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임신중지 권리를 둘러싼 논쟁을 위하여

🌒 김보영

박이대승,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오월의봄, 2020) 표지 이미지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Unborn lives matter’라고 쓰인 현수막이 내걸렸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다시 한번 촉발된 미국의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흑인의 생명권을 주장한 것처럼, ‘Unborn lives matter’라는 구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unborn) 무언가의 생명권을 주장한다.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늘 생명의 가치를 앞세운다. 그들이 태아 사진을 전시하는 이유는 unborn이 인간과 같으며 고로 임신중지는 살인과 같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생명이란 누구도 쉽사리 부정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에, 임신중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이른바 태아의 생명(권)은 강력한 힘을 가진다. 임신중지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도 한 번쯤은 태아의 생명(권)에 대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 풀리지 않는 찜찜함이 있을 때,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논쟁 구도에 답답함을 느낄 때 참고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박이대승의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애초에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쟁 자체가 부재하고, 우리가 합리적인 논쟁이 어려운 지점에 서 있다는 지적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책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일 수 있는가’라는 임신중지 이슈의 핵심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생명’과 ‘생명권’의 구별이다. “생명과 생명권의 구별은 임신중단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40쪽)한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따라 책은 생명과 생명권이 어떻게 다르며, 생명권의 주체는 누구인지를 논증해나간다. 저자는 미국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부터 한국의 2019년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문까지를 다루며 이 결정문들에서 태아, 생명, 생명권이 각각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생명과 생명권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동물과 식물은 모두 살아 있지만, 생명권의 주체는 아니”(17쪽)라고 말한다. 생명권이란 단지 살아있기 때문에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우리를 권리의 주체, 즉 인간으로 인정하기 때문”(18쪽)에 부여되는 것이며, “법적 인간이란 곧 권리의 주체이고, 법적 인간이 아닌 존재는 권리의 주체가 아닌데 어떻게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18쪽)인지를 되묻는다.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의 폐지를 염원해 온 수많은 이들이 이날의 헌법불합치 판결을 환영했지만, 저자는 헌법불합치 판결의 논리적 문제를 지적한다. 저자는 태아의 생명권에 관련해서 두 가지 논리적 선택지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첫째, 태아는 인간이 아니고, 생명권의 주체도 아니라는 관점, 둘째, 태아는 우리와 동등한 법적 인간이고, 우리와 같은 생명권의 주체라는 관점이다(34쪽). 헌법불합치 의견의 논리적 문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도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아를 법적 인간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라 생명권의 주체로 본다면 어떤 경우에도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는 인정될 수 없다. 살아 있는 인간을 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이라고 해서 태아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다(51-52쪽). “그런 생명권은 사실상 예외적 살인을 허용하는 생명권이나 다름없는데, 애초에 이런 걸 생명권이라 부를 수 없”다(76쪽). 생명권(right to life)의 일차적 정의는 죽임당하지 않을 권리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생명권의 개념을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생명과 생명권을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혼동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78쪽).

물론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특정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저자는 응답한다. 생명은 생명권의 주체가 갖추어야 할 여러 조건 중 하나일 뿐이며 태아를 생명권의 주체로 보려면 법적 인간으로 인정하거나, 태아가 인간은 아니지만 권리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특히 후자에 대해서 만약 태아의 생명 보호가 “중대한 공익”임이 인정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으나, 그것을 공익으로 인정하려면 “태아의 생명에 관한 민주주의적 토론과 결정 과정이 선행되어야”(110쪽)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거나 개인의 존엄성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은 공익이 아니다”(111쪽). 또한 공익임이 인정되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중지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규제할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과연 임신기간 중 어느 시점부터 규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도 어렵다.

저자는 임신중지라는 주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합리적’ 입장을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한다. 첫째, 태아가 생명권을 가진 법적 인간이라고 인정하고 임신중지를 허용하지 않는 것, 둘째, 임신중지에 대한 권리를 여성의 기본적 권리로 인정하되 태아 생명의 보호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임신중단 허용 기간을 제한하는 것, 셋째, 태아의 생명보호는 임신중지 기간 제한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저자도 지적하듯 이 중에 실제로 선택될 가능성이 큰 것은 두 번째의 입장이다. 만약 두 번째 입장을 택한다면 태아 생명이 공동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에서부터 논쟁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입장을 택한다면 보호의 대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은 태아의 ‘생명’이지, ‘생명권’은 아니다. 앞서 계속 지적했듯,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양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7일, 정부는 ‘낙태죄’ 관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정부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임신 14주 이내의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24주 이내의 임신중지는 ‘일정한 사유’가 있을 경우 허용하는 것이다. 24주 이후의 임신중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실제적 조화”를 이루는 방향이라 주장했다. 정부가 여성계와 종교계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았다는 뉴스 댓글이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런 말들은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두 권리 사이의 적절한 조화 지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 위에서 정부의 개정안은 각각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침범하는 임신주수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현명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제적 조화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임신주수를 기준으로 각각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나, 사회적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는 길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지난 8월 열린 국무조정실이 주재한 회의 자료에는 “부처 간 one-voice(한목소리)”를 유지하고 “갈등 기간을 최소화”하라는 지침, “종교계, 여성계 반발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에서 주도적으로 완화 노력” 계획이 명시되어 있기도 했다.[1] 정부는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계기로 여러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유의미한 논의가 확장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이 국면을 조용히 넘길 방안만을 모색해온 것이다.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일 수 있는지에서부터 주수를 기준으로 임신중지를 허용 또는 금지하는 방식이 합당한가에 이르기까지, 임신중지를 둘러싼 다양한 측면의 논쟁이 필요함에도 정부는 앞장서서 논의의 장을 닫고 있다.

[1] 박다해(2020년 10월 27일). “[단독]‘성평등자문위 의견수렴’ 말뿐…복지부도 낙태죄 입법 일방통행”. 한겨레.

임신중지라는 주제는 단순히 임신중지 행위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임신중지 행위를 규제하고 처벌하고자 하는 의지는 여성을 한 명의 온전한 시민이자 성적 권리의 주체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임신중지 행위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면 ‘무분별한 낙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어느 국회의원의 말은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세상에 ‘무분별한 낙태’를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임신중지를 두고 ‘무분별하다’고 판단하는 시선이 있을 뿐이다. 이제 자기결정권 대 생명권이라는 구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논쟁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임신중지의 권리가 자기결정권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임신중지는 단순히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여러 사회적 조건과 관계 속에서 결정되고 수행되는 행위다.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평등권, 건강권 등 당사자를 둘러싼 권리 제반의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임신중지는 처벌과 허용의 문제나 생명권 대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권리 보장의 문제로 접근될 필요가 있다.

“결국 인간 여성과 비인간 태아의 법적 지위를 뒤집기 위해 일종의 꼼수를 만들어내는데, 그게 바로 태아의 생명권이다. 이런 꼼수의 목적은 태아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인간 여성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 있다”(86-87쪽).


참고 문헌

  • 박다해(2020년 10월 27일). “[단독]‘성평등자문위 의견수렴’ 말뿐…복지부도 낙태죄 입법 일방통행”. 한겨레.
  • 박이대승(2020).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오월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