 게 아니라 그냥 얘네들을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 딱히 다른 도리가 없으니까 우선 구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듀나의 작품에서는 ‘소녀가 미래다’라는 식의 해석이 불가능하다.
가은: 그런데 어쨌든 항상 여자가 남는다.
주영: 물론 아포칼립스로부터 살아남게 된 이들은 모두 여자들이나 아이들이고, 이건 우연이 아니다. 시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이 살아남지 못한 게 우연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여성성에 어떤 웅장한 미래를 걸지 않아도, 결국 살아남은 것은 여자들 뿐이다. 듀나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오온: 그렇게 자주 아이들을 SF 서사의 중심에 놓으면서도, 리 에델만이 이야기한 ‘재생산 미래주의’에 빠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듀나 소설의 페미니즘적, 퀴어적 매력이고 잠재력인 것 같다. 그 무엇도 보장하거나 약속하지 않지만 왠지 믿음이 간다. 미리 전제된 당위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설득하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듀나의 여성, 소녀 형상에 대해 계속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기대해 달라.
편집: 오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