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IWFF] 발견 〈애프터미투(#AfterMoToo)〉 대담

<애프터미투(#AfterMeToo)>(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감독, 2021) 유튜브 트레일러 갈무리

올해로 23회를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팬데믹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동시에 상영되었습니다. Fwd 필진들은 지난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특집에 이어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세 편의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두 번째로 이야기해 볼 영화는 <발견> 섹션의 영화 <애프터미투(#AfterMeToo)>입니다. <애프터미투>는 네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로, 2018년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사건화되거나 사건화되지 못한 혹은 사건화될 수 없었던 성폭력을 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독립된 네 편의 에피소드는 각각 ‘스쿨 미투’, ‘성폭행 트라우마와 그 치유과정’, ‘문화예술계 내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 ‘섹스와 성폭력의 경계 지대’라는 주제를 담아 미투 이후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기억, 끝나지 않는 질문과 고민을 드러냅니다.

1. “그 선생님 조심해”

상상: <여고괴담>은 친구 언니이자 학교 선배가 “그 선생님 조심해”라고 말해줬다는 얘기로 시작하잖아요. 첫 대사처럼 성폭력 사건들은 공적인 이야기였기보다는 언니들이, 선배들이 사적화된 이야기로 후배들에게 전해왔던 것 같아요. 이 영화가 좋았던 게, 성폭력에 관한 사적화된 이야기들이 공적 장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유진: 맨 처음에 “그 선생님 조심해라”, “너무 잘 보이지도 말고, 밉보이지도 말고 그냥 보이지 마라”라는 말이 나오는데, 앞뒤 설명 없이도 무슨 이야기인지 바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한편으론 이게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그만큼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겠구나 싶어서 더 기분이 이상했고요.

강물: 제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도 ‘여학생들, 몸조심 하라’는 말만 돌았어요. 용화여고의 사례에서는 다행히 가해자가 실형을 선고받았는데, 영화는 ‘미투 이후’에 초점을 맞춰요. 가령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피커인 개인이 부각되거나 해결 주체가 특정 세력화되는 등 어떤 문제들은 상흔을 남기잖아요. 이러한 현실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 방식이나 절차 등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과 경험의 부재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상상: 그런데 학교는 일반적으로 3년에서 4년 정도의 시간만을 보내고 졸업하는 ‘거쳐가는 곳’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장기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 요원하기도 한 것 같아요. 교사는 거기 계속 남아있는데 학생은 졸업하잖아요. 이런 문제는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싱두: 저는 맨 처음 에피소드에 엄청 공감이 됐어요. 위드유라는 것들이 이들의 경험에서 꼭 필요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고등학생의 위치에서 개인이 선생님들한테 쉽게 항의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개인이 부각되는 방식의 피해 서사 말하기, 해결하기로 진행되는 되는 것을 막으려고 졸업생들이 익명 위원회를 만들었던 거고. 그 때문에 스쿨미투가 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저도 성폭력 사건 해결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데, 해결하는 방식, 절차, 이런 것들에 대한 교육이나 경험이 실질적으로 이전까지 없었어서 힘들었던 기억도 났어요. 이 처리 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배움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나.

유진: 스쿨 미투 이후에 교육계에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암묵적인 규칙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더라고요. 성폭행, 성희롱 문제가 발생하면 학급 단위, 학교 단위에서 해결하기보다 교육부, 서울시 등에 민원을 넣고, 학교를 자체 해결 절차 없이 곧바로 교사를 해고하는 식으로요. 그러다보니 학교라는 공동체 차원에서 성폭력 문제를 의논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폭력 문제를 그저 쉽게 해결하려는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봐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교를 하나의 책임감 있는 공동체로 보고, 어떻게 하면 공동체 차원에서 성폭력 문제를 토론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를 논의해야겠죠.

강물: 교육계, 종교계 등에서 피해가 일어날 수 있던 조건이나 환경적 기반, 조직 문화에 대한 성찰 없이 가해자를 단죄하거나 처벌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전에는 피해자의 피해 고백이나 경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젠더감수성에 민감해진 요즘에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거죠.

