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라비는 ‘어떻게’ 떴나?

🍊낑깡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를 선언하며 등장한 오세라비는 “현재 우리나라 페미니즘 운동 자체가 사회를 후퇴시키고 있다”라며, 한국의 페미니즘을 ‘백래시’로 규정했다(기사 보기). ‘백래시’라는 용어가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적인 움직임을 가리키는 개념임을 생각한다면 다소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수잔 팔루디가 『백래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페미니즘이 사회정치적인 이슈로 대두되면서 여성들의 권리가 증진될 낌새가 보이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여성들이 가진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움직임이 미디어, 정치, 시장 전반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동의 움직임은 ‘모든 것을 페미니즘의 탓’으로 돌리는 수사를 활용하며 이루어졌다. 만약 오세라비의 말마따나 한국의 페미니즘이 ‘백래시’라면, 그것은 무엇에 대한 백래시인가? 어떤 힘에 대항하며 일어난 움직임인가? 어떤 것을 ‘백래시’라고 규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질문들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페미니즘 운동의 맥락을 잘라내고 이를 ‘백래시’라고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인 게 아닌가?

본 글은 오세라비의 등장이 ‘백래시’인지 아닌지, 혹은 오세라비가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의 페미니즘이 ‘백래시’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오세라비가 ‘백래시’와 같은 페미니즘의 언어를 전유하면서 반-페미니즘적인 주장을 펼치는 모순이 발생하는 맥락을 짚고자 한다. 그리하여 오세라비의 발화권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획득되고 작동되는지 주목하고자 한다. “오세라비는 ‘어떻게’ 떴나?”

1.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오세라비가 주장하는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를 간략하게 분석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제목이 가리키는 ‘그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오세라비에 따르면 “페미니즘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성을 사회적 약자 및 피해자로 규정짓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페미니즘’은 여성 집단을 사회적인 약자로 규정하는 바로 ‘그 페미니즘’이다. 그렇다면 ‘그 페미니즘’은 왜 틀렸는가? 오세라비는 “사회 모든 규칙을 남성들이 만들었다는 전제는 명백히 비과학적이고 틀린 것이며 남성들도 사회 속에서 각자의 불평등과 억압을 겪고 있다”, “초·중학교 여학생들이 학업 현장에서 가부장적 권위에 피해를 입고 독박 노동을 당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지금 10대 20대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무슨 권위가 있냐”라며 페미니즘을 비난한다(기사 보기). 즉, 젠더불평등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라는 인상적인 책 제목은 독자들로 하여금 만약 ‘그 페미니즘’이 틀렸다면, 어떤 페미니즘이 옳은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런데 책의 결론에서 오세라비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답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대신 그는 “이퀄리스트가 되라”고 권유한다. 앞서 말했듯, 오세라비는 ‘그 페미니즘’을 ‘한국 페미니즘’으로 등치시킨다. 그로 인하여 ‘그 페미니즘’은 특정한 입장이 아니라 한국 페미니즘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 되고, 이는 곧 한국 페미니즘 자체가 틀렸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2.   오세라비를 모십니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책 출간 이후, 오세라비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라디오 청취율 시사 부문 1위에 오르고, 매일 팟캐스트 다운로드 수가 500만에 달할 만큼 영향력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김어준은 해당 방송에서 워마드 사이트 폐쇄를 둘러싼 논쟁을 정리하면서, ‘워마드 사이트 폐쇄는 합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어준이 방송에 오세라비를 초대해 해당 주제에 대해 의견을 물음으로써, 오세라비는 ‘워마드’로 대표되는 한국 페미니즘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이 위치에 배치됨으로써 오세라비는 단숨에 페미니즘에 대한 ‘전문가’가 된 것이다.