2.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싱두: 그럼 이제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로 넘어가볼까요? 스쿨미투를 다룬 <여고괴담>이 함께 말하는 것의 힘을 보여줬다면, 이 단편은 ‘말하기의 조건’, ‘층위’, ‘말하기 앞에 붙는 수식어들과 조건’들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줬던 것 같아요.

상상: 이 한 편의 영화가 성폭력 이후, ‘피해자’가 ‘생존자’가 되어가는 치유 의식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서 이 분이 고통의 기억이 있었던 장소를 찾아가잖아요. 아무도 없는 그 장소에서 혼자서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고, ‘이제 괜찮다’ 혹은 ‘괜찮을 것이다’라는 선언을 하는데요. 이 과정이 어떤 기억에 다른 기억을 덮어씌우면서 대항 기억을 만들어내는 치유 의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40년이라는 시간, 그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돼요. 피해를 당했던 당시와 말하고 치유하는 40년이라는 간극… 그 시간만큼 그 사건이 삶에 영향을 끼쳤다는 거니까요. 

강물: 피해자가 어떤 트라우마나 상처를 갖고 있을 때, 그걸 누군가에게 전하는 퍼포밍을 통해 자기치유가 가능해지는 거 같아요. 내 입술에서 고백되었지만, 나 또한 그 말을 듣는 청자 중 한 명인 거죠. ‘피해 말하기’는 나의 상처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나를 부정했던 스스로를 용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영화에서 잘 보여주었어요.

유진: 미투라고 하면 보통 고발의 장면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이 단편은 그러한 고발 이후에 피해자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이 마이크로 얘기를 할 때 “너 때문에 나는 힘들게 살았고, 몸과 마음이 망가졌어. 그렇지만 나는 나를 용서할 거야. 너 때문에 망가졌던, 너무 우울했던 그런 나를 용서할거야”라고 계속 거듭해서 말하잖아요. 피해자가 본인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치유하고, 또 용서를 통해 빠져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 같았어요. 내가 잘못해서 당한 일은 아니지만, 성폭력 피해는 우리 삶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 경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용서하겠다고 거듭해서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왜 이 단편이 <애프터 미투>라는 제목 아래 함께 묶여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강물: ‘미투’ 하면 사건 자체나 고발 등에 이목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미투 이후에 피해자들의 일상 복귀/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안 되고 있어요. 사건의 해결은 비단 ‘진실을 규명하고 가/피해 사실을 밝힌 후 피해자에게는 상담을 지원한다’에서 일단락되는 게 아니라, 상당히 긴 호흡으로 이어져야 해요. 사건 이후 피해자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 안팎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가 잡혀야겠죠. 2018년 촉발된 미투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 간과했던 부분들을 잊지 않고 말할 타이밍이 아닐까요?

3. 미투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질문하다

상상: 사건 이후에는 성폭력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곁에 있었던 조력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세 번째 영화가 그 경험을 다루고 있지요?

강물: 이 부분 보면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해결 주체의 지속가능성’이에요. 한정된 인원이 사건 해결에 참여하다보면 소진되니까. 사실 해결 주체가 누구인지, 정해져 있는 건지 머릿속에서 맴도네요. 

유진: 문화예술계 미투 중에서도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윤택 사건을 계기로 연극계 내 성폭력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 문제의식을 담아 시작된 <페미니즘 연극제>가 올해 벌써 4년차가 됐더라고요. 그 시작이 어땠는지 다시 생각하니 조금 뭉클했어요. 또 다른 활동가 분께서 ‘처음에는 이게 얼마나 큰 일인지 모르고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너무 공감되었고요. 

싱두:  운동하면서 소진되는 것에 진짜 공감됐어요. 주변에서 한 사람씩 떠나는 그 일련의 과정. 어떨 때는 제가 잠시 사라지기도 하지만. (웃음) 서로 고통받을 걸 알면서도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관계들인 것 같아요. 나 아니어도, 우리 아니어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답이 없죠. 그렇게 소진되는 과정에서도 연대의 끈을 놓지 못하고, 또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부끄럽지만 찡했어요. 감정의 정치가 확실히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상상: 공동체 내 성폭력과 관련해서 지원활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고, 그 안에서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활동에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참여하지 않고, 일부 페미니스트들만 해결사 같은 위치에 머물게만 되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유진: 마지막에 이산 배우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성폭력 문제는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공동체와 사회의 문제다. 그 사실이 제대로 인지되지 않으니까 ‘성폭력 문제 담당자’인 한두 사람에게만 계속해서 책임이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공동체가 다 함께 해결 방안을 만들어가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이 본인의 일로 책임감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소수의 활동가들이 번아웃이 오지 않고 계속해서 활동을 해나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싱두: 그쵸. 가끔씩은 운동하는 장에서 정박되는 느낌이 들어요. 하나의 이슈나 담론에 대해 말을 얹기 시작하면 이후부터 담지자처럼 호명되면서 내가 마치 그 문제의 유일한 대표자가 된듯 말하게 되고, 이 문제가 있으면 누구를 불러라, 할 때 그 누구에 나밖에, 혹은 진짜 소수의 사람밖에 없는 거죠. 이런 방식이 얼마나 유효할지 고민이 될 때가 많아요.

강물: 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마임 배우 분이 해주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주변의 믿을만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숨쉴 수 있다는 점이요. 그런 점에서 이 사람들이라도 있기에 내가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는 거 같아요.

4. 안전과 쾌락, 섹스와 폭력 사이

싱두: 이 단편은 앞의 단편들과는 조금 분위기나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이전 단편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이 비교적 명확하게 ‘피해’라고 불릴 수 있었다면, 이 ‘그레이 섹스’에서는 이 구분이 굉장히 모호해지는, 그러니까 가해와 피해의 구도 자체가 흐릿한 느낌이었어요. 대사 중에 “가해와 피해를 따지다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판단을 멈췄다/포기했다” 라고 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 섹스의 경험을 가해/피해라고 붙이는 순간 설명되지 않을 것들이 너무 많은 거죠. 가해라고 이름 붙이면 그 순간에 느꼈던 쾌락을 설명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가해라고 하지 않으면 공포, 무력감을 설명하기 어려워지니까요. 쾌락과 공포가 가/피해 구도로 그렇게 쉽게 나누어져 버릴 수 있나? 하는… 

상상: 데이팅 어플이 효율적인 관계 맺기의 방식이기도 하잖아요. 이를테면 외모를 드러내고, 스펙을 써 놓고, 원하는 관계 양상을 각자 써 놓고, 이 조건들이 맞아떨어지면 즉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게끔 하는 효율적인 매체라는 거죠. 한편으로는 효율적인 매체인데 한편으로는 모든 게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치환되어 버리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못하게 될 수도 있는거죠. 

싱두: 안전의 감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어플 만남에서 20대 여성들이 영상에서처럼 남자의 집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 집에 부르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여성들이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로 남자를 호출하는 거죠. 안전의 감각이라는 것이 어플 사용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성별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같은 어플을 쓰는데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유진: “아무리 상대 남성을 섹스토이처럼 성적 대상화하려고 해도 잘 안 됐다”, 그 얘기를 하는 부분의 나레이션과 화면 연출이 잘 어우러졌던 것 같아요. 데이팅 앱 화면을 슥슥 넘기다가 어느새 인간으로서의 여자는 사라지고 섹스토이처럼 분절된 신체 이미지만 남는데, 그 부분의 연출이 좋으면서도 많이 씁쓸했어요. 

강물: 틴더와 같은 데이팅 어플의 이용자, 클러버들에 대한 시선들에서 편견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성관계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두 경계를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데이팅 어플이나 클럽에서 만나 성관계를 맺으면, 원치 않은 피해를 입더라도 마치 내가 자초한 일처럼 되는 거죠. 점핑되긴 하지만 성매매 여성들 사례도 떠오르는데요. 남성들한테 페이를 받아도, 언제든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인정받지 못 하잖아요.  