김어준을 통해 ‘페미니즘 전문가’로 호명되기 전, 이미 오세라비를 위한 자리는 마련되어 있었다. 오세라비는 2016년 <리얼뉴스>의 칼럼 기고를 통해서 페미니즘에 관한 발언을 시작했다(기사 보기). <리얼뉴스>는 편파적인 진영논리를 거부한다고 표방하는 매체이지만, 사실상 안티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매체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 매체는 ‘페미니즘 실체’와 ‘포비아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며, 안티페미니즘과 관련된 기사들로 가득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간 반-페미니즘적인 언행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들이 몰려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대중의 공포를 생산한다는 책 <포비아 페미니즘>의 작가 박가분, 미투 공방 중인 박진성 시인, 그리고 오세라비. 이들은 <리얼뉴스>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코너를 하나씩 배당받아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리얼뉴스>와 김어준에 이어서, 현재 오세라비의 발언을 듣기 위한 장들은 줄을 잇는다. 오세라비는 서울대, 연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으로부터 초청받아 특강을 진행해 왔을 뿐만 아니라, 바른미래당에서 주최하는 정책 토론회에 참여하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주최하는 “젠더 갈등 토론회”(당시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항의로 무산되었다가, 주최자와 일부 패널만 바뀌고 같은 주제로 다시 추진되고 있다)에 초청되는 등 정부의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무산되거나 갈등을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세라비가 설자리가 마련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오세라비를 전문가로 호명하는 장에서, 오세라비에게 어떤 발언을 기대하는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한 마디로, “혐오는 나쁜 거예요”다.

3. “혐오는 나쁜 거예요”

“혐오는 나쁜 거예요”는 문제를 탈맥락화하는, 이른바 ‘물 흐리기’ 전략의 전형이다. 이 전략은 서로 다른 문제가 발생한 각각의 맥락을 탈각시킴으로써, 하나의 문제에 대한 대립적인 입장으로 다루는 것이다. 오세라비는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발생한 맥락이 엄연히 다름에도, 또한 <혐오>의 의미가 동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혐오는 나쁜 것”이라는 전제 하에, 혐오의 문제를 여/남의 대립구도로 대치시킨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서 남성혐오는 나쁘다, 고로 남성혐오를 하는 페미니즘은 틀렸다는 결론을 도출시킨다. <여성혐오>에서 말하는 <혐오>는 단지 ‘여성을 싫어하는 남성’을 말하고자 사용되지 않는다. ‘혐오’는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제하려는 태도”를 뜻한다(홍성수, 2018).  오세라비의 주장은 ‘혐오’를 무엇으로 정의할지, 그 혐오가 형성된 배경은 무엇인지, ‘남성혐오’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들을 일축한다.

사실, 오세라비의 ‘물 흐리기’는 남성 피해 서사와 ‘역차별’ 담론의 서사구조와 동일하다. 일례로, 미투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남초 커뮤니티에 등장한 ‘펜스룰(Pence Rule)’이 있다. ‘펜스룰’은 미투운동이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노동 환경 내의 강간문화나 남성중심적인 노동시장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남성’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취급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형성되었다. 이 현상은 여성을 다시금 배제하고 그 배제의 원인을 또 여성들의 탓으로 돌리며, 역으로 남성들의 피해를 주장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이 형성된 맥락을 지운 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것, 이 점이 오세라비와 남성 피해서사가 맞닿는 지점이자, 오세라비에게 듣고자 기대하는 내용일 것이다.

오세라비는 페미니즘을 남성혐오의 문제로 등치시키고,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서사화하고 정당화하는 ‘살아있는 참고문헌’으로서 등장한다. 특히 “‘여성’도 틀렸다고 말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수사의 활용은 오세라비가 페미니즘을 진단할 수 있는 위치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남성 피해서사를 담지한 대변인, 그리고 ‘대변인’을 필요로 하는 장, 이 두 가지는 오세라비가 발화권력을 얻게 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4. “워마드를 해부한다”

올해 1월 진행된 바른미래당의 토론회 “워마드를 해부한다”의 진행순서는 오세라비의 발언이 어떤 담론 속에서 배치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토론회는 “나는 워마드에게 이렇게 당했다”라는 제목의 ‘워마드 피해자’ 발언 후 오세라비가 워마드 현상을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다. 뒤이어 변호사가 혐오 표현과 관련한 법적 쟁점을, 방송통신위원회 인터넷윤리팀장이 혐오표현 유통 방지 방안을 발표했다. “워마드를 해부한다”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워마드가 생겨난 구조적, 사회적 배경에 대한 맥락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않았으며 ‘남성혐오와 여성혐오 모두 나빠요’라는 수사만이 답습되었을 뿐이다.

남성 청년들의 피해 발언에 뒤이어서 오세라비가 발언하는 이 진행순서는 남성의 피해서사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대변인’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연출한다. 남성들의 피해서사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현재 젊은 한국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폭발적인 감정인 ‘억울함’은 오세라비와, 오세라비가 발화권력을 가지는 ‘장’인 그 토론회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기제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법률 전문가와 방통위 관계자들의 순서는 ‘남성혐오’ 담론을 법과 정책에 기반이 될 수 있는 지식으로 승인하는 효과를 낳는다.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오세라비는 워마드는 “남성혐오를 목적으로 하는” “국내 최악의 막장 사이트”이며, 대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이데올로기 의식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한국 남성 일반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었고, 남성은 모두 적이요, 악당으로 만들어 젊은 여성들에게 피해의식과 공포감과 적개심을 심어 주었”다. 그 결과 “농담 한마디 건네기 어려운 살벌한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오세라비의 이러한 과격하고 원색적인 ‘워마드-페미니즘 비난’의 말들은 발화될 때마다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뒤이은 질의응답이나 토론 세션에서도 그는 남성들을 ‘우리 한국 남성들’이라고 칭하고, 이들이 ‘얼마나 가엾은지’ 언급하며 위로를 건네고, ‘남성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 등의 감정적인 수사를 반복하며 좌중의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오세라비의 주장들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그의 언설은 그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주장해오던 바와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 오세라비의 주장을 분석함으로써 말하고자 한 바는, 뻔한 주장과 소박한 논거일지라도 남성의 피해서사에 공감하고 지지해 줄 여성이 필요한 집단이 누구인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5. 무엇이 ‘백래시’인가?

페미니즘을 개인적인 것, 집단 이기주의(기사 보기), 그리고 탈정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담론들은 페미니즘 운동이 형성된 맥락과 페미니즘 운동이 지향하는 바를 간과한다. 특히 페미니즘의 의제를 그것이 등장한 맥락에서 분리해 평가하면서, ‘지금 여기에서 페미니즘이 지향해야 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구체적인 물음을 교묘하게 “페미니즘은 무엇인가?(페미니즘=OOO)”라는 단순하고 규정적인 물음으로 환원한다. 이러한 현상은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페미니즘의 정당성을 증명하게끔 만들고, 논의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진전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오히려 이와 같이 문제적인 상황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표지로서 오세라비가 등장하게 된 맥락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오세라비가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 배경에는 그의 발언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를 ‘대변인’의 위치로 소환하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오세라비의 발화권력은 오세라비가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라, 그를 여성운동가로 호명하고, 소환하며, 오세라비의 입을 통해서 듣고자 하는 장에서 형성된다. 페미니즘의 언어를 전유하면서도 반-페미니즘적인 발화를 기대하는 장 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개최하고자 했던 ‘젠더 갈등 포럼’에서 그 많은 여성주의 연구자 혹은 여성주의 활동가들을 제치고 오세라비가 패널로 초대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김어준은 왜 오세라비를 초대했는가? 오세라비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왜 이렇게 많이 마련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위에 분석한 바에서 충분히 추론이 가능할 것이다.


참고 문헌

  • 오세라비(2019). “워마드 현상과 진단”, 하태경 의원실 & 바른미래당 청년비전위원회 긴급토론회: 워마드를 해부한다, 11-21쪽.
  • 홍성수(2018). 『말이 칼이 될 때』, 서울: 어크로스.

글쓴이

Fwd

페미니스트 연구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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