상상: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형의 성관계에 대한 낙인이나 관계에 있어서 특히 자발적 선택이 강조된다는 점, 그로 인해 책임성이 부과되고 관계 내에서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소위 성매매 여성으로 범주화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 엄격하게 구분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강물: 섹스의 형태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거 같아요. 원나잇이나 소위 말하는 ‘엔조이(enjoy)’, fwb(friends with benefit) 등. 연애의 형태는 다양하고 관계마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시간을 두고 서사를 쌓아나가는,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비춰지는 연애가 안전한 관계로 통용돼요. 영화 속 사례 중에도 남사친과의 원나잇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연애하게 되었다고 말하잖아요? 연애를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유진: 사실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주위의 애매한 섹스 고민상담을 자주 듣게 되는데요. 고민을 얘기하는 당사자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얘기를 하다 보면 이게 강간인가? 아니면 그냥 캐주얼 섹스인가? 하고 되게 헷갈리는 케이스들이 있어요. 사람들이 ‘강간’ 하면 가장 쉽게 떠올리는, 물리적인 폭력이 동반된 사건은 아니었지만, 나도 그 관계를 백프로 즐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너무 찝찝하고 마음이 무거운 섹스들이 있잖아요. 그런 얘기를 들을수록 강간은 아니지만 즐겁지 않았던, 유쾌하지 않았던 섹스에 대해서도 더 얘기해야 한다고 느껴요. 법적 강간의 개념을 정의하는 한편으로 문화적으로 ‘좋은 섹스’의 조건에 대해서도 더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싱두: 안전하고 유쾌한 여성의 섹스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덜 안전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안전하면 재미없을 때가 많잖아요. 쾌락적인 무언가를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것저것 왔다갔다 티키타카 할 때 느끼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고, 그런데 이걸 또 돌이켜보면 굉장히 폭력적일 때가 있고. 재미있는 섹스와 안전한 섹스가 같이 가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강물: ‘안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될 거 같은데요. SM처럼 서로 동의를 해서 플레이를 한다면 안전과 재미가 충분히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합의 하에 플레이를 하더라도,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무언의 신호를 약속하는 거죠.

상상: 강물의 말을 들으니 록산 게이의 <헝거>라는 책이 떠오르는데요. 록산 게이는 그 책에서 유년 시절 겪었던 성폭력 피해 경험 때문에 즐거운 섹스나 안전한 섹스에 기대가 없이 살아가다가, BDSM 커뮤니티를 만나고 세이프 섹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고 말해요. 합의 하에 세이프 워드라는 장치를 만드는 것도 안전함과 위험한 쾌락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죠. 그런데 사실 궁극적으로는 분위기를 읽는 감수성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유진: 개인적으로는 섹스와 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트가 영화 안에 함께 들어있어서 좋았어요. 미투 이후에 무엇이 강간인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란 뭔지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 과정에서 좋은 섹스란 뭔지, 또 법적인 강간과 성폭력 이외에도 유쾌하지 않은 섹스란 뭔지에 대한 얘기도 함께 촉발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흐름들이 다른 미투 사건들과 함께 이야기될 수 있어서 좋았어요.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맞이해왔습니다. 페미니즘 대중화와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한편,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백래시’라 불리는 또 다른 흐름을 맞닥뜨리면서 그간 페미니스트로서 겪어내고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로 되돌아간 느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영화 <애프터 미투>는 1991년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여, 2018년 ‘미투’ 이후를 말하는 네 편의 단편영화를 통해 한국의 ‘성폭력 말하기’의 역사 속에 ‘미투 이전’과 ‘미투’, 그리고 ‘미투 이후’의 흐름을 함께 엮어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프터 미투>의 ‘이후’라는 시간성은 이 역사들이 완전히 종결되었다기보다는 그 기반을 마련해주었던 이전의 흐름들과 연결되는 가운데,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시간들 속에 함께 존재하며 ‘성폭력 말하기’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는 동시대 페미니스트에게 <애프터 미투>라는 영화가 전하는 격려와 연대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기를 바라봅니다.

정리 : 싱두, 유진, 강물, 상상